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외면해 ‘백년 치욕’ 겪은 중국
덩샤오핑 이후 다시 바다 맛 알아
지역 패권은 육지로 충분하지만
세계 패권 쥐려면 해양 장악 필수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중국법학과 교수
독일의 게오르크 헤겔은 “바다는 정복과 무역을 위해 인류를 부른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미 국무장관을 지낸 존 헤이는 “지중해는 과거의 바다, 대서양은 현재의 바다, 태평양은 미래의 바다”라고 구분하기도 했다.
한데 중국은 이 바다의 여왕인 태평양을 바로 곁에 두고서도 그 여왕이 부르는 ‘자유와 무역’의 노래를 악녀의 유혹 정도로 생각했는지 아예 관심을 두지 못하게 했다. 명(明)을 세운 주원장(朱元璋)의 항해 금지령과 해안 봉쇄령이 그것이다.

이 같은 금해(禁海) 정책의 결과로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패배 이래 ‘백 년의 치욕(百年恥辱)’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후 한없이 내리막길을 걷던 대륙국가 중국에 다시 회춘의 바다 맛을 알게 해 준 이는 누굴까.
중국에 바다 맛을 다시 일깨운 이는?
덩샤오핑은 평생 바다를 사랑했다. 중국 건국의 주역 마오쩌둥(毛澤東)이 강이나 호수에서의 수영을 즐겼다면 덩은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 수영을 좋아했다. 헤엄칠 때 마오의 시선이 내륙을 향했다면 덩의 눈길은 바다 수평선 건너를 향하고 있었다.

덩은 특히 사회주의 중국 동남부 연해지역에 5개의 자본주의 섬이라고 할 선전과 주하이(珠海) 등과 같은 경제특구를 건설했다. 그래서일까. 세계적인 중국학 석학인 존 페어뱅크 미 하버드대 교수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은 중국의 유구한 대륙성 전통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다를 향한 덩의 행보는 집요했다. 74년 1월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이던 덩샤오핑은 이렇다 할 선전포고도 없이 북베트남(월맹)의 시사(西沙, 파라셀)군도를 순식간에 점령해 하이난(海南)도에 편입시켰다. 또 87년 3월 중앙군사위 주석이던 덩은 난사(南沙, 스프래틀리)군도마저 삼켰다.
중국은 육지대국이자 해양대국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 9월 중국에선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는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는 물론 오키나와 본도를 포함한 류큐(琉球)군도 160여 개 섬을 모두 돌려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이 경악한 것은 불문가지다. 2010년 9월엔 센카쿠 인근 해상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21세기 동중국해 패권을 둘러싼 중·일 간 힘겨루기의 전초전 성격을 띤다.
한데 주목해야 할 건 당시 일본 관계와 언론, 학계가 그 비난의 포화를 후진타오 주석은 제쳐두고 당시 군사위 부주석이던 시진핑에게 집중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중국의 강경 노선을 주도한 인물이 후가 아닌 시진핑이었기 때문이다. 또 시가 1인자에 오르면 더 강경한 해양팽창 정책과 항일(抗日)운동이 전개될 것으로 우려했던 것이다.
일본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니었다. 군부를 장악한 시진핑은 특히 해군의 핵심 요직에 측근을 포진시켰다. 좋은 예가 현 중앙군사위 상무위원 8인 중 실세인 해군총사령관 우성리(吳勝利)다. 올해 71세로 은퇴할 나이건만 굳건하게 현직을 사수하고 있다.
우는 시진핑이 푸젠(福建)성에 근무할 때는 푸젠 해군기지 사령관, 시가 저장(浙江)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는 저장성 닝보(寧波)에 위치한 동해함대 부사령관을 맡았다. 시진핑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현역 해군 소장이라는 사실 또한 예사로 넘길 일은 아니다.
‘제2의 닉슨 독트린’ 기다리는 중국(?)
그런 야심의 중국이 미국에 밀리는 주요 부분은 해군력이다. 그래서 2000년대부터 국방산업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의 투자 우선순위는 해군>공군>육군 순이다. 현재 항공모함 2척을 보유한 중국은 2025년까지 3만~4만t급 중형 항모 2척과 6만t급 핵추진 대형 항모 6척을 추가로 건조할 계획이다.
미국이 비록 ‘아시아 회귀’를 외치고 있지만 대규모 재정적자에 따른 국방비 삭감으로 ‘힘이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力不從心)’ 상태다. 자연히 세계 경제질서 개편에 따른 해양질서 재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즉 미국이 과거 아시아를 일본 손에 남기고 몸을 빼려 했듯이 가까운 미래엔 미국이 ‘제2의 닉슨 독트린’ 즉 ‘아시아를 중국 손’에 맡겨 놓고 미 대륙으로 퇴각하는 날을 중국은 학수고대하는 것이다. 시진핑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향해 “태평양은 매우 넓어 중국과 미국의 이익을 모두 담을 수 있다”고 한 말은 제2의 닉슨 독트린을 재촉하는 중국의 주문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EEZ가 아니라 대륙붕이다
단호한 응징이 필요하다. 중국 법원은 관용 선박을 파괴한 자에겐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사형을 선고하는 등 엄벌에 처한다. 단속에 저항하는 중국 어선엔 공용화기 사용 등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 중국은 저자세의 이웃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강한 자존감을 보였던 고려는 오늘날에도 중국인에게 경외의 대상이지만 사대외교로 일관한 조선은 가볍게 본다.

70년 당시 우리나라가 대륙붕을 개발할 법적 근거를 제공한 해저광물자원개발법에는 해저광물을 석유 및 천연가스 두 종류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대륙붕엔 유황·칼륨 등 비금속 자원과 구리·아연·니켈·망간 등 다양한 광물자원이 쌓여 있다. 82년 제3차 유엔해양법협약에도 생물 및 무생물자원 개발로 그 범위가 대폭 확대됐다. 따라서 우리도 유엔해양법협약 수준으로 대륙붕 자원에 관한 국내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중국법학과 교수
◆강효백
대만 국립정치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문은 세상의 모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해군발전 자문위원으로 『중국의 슈퍼리치』 등 18권의 중국 관련 저서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