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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주 감사원 국장

화이트보스 2017. 3. 14. 11:12


 장난주 감사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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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1호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녔다. 행정고시 출신의 첫 여성 감사관에 이어 최초의 여성 국장에 올랐다. 개원 68년 만이다. 국장은 2급 이사관으로 기업으로 치면 고위 임원이다. 보수적 공직사회 분위기와 감사직의 터프한 업무 성격 등 보이지 않는 장벽에 대해 “당당히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고 성과로 입증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남이 가지 않은 길이라 더 매력을 느꼈다는 장 국장을 1년간의 국외교육훈련을 떠나기 앞서 TONG청소년기자들이 만났다.

-감사원이 생소할 수 있는 청소년에게 직무를 간략히 설명해 주세요.
“사회 교과서에도 나올 텐데 헌법에는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을 하는 기구로 명시돼 있어요. 한 마디로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없는지 살피는 거죠. 대통령에 소속돼 있지만 직무에 관해선 독립돼 있어요. 일반 기업에도 주요 업무를 하는 부서와 그 부서들이 올바르게 하는지 감시하는 부서가 따로 있잖아요. 감사원은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이 각자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감시하고 잘못이 발견되면 처벌하거나 개선 방안을 제시합니다.”
 

-정무장관실에서 근무하다가 왜 감사원으로 지원하셨나요?
“원래는 여성 인권과 권익 신장에 관심이 많아 정무장관실에서 일했으나 거기서는 모든 부처의 여성 권익 관련 일을 취합해서 여성단체와 협의하는 게 다였기 때문에 진취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맞지 않았어요. 마침 감사원 모집공고가 올라와 업무의 자율성과 도전적 성격에 매료돼 지원했죠. 많은 인터뷰와 철저한 검증을 하더라고요. 누구나 한번쯤 인생의 기회가 찾아온다잖아요. 적성에 맞아 열정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감사원에 여성이 많지 않았다고 하던데 근무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98년에 처음 감사관이 됐을 때 (여성 중에는) 행시 출신이 없었고 감사직도 없었어요. 고위직 여성 공무원이 드문 시대였죠. 감사 대상도 대부분 남성이라 ‘강력하게 조사하고 철저히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감사관도 남자여야 한다’는 편견이 있었어요. ‘자료 가져오세요’라고 시키는 등 경찰서에서 조서 받는 거랑 분위기 비슷해요. 감사 현장에 나갔더니 ‘여성이 투입되셨네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당시 여성들은 내부의 연구나 보고서 작성, 기획 등을 주로 배정받았죠. 그러한 편견 또한 내가 넘어야 할 벽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감사 현장에 어떻게 나가게 됐나요?
“한 번이라도 좋으니 감사를 나가게 해 달라고 컴플레인 비슷하게 열정적으로 요청하니까 결국 들어 주셨죠. 사실 감사 업무의 적합성은 개인차가 있는 거지 남녀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저의 선례 이후에는 여성 후배들의 감사 배치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현재 감사관의 15% 이상이 여성이에요. 여성 감사관이 많아져 남녀 감사 대상에 따라 보다 적절히 배치할 수 있게 됐어요. 남성 감사관이 주를 이뤘을 때는 여성 감사 대상에 약한 경우도 있었어요.(웃음) 피감자가 감사 도중 울어 버리거나 하면 남성 감사관이 당황해 딱 떨어지는 횡령이 아니라면 좀 넘어가주는 면도 있었죠. 지금은 여성 공무원이 많아져 말도 그런 건 안 되죠.”

공무원의 비위사실을 조사하는 직무 감찰. [사진=감사원 홍보자료]

-어떤 분야에 진출할 때 나와 같은 조건에서 성공한 사람이 없다면 망설여졌을 텐데요.
“비슷한 조건의 사람이 성공한 사례가 있어 도전한다면 그건 ‘레드오션(red ocean·피를 흘려야 하는 경쟁 시장)’이겠죠. 다른 전략도 있잖아요. 블루오션. 성공한 예가 없으면 오히려 더 기회가 돼요. 남들이 없으니까 한번 해 보면 재밌지 않을까요. 못하면 물론 데미지가 크지만 잘하면 조금만 잘해도 굉장히 주목받을 수 있어요. 저 역시 편견도 겪었지만 장점도 많았어요. 남성 감사관 동기들은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했지만 난 첫 행시 출신 여성 감사관이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존재감이 확실했어요. 과거의 사례만 보고 도전을 망설이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응원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해 국장까지 된 건가요?
“과장은 빨리 됐어요. 블루오션 전략이 플러스 요인이었죠. 하지만 국장이 된 건 늦은 것도 아니지만 어려움이 없었다고 할 수도 없죠. 과장급과 국장급은 자질이 다르니까. 국장은 더 큰 지휘자로서 업무 판단이나 여러 대외적 관계 등도 고려해야 하고. 선례가 없어 또 한 번 평가를 받는 시험대에 오른 거죠. 좀 더 가게 된다면 뚫어야 할 유리천장이 더 높을 것 같아요.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감사 대상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지 궁금합니다.
“기관의 인사, 예산, 사업을 주기적으로 감사하는 ‘기관감사’가 있고, 국회나 언론 등에서 제기하는 특정 이슈를 갖고 하는 ‘특정감사’가 있어요. 특정감사는 각종 리서치를 한 다음에 감사계획을 세워야죠. 고위직이 되려면 이 토픽을 잘 정해야 한답니다. 국회에서 청구하는 감사는 무조건 해야 하고 국민들도 ‘공익감사’를 청구할 수 있어요. 300명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추면 위원회가 감사 여부를 심사해요.”
 

-가장 힘들었던 감사를 꼽자면.
“SOC(사회간접자본) 민간투자 제도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공공재인 고속도로를 정부 재정이 부족하니까 민간의 투자를 받아 건설할 수 있는데요. 민간이 그런 대규모 투자를 하려면 위험부담이 크니까 정부가 최소 운영수입을 보장해 줘요. 이걸 악용해 민간기업이 고속도로 이용 수요를 부풀렸다가 예상과 달리 수요가 저조하면 손쉽게 정부에 손을 벌리는 거죠. 이걸 밝혀내는 감사인데 다 1조가 넘는 사업이라 도로공학이나 회계학적 지식이 풍부해야 하고 이 제도 자체를 통째로 겨냥한 것이라 증거도 확실히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전임자가 못 잡아내고 간암까지 걸리자 내가 투입이 됐는데 나도 막막해서 매일 울었잖아요. 이후 지휘부가 많은 아이디어를 주시고 기술사들이 도와 줘 결국 해결했어요. 지금 이 제도가 폐지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죠. 좋은 감사는 선례가 없는 새로운 문제를 푸는 거예요. 이 계기로 미국에 MBA(경영학 석사)를 하러 갔어요. 금융 파트의 감사관들은 재무관리사 등 자격증을 엄청 따야 해요.”
 

-감사원에서 일하려면 어떤 능력과 준비가 필요한가요?
“감사원에 들어오는 경로가 다양해졌어요. 기본적으로 5급 행정고시나 7급 공채가 있고 회계사, 의사, 약사, 로스쿨, 박사, 기술사 등 다양한 분야의 특채가 정기적으로 있어요. 고시 출신과 비고시 출신 차별도 없고 누구나 열심히 하면 기회를 주는 곳이 감사원이에요. 마인드가 호기심이 있어야 해요. 세팅된 정답만 외우면 문제가 안 보이죠. 생소한 기관의 업무도 빠르게 습득해야 하고. 문제의식과 탐구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언론인과도 비슷한 자질이에요. 단순히 공부를 잘하는 것만으론 부족해요. 좋은 스펙과 성적으로 감사관이 되신 분인데도 상대방의 방어논리를 그냥 이해해 버리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결국 적성에 맞지 않다며 업무를 옮기더라고요.”
 

-사회학을 전공하셨는데 행시를 공부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회학과 나오면 기자를 많이 해요. 또 공직을 선호하는데요, 우리 때는 민간 기업보다는 뭔가 공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고시생은 되게 멸시(?)하고 학교의 지원도 없어서 고시 공부를 숨어서 하는 분위기였어요. 91학번 친구들이 시위를 나가는데 나는 내 미래에 투자하는 거니까 부끄럽게 느껴졌죠. 지금 학생들은 이해를 못하겠죠?”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혹시 감사원에서도 사전에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나요?
“문화체육관광부 경우는 다른 팀에서 그 전에 하필 게이트와 관련된 ‘문화체육’이 아니라 ‘관광’ 분야를 감사했더라고요. 내가 맡은 교육부는 이화여대와 관련해 곧 감사 결과가 나옵니다. 이화여대를 특정해 감사한 건 아니고 교육부의 대학재정 지원사업을 살펴보던 중 지원 대상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던 가운데 사태가 터졌어요.”
 

(인터뷰 며칠 후 감사원이 교육부의 이화여대 특혜 의혹과 관련 고위 공무원 두 명을 중징계하라고 요구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지난 8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프라임 사업 대상에 상명대 본교가 유력했지만 청와대 측의 지시를 받고 이화여대가 선정됐다는 내용이다. 박영수 특검의 수사결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최순실이나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관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교육부는 재심을 청구할 방침이다.)

-요즘 안정적인 직업으로서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공무원은 물론 직업의 안정성이 높죠. 하지만 고위직은 꼭 그렇지도 않아요. 고위직까지 가는 과정은 안정적이지만 1급은 신분이 보장되지 않아 정년 60까지 채우는 분이 없어요. 공무원을 선호할 수는 있는데 단지 안정적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이 ‘정시 퇴근하니까 할래’ 이런 생각은 별로예요. 우선 정시 퇴근하는 감사원 공무원은 한 명도 없고요. 야근도 많고 업무 강도가 굉장히 세요. 안정적이라서 공무원을 택한 사람은 업무몰입도가 낮을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직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 수 없지 않을까요.”
 

-최근 정치권에서 외무고시, 사법고시에 이어 행정고시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는데요.
“로스쿨이나 국립외교원이 아직 효과성 분석이 안 됐죠? 정책적 판단으로 없앴을 수는 있지만 그러려면 논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행시 출신들이 기수문화라든지 특별히 폐해가 많다는 얘기는 못 들었거든요. 몇 백 년 된 과거 시험이잖아요. 로스쿨과 외교원 제도가 성공하는지를 보고 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감사원이 야근도 출장도 많다고 하셨는데 자녀를 키우기가 힘드셨을 것 같아요.
“감사원뿐만 아니라 직장을 가진 모든 여성의 고충이겠죠. 그래도 공무원이니까 기업보다는 출산과 육아에 대한 복지혜택이 좋잖아요. 내 경우는 양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이를 초등학교 전까지는 지방 할머니댁에서 키웠거든요. 지금 여성 감사관들이 다 그래요.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하죠. 남편의 조력도 많이 받았어요. 요즘은 세종시나 지방 혁신도시에 공공기관들이 많아 지방 출장이 더 많아요. 예전에 정무장관실에 있을 때는 호텔에서 잤는데 감사원은 출장이 워낙 많아 모텔에서 자야 하고요. 바퀴벌레가 나온 적도 있어요.(웃음) 한번은 동료가 갑자기 빠져 나 혼자 모텔에 가게 됐는데 방을 안 주더라고요. 검정 버버리코트에 캐리어를 끌고 오니 자살하러 온 사람으로 봤나 봐요. 어떤 분은 모텔에서 시트를 안 갈아 준다며 침낭에서 잤다는데 나는 예민한 편이 아니라 다행이에요.(웃음) 스트레스 적지 않은 일이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어요.”

글=홍수인(성균관대 3)·한고운(성신여대 2)·김태경(경희대 1) TONG청소년기자
도움=박정경 기자 park.jeongkyung@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oh.jongta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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