
저소득 백인=새로운 흑인
필자는 첫 TV토론이 끝난 뒤 천편일률적으로 ‘힐러리 완승’만 전한 한국 언론에 대해 ‘트럼프 지지율 상승’을 보도한 미국 언론도 있다는 칼럼(9월 30일자)을 썼다가 “트럼프 지지자냐”라는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우리는 트럼프를 싫어하고 힐러리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예측이 빗나가기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자칭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 열풍을 무시하다 반성문을 써냈던 주류 언론들과 여론조사업체들은 이번에도 “완전히 틀렸다”며 자책하고 있다.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 특히 대졸 미만 저소득 백인층의 민심을 몰랐다면서 말이다.
요즘 미국은 고졸 저소득 백인 계층을 ‘새로운 흑인(New blacks)’이라고까지 부른다. 높은 사망률과 혼외출산이 과거 흑인들과 비슷한 데서 나온 말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등이 1999∼2013년 미국인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유독 중년 백인 사망자만 증가 추세였다. 원인은 마약중독, 알코올의존증, 자살, 간 질환 등 고단한 삶에서 받은 스트레스였다. 브루킹스 연구소에 따르면 1960년대만 해도 전체 신생아의 5∼7%에 불과했던 혼외 출산율은 지난해 40%로 급증하는 데 1등 공신이 바로 저학력 백인층이었다.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꼽히는 딕 모리스 말이다. “트럼프 현상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수백만 시민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은 다름 아닌 ‘세계화(글로벌리즘)’였다는 것을 트럼프가 정확히 대변한 데 따른 결과다.” 실제로 이번에 트럼프에게 몰표를 준 저학력·저소득 백인층은 이민자 유입과 유럽 통합에 반대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지지 계층과 유사하다. 트럼프가 주창한 ‘미국판 신고립주의’는 개인 생각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도도한 세계사적 흐름의 반영인 것이다.
그가 당선되면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리라던 예상도 빗나갔다. 당선 직후 내놓은 화합과 통합의 메시지를 담은 연설 때문이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힐러리를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고 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힐러리의 헌신과 노고를 칭찬했다. 한미동맹도 강화 발전시킬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안보 망하면 나라 망한다
트럼프의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을 축하한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