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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3.27 09:04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추진하면서 무작정 새로운 정책만 내세운 게 아니라는 점도 주목했으면 한다. 일본 정부는 아베 총리 이전에도 '잡카페'를 만들어 취업을 지원해왔다. 잡카페는 구직자의 고민도 들어주고, 기업과 연결해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민관 합동의 취업 상담소다. 아베 총리는 집권 후 이 시스템을 없애지 않고 실무진과 전문가 충고에 따라 더 체계화했다.
반면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 '그린(green) 인재'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그 관련 정책이 싹 사라졌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창조 경제 관련 정책도 다음 정부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이 계속 이어져야 그에 맞춰 준비해온 인재들에게 길이 생길 수 있다.


1명당 일자리 1.7개… 신입사원 안 뺏기려는 '오와하라 현상'까지
야마다 하루미(가명·23)씨는 이번 달 일본 명문 사립대 국제학부를 졸업하고 다음 달 일본 4대 은행 중 한 곳에 출근한다. 어떻게 준비했느냐고 묻자 "3학년 때 생보사 두 곳에서 닷새씩 인턴을 했고, 4학년 1학기 때 석 달간 원서 내고 면접 보러 다녔다"고 했다. 그게 다였다.
일본 취업 준비생은 누구나 'SPI 취업적성검사'란 시험을 친다. "기본적인 일어·수학·영어 시험인데, 기업이 '하한선'만 넘으라고 하지 고득점을 요구하지 않아요. 학원 안 가고 혼자 문제집 풀며 공부했어요. 이거랑 토익 말고 다른 자격증 따는 사람은 못 봤어요."
야마다씨는 25개 금융회사에 도전했다. 어느 곳도 '토익 900점'을 요구하지 않았다. 730점 정도면 입사한 뒤 배우면 된다고 했다. 그 대신 면접관이 꼭 묻는 게 "동호회 활동, 아르바이트는 뭘 했느냐"였다. 야마다씨가 등록금 빼고 취업하는 데 쓴 돈은 1년간 아일랜드 교환학생 다녀올 때 들어간 130만엔과 문제집 값 2만엔 정도다. 야마다씨는 대형 은행 3곳에 최종 합격해 그중 하나를 골랐다.
일본도 일자리가 얼어붙은 '취업 빙하기'(1993~2005년)가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주식과 부동산 시장 버블이 터지면서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을 때다. 닛케이 주가가 버블 절정 때와 비교해 반의반 토막으로 꺾였다. 한해 문 닫는 회사가 많을 땐 2만곳 가까웠다. 대학생 10명 중 3~4명이 비정규직도 못 구한 채 졸업장을 받았다.
이젠 다르다. 취업난이 아니라 구인난이 사회문제다. 이정환 국민대 교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들고나온 타이밍이 인구 변화와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집권 뒤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돈을 풀어 내수를 살리고 수출도 늘리겠다는 정책이다. 그에 힘입어 최근 5년간 일본 기업의 해외 수출과 순이익은 해마다 늘어났다. 문 닫는 회사 숫자도 장기 불황이 최악이었을 때의 절반으로 줄었다.
이 시점에 인구구조 변화가 있었다. 일본 전후(戰後) 단카이 세대(베이비붐 세대·1947~49년생) 680만명이 썰물처럼 은퇴한 것이다. 다음 세대는 밑으로 갈수록 머릿수가 줄어 요즘 취업 준비생들은 한 해 120만명이 채 안 된다. 장사가 잘되는데 일손은 달리는 상황이 됐다. 취업 준비생 수와 일자리 수를 비교해보면 이해가 쉽다. 장기불황 끝자락인 2012년에는 취업 준비생 1명당 일자리가 1.2개였다. 지금은 일자리가 1.7개다(리쿠르트 조사). ▷기사 더보기
*오와하라 현상: '구직 활동 끝내라(오와레)'고 '괴롭히는(하라)' 상황

저금리에 주가 뛰고 올림픽까지… "집 사자" 들썩이는 도쿄
도쿄에 사는 맞벌이 주부 다나카 마리코(가명·42)씨는 2013년 도쿄 쓰키시마(月島)역 앞에 건설 중인 방 세 개짜리 초고층 아파트 1채를 분양받았다. 도쿄가 2020년 하계올림픽 개최 도시로 결정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환호하는 현장을 NHK방송이 생중계한 직후였다. "최소한 올림픽 때까진 경기 부양을 계속할 거라고 판단했어요. 잘 고르면 오를 거란 자신이 있었어요."
다나카씨의 아파트는 대기업 본사가 즐비한 마루노우치에서 20~30분 거리다. 집값 7300만엔 중 90%를 35년 거치 장기 대출로 해결했다. 작년에 입주한 그 집이 지금 9000만엔쯤 한다.
대학생 때 유학 와 17년째 도쿄에 사는 회사원 박은지(가명·36)씨도 도쿄 고토구 도요스(豊洲)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신축 아파트를 도쿄올림픽 유치 직후 대출 끼고 5900만엔에 분양받았다. 박씨가 집을 산 지 6개월 만에 같은 동네 비슷한 평수 분양가가 1500만엔 뛰었다. 박씨는 "주위 일본 직장인들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전통적인 부촌(富村) 대신 옛날 서민 동네를 재개발해 새로 들어서는 1~3인용 초고층 아파트가 인기라고 한다. "제가 학생 땐 못 보던 현상이에요."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젊은 층이 집을 사기 시작한 현상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났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버블 붕괴 이후 '집값은 으레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피규어는 사도 집은 안 산다는 분위기가 전체 사회에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창민 한국외대 교수는 "버블 붕괴를 경험한 데서 오는 트라우마"라고 했다. ▷기사 더보기

좀비기업 없앤 일본… 의사결정 토끼처럼 빠르고 생산성 껑충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소비자 가전 쇼)가 열렸다. 일본의 인공지능 자율주행차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도요타와 혼다가 하루걸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도요타가 선보인 '콘셉트카 아이(愛i)'는 운전자의 표정과 몸짓, 소셜미디어 대화 내역을 통해 '주인 감정을 읽는 차'였다. 혼다의 '뉴브이(NeuV)'는 주인이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자기 혼자 무인 택시로 뛰거나 차에 충전된 전력을 팔아 '돈 벌어다 주는 차'가 되는 게 목표였다.

이종윤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일본이 달라졌다는 것은 4차 산업혁명 진행 속도가 보여준다"고 했다. "예전엔 우리 기업이 의사결정이 빨랐어요. 요즘은 일본이 더 빨라요. 앞서가는 속도가 어마어마해요." IT를 바탕으로 밥솥부터 자동차까지 모든 사물이 융합되고 연결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다.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차가 대표적인 분야다.
과거 일본 기업은 새로운 분야가 뜰 때 신속하게 화끈하게 뛰어들지 못하는 게 약점이었다. 장래가 불투명한 분야를 정리하는 결단력도 시원찮았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닛산이 외국인 경영자 카를로스 곤 회장을 스카우트한 것도 자기 손으론 구조 조정을 못해서였다"고 했다.
'잃어버린 20년'이 계속되는 동안 일본은 한 해 기업 1만3000~1만9000곳이 문을 닫았다. 이 과정이 역설적으로 일본 기업에 '망하지 않는 법'을 가르쳤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기가 얼어붙어 20년간 물가가 안 오른 게 장기 불황인데, 그게 무슨 뜻인지 뒤집어 생각해보라"고 했다. 지금 문 열고 영업하는 곳은 동네 밥집이건 대기업이건 '20년 전 가격으로 팔아도 안 망하고 버티는 법'을 깨우친 강자들이란 얘기였다. ▷기사 더보기

한국에 관광객 357만명 뒤지던 일본, 이젠 680만명 앞선다
은행원 이효주(30)씨는 반년에 한 번씩 도쿄나 오사카에 날아가 맛집도 가고 쇼핑도 한다. 그는 "한마디로 가성비가 좋다"고 했다. 2000년대 중반 가족여행 왔을 땐 한 번에 수백만원이 들었다. 요샌 엔저 덕에 예약만 잘하면 비행기값까지 100만원 안쪽의 비용으로 어머니와 둘이서 후지산 아래 아늑한 료칸(旅館)에 묵을 수 있다. 1000엔 내고 둘이 먹으면 거스름돈 주는 값싼 맛집이 도쿄 복판에도 흔하다.

여행과 출장으로 한두 달에 한 번씩 도쿄에 다녀간 회사원 김영식(가명·59)씨는 "세 가지에 늘 놀란다"고 했다. "한국 백화점에서 7만~8만원 받는 샴페인이 일본 편의점에선 4만~5만원 해요. 국민소득은 일본이 더 높은데 지하철·택시 요금만 비싸지 생필품값은 엇비슷하고, 밥값·술값·골프비는 일본이 확실히 싸요. 늘 새롭게 볼거리도 있어요. 올 초 도쿄 롯폰기 유명 미술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유품 전시회를 봤는데, 유럽 가도 쉽게 못 볼 전시였습니다." 전문가들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이후 일본이 달라졌다는 걸 피부로 보여주는 분야로 관광을 꼽는다.
일본은 관광자원이 많은 나라지만, 과거엔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크게 힘을 쏟지 않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처음 100만명을 넘긴 해가 일본은 1977년, 우리는 1978년이다. 대개 일본이 앞섰지만 1998년 이후에는 우리나라가 역전을 했다.
월드컵 때 한·일을 모두 와 본 서방 기자나 관광객은 "잘사는 건 일본, 재밌는 건 한국"이라고 했다. 아시아 관광객에게도 한국은 영어 잘 통하고 인터넷도 빠르고, 국민도 화끈한 매력적인 나라였다. 거기다 한국이 한류 붐으로 각광받을 때,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에 원전사고가 겹쳐 고전했다. 2011년 두 나라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성적표는 '한국 979만명 대 일본 622만명'이었다.
이젠 다르다. 아베 정권 들어 일본은 한 해 200만~600만명씩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했다. 작년 한·일의 성적표는 '1724만명 대 2404만명'이다. 수년 만에 일본이 우리를 680만명 차이로 따돌린 것이다. ▷기사 더보기

스카이라인까지 바꾼 도쿄 都心, 그 자체가 관광명소 됐다
일본 대기업 서울지사에서 7년을 근무하고 귀임한 야마자키 히로유키(가명·46)씨는 도쿄에 돌아와서 본사가 있는 마루노우치 일대가 몰라보게 달라진 것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서울 발령이 나기 전인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십년 된 우중충한 건물이 즐비했던 이곳이 현대적인 고층빌딩 숲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마루노우치는 우리나라로 치면 광화문과 서울역을 합쳐놓은 듯한 공간이다. 국책연구소·금융기관·대기업 본사가 밀집해 있다. 일왕이 사는 궁전이 바로 앞이고, 국회와 총리관저도 지척이다. 포천 글로벌500에 드는 기업 중 19개가 이곳에 본사를 두고 있다. 큰 회사 작은 회사 합쳐 4300개 기업이 둥지를 틀고 28만명이 근무한다.
야마자키씨가 서울로 떠날 때만 해도 마루노우치는 '비즈니스 중심지'였지만 낡은 구도심이었다. 남북으로1.3㎞, 동서로 300~900m인 좁은 공간에 지은 지 수십년 된 건물로 빼곡했다. 은행과 관공서가 문닫고 나면 야근하는 샐러리맨을 빼곤 인적이 없었다.

이젠 달라졌다. 고도성장기에 지은 오래된 건물들을 최신형 초고층 인텔리전스 빌딩으로 개축하거나 신축하면서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가게도 속속 입주했다. 식도락가들이 '버터계의 에르메스'라고 부르는 에쉬레 메종드뵈르 도쿄점이 대표적이다. 중심가인 나카도리(仲通り)는 매일 오전 11시부터 평일은 오후 3시, 주말은 오후 5시까지 차가 안 다녀 빌딩숲 복판인데도 봄여름이면 노천카페가 북적거린다. 2027년에는 인근 도쿄역 뒤에 높이 390m짜리 빌딩도 들어선다.
마루노우치 재개발은 1988년 이 지역 건물주들이 '오테마치·마루노우치·유락쵸 지구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협의회'라는 공동 운영기구를 만들면서 첫발을 내디뎠다.
미쓰비시 계열사 중 하나로 이 지역 부동산 약 30%를 보유한 미쓰비시지쇼(三菱地所)를 중심으로 기업·단체 89곳이 참여했다. 지역 전체를 어떻게 살릴지 전문가와 관청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7년 동안 큰 그림을 그린 다음, 1995년 재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3년 뒤 첫삽을 떴다. 긴죠 아쓰히코(金城敦彦) 미쓰비시지쇼 개발추진부 부(副)부장은 "사람들의 교류 기회를 늘리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고 했다. 중심가에 차가 못 다니게 하고, 지하 상가와 지상1~2층에 맛집과 노천카페를 적극 유치하자는 전략이 여기서 나왔다. ▷기사 더보기

농사 짓는 도요타·소프트뱅크… 기업·농민 힘 합쳐 벤처도 결성
"2년 전 혼자 벼농사 지을 땐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꼬박 논밭에서 일해도 못다 한 일이 산더미 같았어요. 지금은 경작 면적을 100헥타르(30만평)에서 140헥타르(42만평)로 늘렸는데도 오후 6시면 일이 끝납니다."
지난달 28일 일본 아이치현 나베타(鍋田) 마을에서 만난 농민 야기 기하루(八木輝治·48)씨가 자기 논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2년 새 뭐가 달라졌느냐"고 물었더니 "도요타가 들어왔다"고 했다.

도요타는 최고의 농업 전문가들이 어떻게 농사지으면 가장 효율적일지 계산한 것을 토대로 '풍작 계획'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이 아침마다 농부 개개인에게 그날 할 일을 세세히 일러준다. "야마다씨는 어느 논에서 무슨 일을 이만큼 해라. 다나카씨는 어느 밭으로 가라. 농기구는 야마모토씨가 먼저 쓰고 그 뒤 옆 마을 스즈키씨에게 넘기라"는 식이다.
농부들이 하루 일을 마친 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일 진척 상황을 입력하면 '풍작 계획'은 이걸 분석해 다음 날 아침 새로 할 일을 일러준다. 야기씨는 "농업은 개인의 감(感)이 중요한 아날로그 산업이라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2년 연속 소출이 늘어나 믿게 됐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불필요한 시간·인력 낭비가 대폭 줄었다고 했다.
도요타뿐 아니다. 최근 일본에선 통신 기업 NTT, 편의점 큰손 로손 등도 농민들과 손잡고 농업 분야 시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농업을 신(新)성장 동력이라고 보고 과감하게 농업 개혁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03년 '농업 특구'를 도입해 기업이 농민들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허용했다. 지금은 이런 특구가 30개로 늘었다. 2015년 말 현재 전국에서 345개 기업이 농사를 짓고 있다. 도요타 같은 대기업도 있고, 기업이 농민과 손잡거나 농민들끼리 뭉쳐 스타트업을 만든 사례도 있다. ▷기사 더보기

20년 불황에도 노벨상 17명 배출한 R&D, 첨단산업을 꽃피우다
인공으로 만든 심장 세포가 현미경 아래에서 자연이 만든 심장세포와 똑같이 '두근두근' 박동했다. 1일 일본 교토(京都)대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 연구센터. 나카무라 아케미(中村朱美) 실장은 "뇌·심장·간세포처럼 기능이 고정된 세포와 달리 키우기에 따라 어떤 장기로도 만들 수 있는게 iPS세포"라며 연구진이 iPS세포로 만든 심장세포 동영상을 보여줬다.

이 센터는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55) 교토대 교수의 지휘 아래 다국적 연구자 500여명이 iPS 세포를 연구하는 곳이다. 야마나카 교수는 "세계 각국이 다들 이 분야 연구에 힘쏟고 있고 우리도 미래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며 "머지않아 iPS세포를 활용한 신약(新藥)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06년 세계 최초로 iPS 세포를 만들어낸 공로로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이 연구가 신성장동력이라고 판단해 노벨상 시상식이 끝난 지 보름 만에 "앞으로 10년간 iPS세포 연구에 1100억엔(약 1조1000억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1970년대 고도성장기에 '기술 독립을 이루겠다'며 연구개발(R&D) 투자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장기 불황을 거치면서도 다른 건 아껴도 연구비는 끊지 않았다. 그 성과를 한눈에 보여주는 게 노벨상이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일본 학자 22명 중 17명이 '잃어버린 20년' 시작 이후 상을 탔다. 미국 대학에 유학 가서 연구한 공적으로 수상한 사람은 2명뿐이고, 나머지 20명은 일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일본에서 연구해 세계적인 업적을 냈다. 장기 불황 기간에도 연구 투자를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노벨상 후보군'도 탄탄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렇게 쌓인 기초과학 연구 성과가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산업 등의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일본 경제의 기초 체력을 만들었다. ▷기사 더보기

도요타 2만명 재택근무… '고령화 쓰나미'에 일하는 방식 大혁신
일본 자동차 회사 도요타는 지난해 파격적인 재택근무제도를 도입했다.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나오고 나머지는 집에서 일하는 제도다. 대상은 사무직과 연구개발(R&D) 담당 기술직 등 2만5000명으로, 전체 직원 7만2000명 중 3분의 1에 해당한다. 도요타 관계자는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근무하라고 회사가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팀·부서별로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업무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5년 '아베노믹스 2탄'이라며 강력하게 추진 중인 정책이 '1억 총활약 사회'와 '일하는 방식 개혁'이다. 탄력근무·재택근무제 확산, 육아휴직 확대 현황을 총리관저가 직접 챙긴다. 아베 총리는 "야근을 월 100시간 미만으로 줄이라"고 재계와 노동계를 압박해 지난 13일 재계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과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이를 받아들였다.

아베 총리는 왜 경제를 살리겠다면서 기업들 보고 "직원들 일 그만 시키라"고 요구하는 걸까. 이종윤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일본은 이미 고령화로 일손 부족을 겪고 있다"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끝까지 일터에 붙들어 두고, 부모 모시거나 애 키우느라 일 그만둔 사람을 다시 일터로 불러내야 한다"고 했다.
정년을 연장해 건강한 사람은 최대한 오래 일하게 하면서, 동시에 탄력근무제를 도입해 노부모 모시는 중·장년과 아이 키우는 젊은 직원의 숨통을 터주겠다는 발상이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 발상 속에 일본 사회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깨달은 교훈이 압축돼 있다"고 했다. ▷기사 더보기

아베 '3개의 화살' 성공 뒤엔 '3개의 활' 있었다
① 든든한 리더십 갖춘 정치
경제 회복에 지지율 50~60%… '아베 외엔 대안 없다' 각인시켜
② 좋은 정책은 유지하는 정치
도시 재개발같은 장기 계획, 정권에 상관없이 꾸준히 진행
③ 여론 공감 이끌어내는 정치
'불황 탈출' 목표 명확히 설정… 기업·국민의 합심 이끌어내

'U자 회복.'
최근 5년간 아베 정권 지지율 변화를 압축하는 말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3년 봄 '아베노믹스'를 발표할 당시 지지율이 정점을 찍었다. 이후 국민 과반이 반대하는 안보 관련법 개정을 힘으로 밀어붙여 바닥으로 추락했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회복돼 지금은 어느 신문사가 조사하건 안정적으로 50~60%대 지지율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과거 다른 정권과 비교해봐도 이례적 현상"이라고 했다. 이런 안정된 리더십은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딛고 일어나는 데 큰 기반이 됐다.
아베 총리가 재집권하기 전까지 일본은 6년간 총리가 일곱 번 바뀌는 정치 불안을 겪었다. 아베 총리 자신도 2006년 1차 집권했다가 1년 하루 만에 사임했다. 아베 총리는 어떻게 전임자들이 못한 'U자 회복'에 성공했을까. 유의상 동북아역사재단 국제표기명칭대사는 "일본 국민이 '경기가 활력을 되찾고 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잃어버린 20년' 막바지에 집권한 민주당 총리 세 사람은 불황을 해결하지 못했다. 막판엔 동일본 대지진에 원전 사고가 겹쳐 나라 전체에 절망감이 만연했다. 이 쓰라린 실패가 아베 총리에겐 득이 됐다. 김현철 서울대 교수는 "지금도 일본 국민 눈에 일본 야당은 '실패자'"라며 "우익만 아베를 지지하는 게 아니라 특별히 정치색이 없는 부동층도 상당수가 '아베와 자민당 외엔 대안이 없다'고 본다"고 했다. ▷기사 더보기

"한국, 돈 풀 생각보단 바이오 등 성장동력 찾아라… 그것도 빨리"
야마자키 히로유키(가명·46)씨는 일본 대기업 주재원으로 서울에 7년 근무하고 작년에 귀임했다. 서울 생활 첫 3년 동안 일본 경제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후유증에 동일본 대지진이 겹쳐 골병이 들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2년 말 재집권해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인 게 그 직후였다. 야마자키씨는 "지금은 떠날 때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며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주가가 올랐고, 도쿄 도심도 몰라보게 말끔해졌다"고 했다. 반면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격차가 심하고 스트레스가 큰 탓인지 사회 전체에 '질시'의 정서가 팽배해 있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수렁에 빠져드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취재팀은 그동안 경제학자와 과학자, 부동산 전문가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한·일 양국에서 81명을 만나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분석하고, 한국이 갈 길을 물었다. 그들의 충고는 다섯 가지로 압축됐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