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돗개의 고향,
신비의 바닷길 진도!
1) 녹진전망대와 진도대교
∙ 위치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산 2-80
∙ 전화번호 ; 061-544-0151(진도군청 문화관광과)
∙ 운영시간 ; 종일, 연중무휴
∙ 입장료 ; 없음, 주차가능
가까이는 진도대교와 해남 땅을, 멀리로 남해안 바다 위 곳곳에 떠 있는 섬까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다. 이곳의 풍경은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니 언제 올라도 매번 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진도대교를 넘어 우회전하자마자 다시 좌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으니 잘 찾아야 한다. 위로 오르면 작은 공원이 꾸며져 있고 가장 놓은 곳에 2층의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진도대교 아래 물살이 참으로 거친데 바로 이곳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두었던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둘목으로 거친 물살이 내는 소리가 전망대까지 들린다. 시선을 멀리 하면 파란 바다 위로 녹색의 섬들이 곳곳에 보이는데 다도해 최고의 전망을 가진 곳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아름다움이다. 밤에 이곳을 찾으면 불빛으로 치장된 진도대교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우리나라의 20여 곳의 국립공원 중 바다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은 서해안의 태안반도와 변산반도국립공원, 남해안의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그중에서도 바다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찾을 수 있는 곳이 남해안의 두 곳인데 한려해상국립공원은 거제, 통영, 사천, 하동, 남해, 여수 오동도의 여섯 개 지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도해국립공원은 여수 돌산면에서부터 전라남도 신안군에 이르는 구역으로 일곱 개 지구로 나뉘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국립공원이다. 녹진전망대에서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 우수영 국민관광지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고 있는 진도대교의 북단에 위치한 우수영 국민관광지는 임진왜란 당 시 3대 수군대첩지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1597. 9. 16)의 격전지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133척의 배를 격파하는, 세계해전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11의 대승첩 을 기록한 곳이다.명량해협은 해남과 진도 를 잇는 수로로 가장 좁은 부분의 폭이 325m, 수심 25m 미만으로 격류가 부딪쳐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므로 명량 또는 울돌목이라고 불린다. 이충무공과 휘하 장병 및 지역민들의 구 국충절을 민족혼의 상징으로 길이 보전, 관리하기 위하여 1986년 국민관광지로 지정, 1990 년 명량대첩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였다
공원에는 명량대첩탑, 명량대첩 의의비, 어록비 등 8종의 시설물 이 있으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명량해협의 경관과 진도대교의 위용이 일품이다. 눈 앞에서 소용돌이치는 울돌 목과 전적비, 사당, 비각과 당시의 군창, 객사, 토성, 전적지 등은 전투상황을 간접 체험 할 수 있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전시관에는 거북선의 실제모형과 절개모형, 당시에 사용되었던 판옥선의 모형, 무기류 등 이 전시되어 당시의 전황을 소개해 주고 있으며, 보물 제503호로 지정된 명량대첩비의 탑본과 무형문화재 8호로 지정된 강강술래의 배경화가 전시되어 있다.
* 명량대첩[鳴梁大捷>
조선 선조 30년(1597)에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명량에서 왜선(倭船)을 쳐부순 싸움. 12척의 전선(戰船)으로 적 함대 133척을 맞아 싸워 31척의 적선을 격파하여 크게 이겼다.
*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
직역할 경우 ‘만약 호남이 없었으면 곧바로 나라는 없어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이는 ‘발해고(渤海考)’의 저자로도 유명한 유득공(柳得恭)이 1795년(정조 19년) 왕명에 따라 편찬한 이순신 장군의 문집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끝부분 서간문 모음집에 실려 있는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포함돼 있는 글이다.
3) 이충무공 전첩비
∙ 규모 : 가로14m, 세로18m 넓이, 11m 높이
∙ 소재지 : 고군면 벽파리 682-4번지
진도읍에서 동편으로 12km 떨어진 고군면 벽파리 682-4번지에 위치한 이 비석은 1956년 11월 29일 제막식을 가졌으며, 노산 이은상선생이 글을 짓고 진도 출신 서예가 소전 손재형 선생이 걸작의 글씨를 남겼다. 1984년 진도대교가 놓여지기 이전만 하더라도 진도로 들어오는 관문이었으며, 명량해협의 길목이기도 하다. 이 비석은 진도 군민들의 성금을 모아 세워졌으며,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에 대한 당시의 역사(歷史)가 적혀있다. 일본 대마도를 굽어보며 장엄하게 세워진 이 비석은 가로 14m, 세로 18m의 넓이로 암석을 다듬고 석축을 쌓아 이충무공의 넋을 담고 있으며 11m의 웅장한 높이를 지니고 있다. 또 비석의 주추는 2.72m의 길이에 3.33m의 폭과 1.81m의 높이를 한 거북이는 바위를 깍아 만들어 그 등허리에 비석을 세웠다. 머리에는 쌍용이 휘감은 채 양편으로 머리를 내놓고 있는데 높이 1.21m, 가로 2.12m, 세로 1.21m로 9톤이나 되는 중량을 싣고 있다. 아침이면 햇살이 비쳐 눈이 부시고 석양이면 비석의 그림자가 바닷물까지 와닿는다.
4) 용장산성(삼별초의 유적지)
∙ 지정일 : 1964년 6월 10일
∙ 지정번호 : 국가지정 사적 제 126호
∙ 규모 : 산성일원 (19,921㎡)
∙ 소재지 :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길92
고려시대 삼별초가 진도를 근거지로 관군과 몽고군에 항전했던 성이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고려 원종 때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반대한 삼별초군은 원종의 육촌인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진도로 내려와 항거하는데 고려의 장군 배중손(裵仲孫)이 이끈 삼별초군이 대몽항쟁(1270~1271)의 근거지로 삼은 성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38, 741척(尺), 높이 5척이라 하였을 뿐, 그 이상의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성의 길이는 군내면의 용장리, 세등리, 고군면의 도평리, 벽파리, 오류리를 잇는 산등성을 따라 총 12.75km이며 높이는 4m내외이다.
진도군은 의신면 사천리 일원에 삼별초 전시관, 농어촌 체험관 등을 갖춘 운림지구 농어촌 테마공원 조성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농업·농촌 테마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삼별초 항쟁을 소재로 한 역사테마공원을 조성한다는 것.
총 88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운림지구 농어촌테마공원 조성사업은 면적 12만8600㎡ 부지에 삼별초 홍보전시관, 농어촌체험장, 공중화장실 등 총 4동에 674.79㎡의 건축물을 갖춘 공원을 조성한다.
오는 2012년 8월 운림지구 농어촌테마공원 사업이 완료되면 인근의 운림예술촌, 국가지정 명승지 운림산방, 남도전통미술관, 쌍계사, 첨찰산 상록수림 등과 연계한 진도제일의 관광휴양 단지가 조성될 예정이다.
진도군수는 “의신면 운림지구 농어촌 테마공원을 시작으로 삼별초 호국 유적지를 본격적으로 정비해 진도를 ‘삼별초의 성지’ 등 역사 관련 테마 관광지로 개발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5) 진돗개(우리나라고유의 토종견) 사업소
인류가 야생동물을 가축화한 최초의 동물이 개라는 것은 구석기시대 화석에서 개의 유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능히 입증할 수 있다. 진도의 자랑인 진도개는 가축으로서 사육하게된 뚜렷한 기록이 없으나 구전된 바에 의하면 4가지 유래설이 있다.
첫째, 남송시대 무역선이 진도 근해에서 조난 당하였을 때 남긴 남송국 개가 상도하여 진도개의 시조를 이루었다는 설.
둘째, 고려 원종때 삼별초군이 강화도에서 관군과 몽골군에게 항거하려고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일이 있었다. 그때 몽골군이 난을 평정하기 위하여 관군과 함께 진도에 원정시 남기고 간 개의 후손이라는 설.
셋째, 조선 초기에 진도군 지산면에 설치하였던 국영(관마) 목장의 병견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당시 몽골에서 수입했다는 설.
넷째, 우리나라 고유견이 있어 번식유지해 왔는데 진도에 분포했던 개만이 육지와 격리되어 타견과 혼혈됨 없이 순수 번식으로 고유의 혈통을 보존하여 오늘의 진도개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진돗개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 귀소본능, 용맹성, 대담성, 결벽성, 수렵본능, 경계성, 비유혹성 등의 우수한 품성을 지니고 있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견이자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명견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우수한 품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번 주인이면 평생주인으로 섬기며 배반하지 않는 정직한 품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어려서 부터 정들여 기르지 않고, 성견을 구입하여 기르면 붙입성이 적어 새 주인과 친숙해지는데 매우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먼곳에 갔다 두어도 객선(客船)에 편승하거나 혹은 헤엄쳐서 영리하게 집을 찾아오는 경우가 허다 했으며, 97년도에 광주 모 방송사에서 실제 실험해본 결과 사실로 판명 되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였다.
수렵본능이란 개가 직접 노루, 토끼 등 다른 짐승을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고 쫓아 직접사냥하는 본능적인 품성을 말한다. 이러한 품성은 뛰어난 후각과 지구력, 대담하고 용맹스러운 성격을 겸비하고 있어서 가능한 것이며, 한번 추적한 짐승은 끝내 잡고야 마는 끈질긴 승부근성이 매우 강하다. 또한 집에서 생후 3~4개월의 강아지는 쥐를 잡는 등 천부적인 수렵본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비유혹성이란 주인외에 타인이 아무리 좋게 하거나 기호품을 주어도 받아 먹지 않으며 꼬임에도 넘어가지 않는 품성을 말하며 약간의 훈련을 요하는 품성이다.
강아지때부터 훈련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불결한 곳을 찾아 대소변을 가리고 자신의 몸에 대해 지극히 깔끔한 것이 천성이며, 옛날시골 밥을 차려 부엌에 그대로 두고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주인의 눈을 피해 음식을 훔쳐 먹는 일이 없으며, 주인이 주면서 먹으라고 해야만 먹는 성품은 인간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전혀 낯모르는 타인과 주인을 철저히 식별하여 타인의 태도나 행동에 대해 철저하고도 예리한 경계심은 도둑을 지키는 번견으로써 손색이 없으며 후각과 청각이 뛰어나 수천평의 농장이나 공장도 한 마리로써 능히 지킬수 있다. 또한 주인에게는 항상 순종하나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경계심을 풀지 않으며, 영리한 개일수록 주인과의 관계를 스스로 관찰하여 타인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판단해내는 능력이 뛰어난 품성을 지니고 있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체구에서 용기와 기백이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굽힐줄 모르는 용맹성과 대담성을 갖고 있다.
위와 같은 진도개의 여러가지 우수한 품성 때문에 한번 길러본 사람은 매료 되어 진도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진돗개사업소는 3개 (운영, 혈통관리, 테마파크)의 담당이 있으며 하는일은 진도개홍보, 진도개연구(질병, 체형, 유전자, 인공수정, 진도개방역), 진도개관리(시범종견장, 종모견지정, 진도개심사), 사육견 관리업무를 하고 있다.
진도개사업소는 진도개홍보관, 진도개질병관리센터, 진도개사육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육장은 4동 57칸의 견사와 훈련장, 진료실, 공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훈련장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훈련을 하고있다.
담당부서 진도개사업소 운영담당 김경수 ☎ 061-540-6308
돌아온 백구
∙ 견 명 : 백구(암)
∙ 생존기간 : 1989년 ~ 2000년 2월
∙ 사건 발생일시 : 1993년 10월
∙ 견주인
- 주 소 :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 803
- 성 명 : 박복단 (당시나이73세)
7개월여만에 기적적으로 돌아온 백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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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아온 백구는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의 충성심과 귀소본능의 품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준 충견이다.
- 강아지때부터 기르던 5년생 암컷 백구가 대전지역 애견가에게 팔려갔다가 7개월여만에 뼈와 가죽만 앙상하게 남은채로 전 주인 할머니(박복단)품으로 되돌아와 화제가 되었다.
- 대전으로 팔린 진돗개 백구는 자신을 길러준 주인을 잊지 못해 산넘고 물건너 대전에서 진도까지 팔백리길을 7개월 동안 고향의 바다냄새를 쫒아 달려와 옛 주인인 박복단 할머니 품으로 되돌아 왔다.
- 화제의 주인공 백구는 주인인 박복단 할머니의 정성스런 보살 핌으로 기력을 회복하고 임신까지 해 지인들로부터 또 한번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 백구는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스런 보살핌속에 행복하게 지내다 2000년 2월 12세의 나이로 주인인 할머니 품에서 차마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았다.
6) 신비의 바닷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신비의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古郡面 回洞里)와 의신면 모도리(義新面 茅島里) 사이 약 2.8km 바다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바다밑이 40여m의 폭으로 물위로 드러나 바닷길이 열린다는데 신비로움이 있다.
바닷물은 하루 두차례씩 들고 쓰는데 조류의 속도나 태풍 등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구가 형성되어 있다. 매년 이 현상을 보기 위해 국내외 관광객 수십만명이 찾아와 바닷길이 완전히 드러나 있는 약 1시간의 기적을 구경한다. 전세계적으로 일시적인 현상을 보기 위해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진도군에서는 국내외 관광객들을 맞아 진도 고유의 민속예술인 강강술래, 씻김굿, 들노래, 다시래기 등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만가, 북놀이 등 전라남도 지정 무형문화재를 선보이고 다양한 이벤트로 볼거리를 제공해 해마다 관광객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이곳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 씨가 진도로 관광을 왔다가 이 현상을 목격하고 귀국 후 프랑스 신문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1996년에는 일본의 인기가수 덴도요시미씨가 신비의 바닷길을 주제로한 "진도이야기(珍島物語)"노래를 불러 크게 히트하면서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바닷가 사당에 모셔져 있는 뽕할머니 영정은 진도 출신 동양화가 옥전(沃田) 강지주 화백이 그렸으며 문을 열면 기적의 현장을 바라보게 되어 있고, 바닷길 입구에는 2000년 4월 제작된 뽕할머니 상징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7) 운림산방
∙ 소재지 :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사천리 64)
∙ 안내번호 : Tel:061-540-6286, 토요경매문의 061-287-5206
운림산방은 첨찰산을 깃봉으로 수 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루었을 것이고, '연화부'를 지었던 소치의 사상으로도 운림(雲林)이라는 당호(堂號)가 걸 맞았을 것이다.
∙ 1981.10.29. ~ 2011. 8. 7. 전라남도지정기념물 제51호
∙ 2011. 8. 8. 국가지정명승 제80호 지정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재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유서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5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전통남화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운림산방은 조선조 남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유(維)가 말년에 거처하던 화실의 당호로 일명 '운림각'이라고 한다. 소치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호를 붙여준 것이며 젊었을때는 련(鍊)이라 했고 자는 마힐(痲詰)이다.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약 150m를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있다.
소치는 1808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허각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3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치는 어려서 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어 28세 때부터 두륜산방(현, 해남 대흥사)의 초의대사(草衣大師 : 張意恂) 밑에서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면서 그림을 익히기 시작하여 33세때 초의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 밑에서 본격적인 서화수업을 하게된다. 비록 낙도에서 태어났으나 천부적인 재질과 강한 의지로 시(詩), 서 (書), 화(畵)에 능하여 40세 되던 1847년 7월 낙선재에서 헌종을 뵐 수가 있었고 헌종이 쓰는 벼루에 먹을 찍어 그림을 그렸는가 하면 흥선대원군, 권돈인, 민영익, 정학연 등을 비롯하여 권문세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1856년 추사가 세상을 떠나자 소치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첨찰산 아래 쌍계사 남쪽에 자리를 잡아 집을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소치가 서화에 뛰어나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했으며 정문조는 여기에 시를 더하여 삼절(三節)이라 하였고, 김정희는 중국 원나라 4대화가의 한 사람인 황공망을 '대치(大痴)'라 했는데 그와 견줄만 하다고 소치(小痴)라 했다고 한다.
∙ 남도예술은행 토요경매 : 특별한 볼거리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운림산방에서는 남도예술은행이 개최하는 토요경매가 열린다. 남도예술은행이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엄선해서 매입하고 그것을 경매에 내어 놓는데 한국화, 문인화, 서예 등이 대부분이다. 꼭 경매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좋은 볼거리가 되니 시간을 맞추어 찾아보면 좋겠다.
8) 소치기념관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 안에 있다. 운림산방은 조선말 남종화의 대가였던 소치(小癡) 허유(許維)가 만년을 보낸 곳으로, 본채와 초가로 된 사랑채, 화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기념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종 문인화의 대가인 소치(小癡)허유(許維), 미산(米山) 허형(許瑩), 남농(南農) 허건(許健), 임전(林田) 허문(許汶) 등 4대의 작품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9) 진도역사관
선사시대이래 진도 지역 고유의 역사유물을 보존·전시하고, 진도의 민속과 자연환경 등을 소개하기 위하여 설립한 전시관으로, 2003년 10월 31일 개관하였다. 건축총면적 1,710.87㎡의 1층 규모이며, 진도군 운림산방(雲林山房; 조선 후기의 화가 허유가 만년에 기거하던 화실) 부지 내에 있다.
진도지역 고유의 역사유물을 영구히 보존함으로써 후세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된 진도역사관은 삼별초실, 유배문화실,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도서문화와 유배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민속유산을 보존하고 후배들에게 계승ㆍ발전 시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총 228점의 전시품이 갖추어져 있는 상설전시실은 선사/고대실(돌보습·돌낫·돌칼·고인돌 모형 등 전시)·삼별초항쟁 코너(대동사강 영인본·삼별초 무기·용장산성 및 용장산 전투 관련 전시물·남도석성 모형 등 전시)·명량대첩 코너(조선시대 무기 모형과 명량대첩 해전 모형 등 전시)·유배문화실(문곡연보 영인본·목칼과 형틀 등 조선시대 형구 모형 등 전시)·역사의 발자취 코너(망헌선생 유집 영인본·근현대의 진도 지도와 사진 등 전시)·향토문화실(진도군읍지 영인본·화로와 베틀 등 생활도구·쟁기와 홀테 등 농기구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향토작가전시실(기획전시실)에는 허백련·하철경·박행보 등 진도 출신 작가들의 서화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영상실에서는 진도의 역사와 현황, 민속과 자연환경 등에 대한 영상물을 상영한다. 휴관일은 월요일이다.
10) 소전미술관
소전미술관은 추사 김정희 이래 서예대가인 소전 손재형 선생의 작품과 그를 위해 작업된 국내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남도문화의 새로운 자랑거리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소전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소전선생의 유족들이 소장하고 있던 부친의 평생역작과 소전 생전에 그를 위해 국내 거장들이 심혈을 기울인 그림들을 진도군에 기증한 것으로 논산 이은상시비문 등 소전 손재형 선생의 주옥 같은 작품과 소장 그림 300여점을 교대로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실에는 선생의 청년시절 작품이, 2전시실에는 문인화, 3전시실에는 장년시설등의 작품, 4전시실에는 양지니, 서희환, 박행보 등 제자들의 작품과 의제 허백련선생등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진도군청사 옆에 위치한 소전 미술관은 5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2003년 4월부터 내부개조공사를 실시해 방습시설등을 갖춘 4개의 전시실과 영상관, 사무실을 갖추고 2003년 5월 31일 소전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에 맞추어 소전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 위치 : 전남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63-1, ∙ 연락처 : 061-544-3401, 540-3540
∙ 관람시간, 3월부터 10월까지 : 09:00~18:00, 11월부터 2월까지 : 09:00~17:00
∙ 관람요금, 어린이 : 개인 500, 단체 300, 청소년 및 군경 : 개인 1,000, 단체 700, 어른 : 개인1.500, 단체1,000
11) 향토문화회관(토요민속문화체험)
예로부터 진도는 전통민속의 보고이자 시 ·서 ·화 ·창 을 꽃피워낸 예술의 고장 이다. 수려한 자연환경과 비옥한 농토, 드넓은 청정해역이 펼쳐져 있고, 인심 또한 후하여 한때 옥주(沃州)라 불리웠고 군민들이 민속에 대한 소질이 뛰어남은 일찍이 문인들의 유배 문화와 고유한 토속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때문인것 같다.
우리 고유의 전통민속을 대변함으로써 우리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고자 향토문화회관에서 매주 토요일이면 인간문화재와 전수생들의 민속공연이 펼쳐진다.
진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군립민속예술단이 펼치는 민속공연은 이 고장을 찾는 관광객에게 우리민족의 정신적 뿌리를 실감케 하고 다도해 섬사이로 떨어지는 세방낙조의 비경에 취하고 민속민요의 가락속에 진도의 명주 "홍주"를 음미하면서 진도의 밤은 깊어만 간다.
토요일 오후 진도에 오시면 신명나는 우리가락 한마당과 고유의 전통민속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소진도 토요민속여행 상설공연은 마음의 여유를 찾고 휴식을 시작하는 토요일 오후 멋과 흥이 담긴 전통 민속공연 관람을 통해 일주일의 삶을 정리하고 쌓인 피로감을 씻어낼 수 있는 멋들어진 우리 가락 한 마당을 보여드립니다.
진도에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4종(강강술래ㆍ남도들노래ㆍ씻김굿ㆍ다시래기)과 도지정무형문화재 5종(진도북놀이ㆍ진도만가ㆍ남도잡가ㆍ소포 걸군농악ㆍ조도 닻배노래)을 비롯한 진도 아리랑의 흥겨움과 남도민요ㆍ민속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 전승되고 있어 이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됩니다.
진도인이 지켜온 고유의 전통민요ㆍ민속을 중심으로 기악, 무용, 사물놀이 등 민속악 전반에 걸쳐 구성되어 진도 토요민속여행 상설공연을 찾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전통 민속의 원형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된 공연입니다.
12) 남진미술관
∙ 위 치 : 진도읍에서 남서쪽 방면 약 8K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 전 시 관 : 800여평의 대지위에 100평의 한국 고유의 전통적 건축물인 본가와 연원관, 온고관이 우아미를 자랑하고 있으며, 150여평의 현대식 건물로 지상 3층의 미술관과 사제서예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연원관과 現古 도자기 전시실인 온고관이 있다.
∙ 전 시 품 : 서예, 동양화, 서양화, 조각 도자기등 작품 300여점 전시.
∙ 자연경관 : 미술관 옆 동산에는 울창한 노송이 우거져 있고 멀리 여귀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며 주변 계곡의 맑은 물과 수림(樹林)들이 농촌의 그윽한 정경과 한데 어울려 원시적 정감이 깃들고 있다.
진도읍에서 서남쪽 방면으로 8km 지점에 위치한 남진 미술관은 서예가 장전(長田) 하남호선생이 사비를 들여 1989년 11월 29일 800여평의 대지 위에 100평의 본가, 연원관, 양서제, 그리고 150평의 지상 3층 미술관이 건립되어 서예, 서양화, 동양화, 조각, 고대자기, 분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남진(南辰)'이라는 명칭은 장전 선생의 이름 가운데 자인 '남'자와 부인의 이름 '진'자를 합하여 지은 것이다. 미술관 옆 동산에는 울창한 노송이 우거져 있고 멀리 여귀산 봉우리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며 주변 계곡의 맑은 물과 수림들이 농촌의 그윽한 정경과 고요함이 한 데 어울려 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소장해오던 작품들로 국사책에서 나오는 유명 인사들의 국보급 미술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13) 비자나무
∙ 지정일 :
1962년 12월 3일
∙ 지정번호 :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111호
∙ 규모 : 높이 9.2m, 둘레 5.6m
∙ 소재지 : 진도군 임회면 상만길 39 (상만리 980)
∙ 안내번호 : Tel : 061-540-3084
6백년 이상의 수령을 지니고 있는 이 나무의 크기는 높이 9.2m, 둘레 5.6m이며 가지의 길이는 동쪽 5.1m, 서쪽 6.4m, 남쪽 6.5m, 북쪽 5.8m, 가량으로 뻗어있다. 웅장하고 야무지게 생긴 이 나무는 임회면 상만리 위쪽에 있는 참비자나무로 열매만도 여섯말이 넘는다.
10년 전까지만 하여도 바로 이 거목 밑에서 솟는 샘물을 식수로 썼으나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샘을 떼어서 독립시키고 그 주위에 석축을 쌓아 보호하고 있다. 나무 부근에는 모기가 서식하지 않으며, 마을에 있는 나무여서 개구장이들이 올라가서 노는 일이 많으나 아이들이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 하여 마을에서는 신목(神木)으로 섬기고 정월, 8월 보름에는 온마을 사람들이 나무 아래 모여 마을을 지켜온 이 거목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소나 돼지를 통채로 잡아놓고 정갈하게 지은 메를 올려 지내는 제사는 이 마을의 가장 큰 제사이다. 제주(祭主)는 정월 초 나흘부터 목욕 재계하고 바깥 출입을 삼가하며, 금줄을 나무 주변에 치고 제주를 장만할 때도 절대로 맛을 보지 않는 등 엄격한 금기를 지킨다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 제사와 함께 이 마을 남녀가 편을 갈라 벌이는 줄다리기 시합도 빼놓을 수 없는 행사이다. 이 행사가 끝나면 제사에 장만한 음식을 주민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즐긴다. 이 나무의 내력은 확실치 않으나 상만사(上萬寺) 입구에 서있어 고려시대 심어져 자란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14) 금골산 오층석탑
∙ 지정일 : 1971년 1월 8일
∙ 지정번호 : 보물 제529호
∙ 규모 : 5층 석탑
∙ 소재지 : 진도군 군내면 금골길68-31
보물 제529호 금골산 5층 석탑은 군내면 금성초등학교 교정 안에 위치하고 있다.
석탑의 초층 탑신부의 구성 형태는 갑석이 두껍고 밋밋하며 경사를 주지 않아 수평인 점은 정읍 은선리(隱仙里) 삼층석탑과 일맥상통하여 백제 양식의 남하를 입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높이 4.5m인 이 석탑은 단층 기단에 5층 석탑으로 1층 탑신이 매우 높은 것이 특이하다. 기단 높이 104cm, 갑석폭 180cm로 맨 밑에 지대석은 4장 판석을 깔고 기단면석은 4장 판석인데 각면에 우주와 중앙에 장주 1주가 모각되어 있다.
결국 수법은 남북으로 벽판석이며 동서쪽에는 삽입식으로 끼워보였다.
갑석은 2장 판석으로 상하 수평이며 하면에 부상이 없고 상면에는 괴임석이 각출되지 않았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이 1개씩인데 1층 탑신에서만 4장 판석으로 결구되었다.
금골산 5층 석탑의 기단부 및 초층 옥신에서 정읍 은선리의 3층석탑의 양식을 따랐음은 주목할만한 일이며, 한국 육지의 최남단인 이곳 섬에 이르기까지 백제 양식의 모형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은 불교문화의 발달사적 견지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예라 할 수 있겠다.
금골산 5층 석탑은 석질 등이 별로 좋지 않고 우주(隅柱)간의 체감비례 등이 맞지 않으나 보물로 지정한 것은 고려 후기의 작품이면서도 백제탑의 양식이 채택되고 있기 때문이다.
15) 남도 석성
∙ 소재지 :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
∙ 지정일 : 1964년 6월 10일
∙ 지정번호 : 국가지정 사적 제 127호
∙ 규모 : 석성일원 (20,932㎡)
∙ 소재지 : 진도군 임회면 남도길 8-8 (남동리 149)
남도 진성은 고려 원종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성이라고 전한다.
고려시대 고종 이후 시작한 왜구의 침범이 연해 지방을 노략질 함으로써 충정왕 2년 (1350)에는 진도의 관부와 백성들은 내륙 영암지방으로 옮겨 조선시대 세종 19년(1437년)까지 피난생활을 하다 다시 귀향한 것이다. 이들 수군진들의 축성 연대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불리한 경상도 및 전라좌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1488년 (성종 19년)에서 1490년(성종 21년)까지 3년간에 걸쳐 축성되고 전라우수영 관하의 수군진들이 연산군 - 중종 연간에 축성된 점으로 미루어 볼때 성종 - 연산군 연간에 이 성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도석성 본래의 규모는 그 둘레가 1,233자, 높이가 8자,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 그러나 영조때 석축 둘레 1,040자, 높이 12자였다고 하는데 현재는 성지가 거의 원형적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동문, 서문, 남문터가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 높이는 5.1m다. 이 성은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그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남도진성에 있는 쌍교와 홍교는 성의 외곽을 건너 다니기 위하여 축조한 것인데, 편마암의 자연 석재를 사용한 것으로는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어 학계에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16) 세방낙조
∙ 소재지 :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
진도 해안도로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다도해의 경관은 압권이다. 이곳에서 보는 낙조는 환상적이다. 해질 무렵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일몰의 장관은 주위의 파란 하늘을 단풍보다 더 붉은 빛으로 물들인다.
오죽하면 중앙기상대가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했을 정도. 이 해안도로는 다도해의 아름다운 섬들을 한눈에 볼수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다도해 드라이브 코스다. 많은 숲들과 청정해역에서 뿜어내는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드라이브를 하다 보니 육체의 피로함이나 근심, 걱정이 모두 다도해의 푸른 물결 속으로 사라진다.
세방낙조에서 보이는 섬들
주지도, 양덕도 : 이 섬들은 소나무로 에워쌓여 있는데 정상에는 화강암이 뭉쳐 이루어진 형상이 손·발가락처럼 생겼다고 하여 손·발가락섬으로도 부르며 일몰때는 장관을 이룬다.
혈도 : 구멍뚫린 섬이라 하여 공도라고 불리기도 하며 구멍을 통하여 다도해 전경을 바라보면 신비하고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광대도 : 바다 가운데에 괴석으로 이루어진 섬으로 앉아 있는 모양이 마치 적을 응시하고 있는 사자 모양과 비슷하다고 하여 사자섬이라고 부르며 숲과 기암으로 어우러진 풍경은 극치를 이루고 있다.
17) 관매도 명품마을
∙ 규모 : 면적 4.3㎢
∙ 소재지 : 전라남도 진도군(북위38° 13′동경 126°0.04′)
진도 본도 서남쪽 끝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서남해상 동북쪽으로 (팽목항에서 24km 거리) 가노라면 두둥실 떠있는 해중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고시 된 조도6군도 중의 대표적인 절경의 집산지인 관매도(면적 4.3㎢ 북위38° 13′동경 126°0.04′)가 있다.
관매도에는 천연기념물 212호로 지정된 후박나무가 있으며 사계절 늘 찾아오는 강태공들의 낚시터로도 유명하며 특산물로는 자연산 돌미역, 멸치, 꽃게, 우럭, 농어, 돔 등 싱싱한 자연산 활어가 많이 생산된다.
제1경 관매도 해변(곰솔 해변)
관매도 해변은 동서로 3km에 이르는 백사장의 고운 모래와 청정해역의 맑은 물과 얕은 수심은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격이며, 해수욕장 주위에는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하는 송림(곰솔 숲 3만평)이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하고 토수가 방금 미장이나 한 듯 깨끗함이 도를 넘어 극치에 달한 아름다운 모래 사장이 있으며, 이곳이 바로 전설의 섬 관매 8경 중의 제1코스인 천혜의 관매해변이다.
관매도해수욕장은 길이가 꽤 길고, 폭 또한 80m정도인데다 수심도 얕아 해수욕을 즐기기에 아주 적합한 곳입니다. 편의시설도 왠만한 해수욕장 못지않게 잘 갖춰져 있는 것도 큰 매력입니다.
관매도 해수욕장 해변을 따라 모두 19기의 몽골텐트를 구비하고 있는데, 하루 빌리는데 가격도 2만원 정도로 싼 편입니다. 마을 내에는 일반 가정집에서도 민박이 가능하고, 민박과 횟집을 겸한 숙박시설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제2경 방아섬(남근바위)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방아섬.. 방아섬 위의 바위는 남근바위로 알려져 있습니다.
방아섬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던 곳이라 전하는데, 일명 남근바위라 불리기도 합니다. 작은 섬 위에 우뚝하니 서 있는 바위의 모습은 영낙없는 그 모습입니다.
방아를 찧을 때 필요한 것이 방아확, 방아공이인데 이 모습이 남여의 성행위와 연관지어지고, 선녀가 내려와 방아를 찧었다는 것도 그와 연관되어 내려오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없는 여인이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하면 아이를 얻는다고 하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제3경 돌묘와 꽁돌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애지중지하는 꽁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옥황상제의 두 아들이 가지고 놀다가 지상으로 떨어뜨리게 되는데, 하늘장사를 아래로 내려보내 꽁돌을 가져오게 명합니다. 하늘장사가 꽁돌을 왼손에 받쳐들고 막 하늘로 오르려는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거문고 소리에 매료되 하늘로 올라갈 줄 몰랐습니다.
옥황상제는 다시 두명의 사자를 시켜 하늘장사를 데려오게 했는데, 두 사자마저 거문고 소리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자 화가 난 옥황상제가 노하여 돌무덤을 만들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돌무덤이 돌묘고, 그 위에 올라 앉은 것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꽁돌이라 합니다. 신기하게도 꽁돌 아랫부분에는 하늘장사가 받쳤던 손바닥처럼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관매도에 들어와 관매도 해수욕장에서만 즐길 것이 아니라 산책삼아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제4경 할미중드랭이굴
할매중드랭이굴
파도 몰아치던 밤, 파도소리는 그 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바람 몰아치던 밤, 바람소리는 그 곳에서 나오지 않았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파도를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린다. 몰아치고 소리만 남기고 떠난다. 비가 바다위로 소리없이 떨어지던 날, 검은 안개가 동굴에 가득하던 날, 오래 전 만났던 사람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는 검은 안개 할미 도깨비가 되었다. 김성문 |
제5경 하늘다리
하늘다리는 마치 칼로 정교하게 잘라놓은 듯이 갈라져 있는 기암입니다. 선녀들이 날개를 벗고 쉬어간 곳이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위산 중심부를 칼로 자른 듯이 똑바르게 갈라져 그 폭이 3∼4m이고 바다 수면으로 돌을 던지면 물에 떨어져 닿는 시간이 13초가 걸리는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그위에 감히 서 있을 수 없어 엎드려서 머리만 내밀고 내려다 보면 산이 움직이는 듯 온몸에 찬 기운이 오싹할 정도이며 그 주변 기암절벽에 감탄을 억제할 수가 없는 절경이다.
제6경 서들바굴폭포
방아섬에서 방아를 찧던 선녀들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밥을 지어먹었다고 하여 이곳 주민들은 7월 백중에 여기에서 밥을 지어먹고 폭포수의 물을 맞으면 피부병이 씻은 듯 낳는다고 한다.
폭포수는 바닷물이 들면 바닷물 위로 떨어지고 썰물 때는 자갈위로 떨어진다.
「서들바굴폭포 전설」은 선녀들이 방아를 찧던 「방아섬 전설」과 선녀들이 쉬었다는 하늘다리 전설과 함께 지명 전설군을 이루고 있다. 기이한 자연장관이 이러한 전설을 파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7경 하늘담(벼락바위)
관매도에서는 매년 청년을 제주로 추대해 당제를 올렸는데 그 전 후 1년동안에는 처녀를 만나는 것이 금기되어 있는데 제주로 추대된 청년이 그 기간에 전부터 사귀어온 처녀를 만나게 되는데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벼락을 때려 한쪽섬 전체가 깍아지른 절벽으로 되었고 그후 이곳을 하늘담 또는 벼락바위라고 부른다. 그리고 청년과 처녀가 죽어서 다리여의 구렁바위가 되었다.
제8경 다리여
서들바굴을 지나면 구렁이 바위가 있는 다리여가 나온다. 이곳은 바닷물이 많이 빠졌을 때 한달에 4∼5회 정도 갈수 있으며 이곳에는 자연산 돌미역, 톳, 돌김, 우뭇가사리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하늘담에 벼락을 내렸을 때 청년과 처녀가 죽어서 구렁바위인 다리여가 되었다고 한다. 다리여의 '여'란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물밖으로 보였다 잠겼다를 반복하는 바닷속의 바위를 말하는 것으로 다리여는 바다를 향해 길게 누워 있다.
⑨ 관매도 가는 길....짙은 해무가 인상적이다.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입니다.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진도대교가 들어서면서 섬아닌 섬이 되버렸지만, 진도에서 만나는 바다 위에는 조도 6군도라하여 크고 작은 섬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조도6군도는 상조군도, 하조군도, 가사군도, 성남군도, 거차군도, 관매군도를 말합니다. 그 중 상조군도, 하조군도, 관매군도는 한국의 휴양섬 30가운데 하나인 상하조도와 관매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도의 팽목항에서 출항하는 배를 타면 상,하조도와 관매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해상에서 바라본 관매도의 전경...
팽목항에서 24km, 하조도에서 7km 남단에 떨어진 관매도는 '새가 먹이를 물고 잠시 쉬어간다'라는 뜻으로 볼매도라 불리다 일제강점기때 관매도로 바뀌었습니다. 조선 후기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선비가 관매도 해변에 피어난 매화를 보고 관매도라 불렀다고 합니다.
우뚝 솟은 돈대봉아래로 관호마을의 주황색 지붕이 눈에 들어옵니다. 선착장에서 활처럼 호를 그리며 관매도 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걷히지 않은 해무가 작은 섬들을 하나씩 묶어 두고 아직도 본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신비스런 느낌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야속하기만 합니다.
관매도 선착장에서 톳을 말리는 풍경...관매도 주변 섬들에 해무가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관매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선착장의 바닥에는 검은 물체들이 길게 펼쳐져 있습니다. 무엇을 말리는 거냐고 물었더니 톳이라고 합니다. 톳을 거둬들인 뒤 오늘처럼 날 좋은 날에 말리는 것입니다. 선착장부터 길게 이어진 관매도의 도로에는 온통 톳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트럭에 올라 지나가는데 마치 톳과 땅따먹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톳을 널어놓은 공간이 트럭 한대 간신히 지날 만큼 아슬아슬합니다. 톳 하나라도 더 널고 싶은 그리고, 톳 하나라도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마을주민의 마음이 한꺼번에 보이는 듯 합니다. 관매도에서 채취되는 톳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합니다. 관매도의 입장에서는 아주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관매해수욕장은 선착장에 내려서도 금방입니다. 길게 이어진 해변은 고요함과 차분함이 가득 합니다. 박차고 달려나가고 싶을 정도로 탁 틔인 경관을 선사합니다. 멀리 거차군도의 섬들이 길게 늘어서 있고, 너른 해변에는 고운 모래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파도는 수심이 깊지 않음을 알려주 듯 해변에 찰랑찰랑 거립니다.
⑩ 관매도 송림
관매도 뒷편에 자리한 송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송림을 자랑합니다
관매도 해수욕장의 넓고 깨끗한 해변의 풍광에 한 몫을 하는것이 있다면 바로 해수욕장 뒷편의 송림일겁니다. 짧게는 백여년 길게는 수백년의 수령을 가진 소나무들이 관매도 해변만큼이나 길고 깊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송림은 대략 3만여평 정도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산책하는데는 그만입니다.
거북 등처럼 쩍쩍 갈라진 소나무 기둥은 그 껍질의 두께만 보더라도 얼마나 오랫동안 관매도의 하늘아래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빽빽한 소나무 숲은 내리 쬐는 뙤약볕을 거침없이 차단해주고, 서늘한 느낌도 가져다 줍니다. 이 송림은 옛날부터 아이가 죽으면 풍장을 했던 곳이라 하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더 오싹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소나무에는 풍난의 종류인지 가지마다 수염처럼 가득 이고 있습니다.
⑪ 관매도 후박나무
천연기념물 212호로 지정된 후박나무
관매도 송림과 함께 또하나의 명품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천연기념물 212호로 지정된 후박나무입니다. 수령이 300년 정도된 나무인데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습니다. 마을의 서낭림으로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보호해온 나무입니다. 웅장한 기품이 서려 있기도 하고, 크고 넓게 뻗은 가지는 손을 뻗어 품어 안듯이 후덕한 인상을 주기에 오랜 친구같은 느낌이 듭니다.
후박나무의 테두리 안에는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도 같이 있습니다. 주변 송림에서 떨어져 있는 후박나무를 친구삼아 어깨를 마주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 같습니다. 넓은 송림과 후박나무를 사이에 두고 조도중학교 관매분교와 관매초등학교가 한 울타리내에 있습니다.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⑫ 관매도 관호마을 돌담길
관호마을 뒷편으로 꽁돌을 찾아가는 길, 바람을 막기 위한 돌담이 세워져 있습니다.
관호마을 뒷편으로 넘어가면 모래와 암반이 섞인 작은 해변이 나옵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 또한 눈맛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을 막기 위해 언덕 위에는 가지런히 쌓아둔 돌담이 있습니다.
⑬ 자연과 사람이 하나되어..시간도 쉬어가는 섬
관매도는 최근 환경부가 선정한 ‘국립공원 명품마을 제1호’이기도 하다. 명품마을에는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생태체험 프로그램 개발 및 주민 재교육도 지원함으로써 생태관광 명소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한다. 관매도명품마을(061-544-0400, www.gwanmaedo.co.kr 에도 마을 공동 소유의 숙박시설이 들어섰고 돌담길, 습지관찰로, 논·밭두렁길, 해당화길, 매실길 등 다채로운 탐방로가 조성됐다. 그 밖에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향토음식도 개발함으로써 사계절 내내 외지인을 끌어들일 토대가 구축됐다. 이제 관매도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생태관광 휴양지다.
●숙박
관매도 주민은 명품마을운영위원회(061-544-0400)를 통해 관매사랑민박(펜션형)과 팽나무골민박(한옥 독채형)을 공동 운영한다. 깔끔한 시설에 비해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그 밖에 관광민박(061-544-3827), 관매정(061-544-8668), 명성민박(061-544-3650), 솔밭민박(061-544-9807), 송림상회(061-544-3668), 송백정(061-544-4433), 청우당(061-544-5725), 샘터민박(061-544-5670) 등 민박집도 여럿 있다.
●맛집
명품마을운영위원회를 통해 주민이 공동 운영하는 관매사랑식당에서 싱싱한 해초를 활용한 관매정식, 톳빈대떡, 톳칼국수, 해초튀김, 장어구이, 장어떡갈비, 해물영양솥밥, 문어볶음 같은 명품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용객이 많지 않은 계절에는 20명 이상의 단체만 식사할 수 있으며, 예약을 해두는 것이 좋다. 각 민박집이 상설식당 구실을 한다.
●진도↔관매도
진도 임회면 팽목항에서 에이치엘해운(061-544-0833, www.hlhaewoon.co.kr)의 한림페리3호가 하루 1회 운항한다. 서진도농협(061-543-3383, www.sujindononghyup.co.kr)의 조도고속훼리호는 하루 1회 팽목항에서 출항한다. 단, 일정 기간에 따라 운항 선박과 시간이 달라지므로 홈페이지에서 시간표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자동차 선적이 가능하며, 중형차의 경우 3만2000원이다.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씨월드고속(061-243-1927)의 섬사랑10호, 신해7호가 관매도를 경유한다. 각 경유지 도착시간은 수많은 변수에 따라 달라지므로 전화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
※ 매표소 연락처 : 조도고속 544-5353, 한림페리 544-0833
●섬 내 교통
택시나 정기 노선버스는 없다. 자동차를 배에 싣고 가거나 두 발로 걸어 다녀야 한다. 하지만 자동차로 다닐 만한 도로가 별로 없으므로 팽목항 무료주차장에 주차해두는 것이 좋다. 관매도명품마을에서는 자전거도 빌려준다. 대여료는 2시간에 5000원.
18) 三寶三樂
진도 3보(珍島 三寶)
1. 진도개 - 영민, 충직, 비유혹성
2. 진도 구기자(珍島枸杞子) - 강장(强壯) 조청혈(造淸血) 한약제(漢藥劑) 년간 생산 10M/T
3. 진도 곽(珍島藿) - 자연산 석곽 (自然産 石藿 - 돌미역) 년간 생산 400M/T
진도 3락(珍島 三樂)
1. 진도 민요 - 진도아리랑,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그리고 진도 씻김굿, 진도 다시래기 등
2. 진도 서화 - 2000년도 현재 본군출신 국전 입선이상 작가만도 150명 이상이나 된다.
3. 진도 토속주 홍주(芝草酒) - 불을 붙이면 훨훨 타오르는 고도(高度)의 효주(酵酒)로써 붉은 빛깔은 어쩌면 그리도 곱고 구미를 당기며 약초인 지초로 빚어 숙취 현상이 없어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다.
진도 구기자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해양성 기후와 일조시간이 가장 긴 지리적 특성으로 타 지산에 비하여 그 효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의 보감에 영약으로 기록된 한방 약제로 중국 진시황에게 불로장생초로 바쳤다는 구기자는 구기자주, 구기자 티백 등으로 상품화되어 시판되고 있다. [포장단위 : 600g]
진도 돌미역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산모가 있는 가정으로 선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진도 미역인데, 아무리 오래 끓여도 미역이 싱싱하게 살아있고 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다.
진도산은 양식 미역도 타지산에 비해 우수하지만 조도면 독거도,혈도,관매도 일원에서 나오는 자연산 돌미역은 특별해 산모들은 일찍부터 진도미역을 그리게 된다. 진도 연안에서 나오는 미역을 비롯한 돌김,파래,톳 등 해조류와 함께 어패류 또한 맛이 유명하다. 조선시대 미역, 해태, 전복, 마른숭어와 해조류는 진도군의 진상품이었다.
잡가의 의미는 상층문화권의 정통가요인 가곡, 시조에 비해서 정제되지 못한 노래, 곧 잡스럽거나 속된 하층문화권의 노래, 속가 또는 잡가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것은 경기체가와 더불어 고려시대 가요의 한 몫을 차지하던 장르의 잡가와는 다른 용어인 바 조선후기 광대나 사당패 등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하여 집중적으로 창출된 잡가(속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원래 잡가는 조선말기에 형성되고 번창하다가 1830년을 전후하여 유행가 등 서양풍의 노래에 밀려난 노래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잡가는 조선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학장르라는데 문학사적 의미가 있으며,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장르로 꼽기도 한다.
남도잡가는 보렴, 화초사거리, 육자배기, 자진육자배기, 흥타령, 개구리타령, 새타령, 성주풀이 등을 지칭한다.
진도는 예로부터 수많은 유배자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곳으로 시, 서, 화 부분에 상당한 수준이다. 본군 출신 작가들이 수시로 국전에 입선을 하는 등 시, 서, 화의 고장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의 뛰어난 명인들과 기념관들이 있다.
애주가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진도 홍주는 그동안 밀조주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면서도 민속주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왔다. 40도 이상에 붉은 빛깔이 특이하며 맛이 좋고 뒤끝이 깨끗하여 널리 평가를 받고 있다. 지초는 진도의 일반 가정에서도 상비해 두었다가 체했을 때나 피부질환이 생겼을 때 먹거나 환부에 발라 치료하는 약초다. 이 지초가 지금은 주로 홍주를 만드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품귀 현상을 빚고있다. 그러나 외지의 지초가 아무리 굵고 길어도 홍주를 한번 만들고 나면 그 다음은 전혀 색소가 나타나지 않는데 반해 진도 지초는 뿌리가 작아도 3번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왜 진도산이 그처럼 특별한지 규명되지 않고 있다. 현재 진도에는 20여명이 가정에서 홍주를 만들고 있으며 '94년 12월에 민속주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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