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生則死로 결국 무너져
언뜻 들으면 대통령 자리를 내놓겠다는 말 같지만 내심은 대통령직을 결코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에게 내치(內治)를 맡기겠다는 얘기도 일절 하지 않았다. 국정 운영의 중심은 대통령 자신이라는 것을 확인한 담화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네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 새해 첫날 청와대 상춘재에서 출입기자들을 모아 놓고 “(뇌물죄 의혹은) 완전히 엮은 것”이라고 강변했다. 특검 수사가 옥죄자 1월 25일엔 ‘정규재TV’ 인터뷰에서 “경제공동체라는 말을 만들어 엮어도 너무 억지로 엮은 것”이라고 다시 억울함을 호소했다. 진실 규명은 뒷전인 채 장외 여론전에만 매달렸으니 불타는 민심에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헌재가 대통령 파면 사유의 하나로 지목한 특검 조사와 헌재 출석 문제에 대해선 “전례를 남겨선 안 된다”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참모들은 하나같이 입을 닫고 말았다.
헌재의 탄핵심판 심리가 이어지는 동안 청와대 참모들은 보이지 않았다. 핵심 측근인 이정현 의원과 유정복 인천시장 등과 수시로 논의했다는 얘기가 들렸다.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 바로 전날 탄핵이 기각될 것이라는 보고를 청와대 수석이 올렸다니 주변에 변변한 참모 하나 없었던 것이다.
‘어두운 그림자’ 어른거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1년을 옆에서 지켰던 사람이다. 권력의 무서움과 비참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대세론에 취한 문재인 주변에 당장 권력을 잡은 듯 완장부대가 득실대는 것은 어두운 그림자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내각에 “부역행위를 저지르지 말라”고 대놓고 협박하는가 하면 ‘윤병세 졸개들’이라는 험악한 말이 민주당 국회의원 입에서 나왔다. 친문(친문재인) 패권주의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2012년 대선 전까지만 해도 “정치할 생각은 없다”던 문재인이 이번엔 “3수(修)는 없다”며 권력 의지로 넘쳐난다. 선하던 인상이 독하게 바뀌었다고 인상을 평하는 사람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자꾸 떠나는 것도 좋지 않은 신호다. ‘박근혜의 실패’에서 대선주자들이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누가 청와대를 가더라도 국민들은 비참한 대통령의 말로를 다시 봐야 할지 모른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