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정국의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론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대 아킬레스건인 이른바 호남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20대 총선 당시 호남 지지철회 시 정계은퇴 발언이 해묵은 논란거리로 등장한 것. 특히 선거전략으로 활용한 발언이라는 문 전 대표의 해명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차기 대선에서 역풍의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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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 朴퇴진 촉구 기자회견서 호남 정계은퇴 발언 재등장
- 20대 총선 호남발언 전략적 활용론에 호남민심 ‘들썩’
“20대 총선 당시 광주에서 (호남지지 철회 시 정계은퇴) 발언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막고 정권교체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광주와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지지를 받기 위한 여러 가지 전략적인 판단으로 했던 발언이었다. 만약 광주 시민들이나 호남 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
광주와 호남 민심의 지지가 없다면 제가 대선도 포기할 것이고 정치를 그만둘 것이라는 부분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저는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 주자가 돼서 정권교체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야당의 뿌리인 광주와 호남에서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야권 대표하는 후보가 되고 대선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광주와 호남 민심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그 때 했던 약속은 반드시 실천될 것이라고 말씀드린다.”(문재인, 11월 15일 국회 의원회관 긴급 기자회견 中)
진원지는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전면 퇴진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 때였다. 문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조건 없는 퇴진을 선언할 때까지 저는 국민과 함께 전국적인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며 발표했다. 최순실 정국의 와중에서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박 대통령의 2선후퇴를 주장해온 문 전 대표가 그동안 공언해온 ‘중대결심’을 내비친 것. 최순실 게이트 정국의 여파 속에서 지나치게 신중한 태도로 일관해 부자 몸조심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 보다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후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박 대통령 퇴진운동 발언이 국민의 한 사람, 민주당 대선후보, 전직 대표 중 어떤 자격으로 발언한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모든 것이 복합된 문제”라고 대답했다. 이어 20대 총선 당시 호남지지 철회 시 대선 불출마 발언을 거론하면서 대선후보를 사퇴한 것인지 아니면 번복이 돼서 대선후보로 발언한 것인지 명확하게 말씀해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이에 “새누리당의 과반의석을 막고 정권교체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의 발언”이라고 대답했다.
박지원 문 발언에 “호남 사람, 참으로 분노”
호남을 텃밭으로 둔 국민의당은 발끈했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물론 대변인들이 총출동, 융단폭격을 나섰다. 문 전 대표의 ‘호남 패배 시 정계은퇴’ 발언이 아무런 진정성이 없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만 안철수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제가 말씀드리기 적절하지 않다”며 입장표명을 자제했다.
우선 박지원 위원장은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호남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 발언에 참으로 분노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90% 이상 지지해준 호남 사람들에게 전략적으로 활용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그러한 말을 하는 분이 또다시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전 대표는 말로만 호남을 생각한다고 하고, 완전히 호남을 무시할 분”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문재인 전 대표께서 이러한 발언을 취소하고 호남 사람들에게 정중히 사과해주실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대변인들의 반응은 보다 직설적이다. 김경록 대변인은 “문재인 전 대표는 더 이상 사욕을 위해 호남을 모욕하지 마라”면서 “문 전 대표는 전략적 거짓말을 해서 미안한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정계를 은퇴하지 않아서 미안한 것인가.
문 전 대표 꿈이 대통령이면 호남을 전략적으로 이용해도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문 전 대표가 진심 어린 반성 없이 호남의 전략적 이용을 운운한다면 호남민들에게 했던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할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곤혹스러운 문, 잠잠했던 호남발언 악재
문재인 전 대표 측은 20대 총선 당시 호남 지지 철회 시 정계은퇴 발언이 7개월 만에 또다시 정가의 이슈로 떠오르자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야권을 대표하는 차기주자로서 호남과의 관계설정은 매우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당시 문재인 전 대표는 진퇴양난의 처지였다. 민주당에 대한 호남 민심이 최악 수준이었기 때문. 오죽하면 광주 북갑에 출마했던 정치신인 정준호 민주당 후보는 문재인 전 대표의 대선 불출마까지 요구할 정도였다. 또 민주당 구원투수였던 김종인 당시 비대위 대표 역시 문 전 대표의 호남행을 만류했다. 문 전 대표는 호남지역을 전격 방문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용섭, 우윤근, 백무현 후보 등 친노·친문 성향의 당선을 이끌기보다는 오히려 반문정서를 강화시키며 국민의당 지지층이 결집하는 역풍을 가져왔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민주당은 호남 전체의석 28석 중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야권의 심장이라는 광주에서는 단 1석도 얻지 못했다.
설마했던 일이 정말로 현실이 된 것. 전통적 지지층이 완전히 등을 돌린 대몰락이었다. 수도권 압승을 바탕으로 전체 123석을 얻으며 원내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호남참패로 빛이 바랄 정도였다.
20대 총선 이후 문 전 대표의 호남발언을 놓고 후폭풍이 거셌다. 문 전 대표가 ‘대선 불출마 및 정계은퇴’ 약속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하는 점 때문이었다. 여야 정치권은 문 전 대표에 대한 호남민심의 지지 기준으로 적어도 10석 이상을 전망했다. 그러나 광주의 전멸에다 전체 28석 중 3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는 향후 문 전 대표의 대선도전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문 전 대표는 20대 총선 직후 호남 패배에 대해 “국민들께서 더 노력하도록 회초리 들어주신 것이다. 호남 민심이 저를 버린 것인지 겸허하게 노력하면서 기다리겠다”고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20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이 참패의 영향으로 거센 내홍에 휩싸이고 여소야대 지형의 3당 체제가 들어서면서 문 전 대표의 대선불출마 및 정계은퇴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정국에서 7개월 전 호남 발언이 또다시 불거졌다. 문 전 대표 측은 최대한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문 전 대표는 “광주와 호남 민심의 지지가 없다면 대선도 포기할 것이고 정치를 그만둘 것이라는 부분은 지금도 유효한 것”이라면서도 “야권을 대표하는 대선 주자가 돼서 정권교체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방점은 차기 대권 도전에 찍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새누리당 과반 방지 ▲정권교체 기반 구축 ▲호남에서 민주당 지지를 위한 전략적 판단의 발언이었다는 대목은 앞으로 문 전 대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호남과의 화학적인 화해가 더 어려워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문 전 대표 측은 국민의당의 융단폭격에도 조심스럽게 대응했다. 문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김경수 민주당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국민의당과 박지원 비대위원장님께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100만 촛불로 보여준 국민들의 민심에 정치권이 어떻게 부응할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때”라면서 “이제부터는 분열의 언어 대신 단결의 언어로 함께 힘을 모으는데 앞장서 달라”고 밝혔다.
文·安, 호남 러브콜 포스트 ‘DJ'쟁탈전 치열
최순실 게이트 정국의 후폭풍 속에서 문재인 vs 안철수의 대선 라이벌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폭락과 광화문 100만 촛불로 상징되는 퇴진 여론 속에서 정치지형의 급변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 만에 하나라도 박 대통령의 하야나 자진사퇴 등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출마가 어려워지면서 문재인 vs 안철수의 양강 구도로 흐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야권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을 아우르지 않고는 대선 레이스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안철수 전 대표 역시 호남을 확고한 기반으로 다진 이후 당의 외연을 확장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20대 총선에 이어 문재인·안철수의 호남쟁탈전이 다시 한 번 불을 뿜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재인·안철수의 때이른 호남전투는 차기 대선이 정상적으로 치러지지 않고 내년 상반기에 실시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파문의 여파로 정치지형의 유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다급한 쪽은 문재인 전 대표다. 문 전 대표는 최순실 정국에서 차기 지지율 1위로 올라섰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하락세에 따른 반사효과가 크다. 물론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20대 총선 때보다 큰 폭으로 호전됐다는 게 위안거리다. 이는 20대 총선 직후와 최근의 정당 지지율과 차기 주자 지지율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한국갤럽이 총선 이후 4월 셋째주((19~21일) 주간집계에 따르면, 정당지지율은 새누리당 30%, 더불어민주당 24%, 국민의당 25%, 정의당 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국민의당은 창당 이후 최고치였다. 호남만 살펴보면 새누리당 7%, 민주당 26%, 국민의당 46%, 정의당 6% 등의 순이었다.
4월 넷째주(26~28일)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조 조사에서는 안철수 21%, 문재인 17%, 오세훈 7%, 박원순 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호남만 살펴보면 안철수 28%, 문재인 18%였다. 정당 지지율은 물론 차기 지지율에서도 국민의당과 안철수의 압도적 우위가 드러난 것이다.
20대 총선 직후 이러한 수치는 7개월 만에 급변했다. 한국갤럽의 11월 셋째주(15∼17일) 주간집계에 따르면,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31%, 새누리당 15%, 국민의당 14%, 정의당 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30%대에 안착한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선 반면 국민의당은 총선 때보다 10% 정도를 까먹었다.
호남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일었다. 국민의당 31%, 민주당 38%, 새누리당 0%, 정의당 5%로 나타났다. 차기 지지율 역시 갤럽의 11월 둘째주(8∼10일) 조사에서 반기문 21%, 문재인 19%, 안철수 10%, 이재명 8%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호남에서는 문재인 18%, 손학규 17%, 반기문 15%, 안철수 12%로 각각 나타났다.
문 전 대표로서는 20대 총선 당시 악재를 딛고 호남에서의 지지율 복원을 상당 부분 이뤄낸 셈이다. 다만 ‘호남민심의 전략적 활용’이라는 최근 발언의 후푹풍은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힘들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메가톤급 이슈 때문에 잠잠하겠지만 대선국면이 본격화되면 언제라도 문재인 전 대표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김희민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