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통상 분야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태미 오버비 미 상공회의소 아시아담당 수석부회장은 24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 문제를 불합리하게 정치 쟁점화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를 추진하겠다는 게 현실”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대표를 지내는 등 한국에서 21년을 보냈고 지금도 미 정부와 의회에 한미 통상 이슈를 조언하고 있는 오버비 부회장은 한국 정부가 국정 공백 상태에 있는 만큼 어느 때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미 통상 마찰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나.
“요즘 한국 친구들이 나에게 트럼프 시대 한미 통상 전망을 물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대목인데 ‘토토, 우리는 더 이상 캔자스에 있지 않은 것 같아’라고 한다. 주인공 도로시가 돌개바람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에 온 뒤 한 말인데, 지금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무역 정책은 현재 변곡점(inflection point)에 있다.”
―실제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선언할 수 있다는 것인가.
―환율 조작은 중국이 핵심 타깃 아니었나.
“중국은 물론이고 다른 나라도 환율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도 한국과 환율 문제로 심각한 대화가 오간 적이 있다.”
실제로 2015년 10월 미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후 내놓은 공동설명문에 ‘환율 조작 문제를 인식하고 상호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넣으려 했다가 한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한미 FTA로 미국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이 사실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틀린 주장이다. 지난해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미국의 대한(對韓) 무역수지 적자는 283억 달러(약 33조200억 원)였는데 한미 FTA가 없었다면 적자가 440억 달러(약 51조3400억 원)에 달했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그 이유를 주로 한미 FTA 같은 자유무역협정에서 찾는다.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자동화 설비 등 기술 발전에 따른 것이고 FTA로 인한 영향은 15%에 불과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서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서부 공업지대)의 실직한 백인 노동자층을 집중 공략했고 이들의 지지를 계속 받기 위해서는 FTA라는 눈에 띄는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이럴수록 정확한 ‘토킹 포인트’를 갖고 트럼프 행정부와 적극 접촉해야 한다. 가령 한미 FTA로 미국이 적자를 보고 있다고 트럼프 측이 주장하면, 한국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서비스업 교역이나 막대한 미 군수물자는 한미 FTA로 인한 ‘명세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트럼프나 윌버 로스 상무장관 내정자는 모두 협상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하지만 한미 FTA는 미국이 체결한 가장 성공적인 ‘골든 스탠더드’ 중 하나라는 인식이 워싱턴엔 여전하다. 정신 바짝 차리고 설득하면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