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원치 않는 전쟁
6차 핵실험으로 핵 공포 현실화
미국은 북 도발에 전쟁 준비 나서
중국·러시아·일본도 대응 채비
태풍의 눈 한국은 오히려 차분
북은 사력 다해 수소탄 만드는데
빈손 한국 정부는 갈팡질팡
내년 원자력 연구예산 대폭 삭감
핵무기 원천 기술 없어질 위기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날까? 한반도 지축을 뒤흔든 북한 풍계리 6차 핵실험은 강대국의 무력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2017년 9월 3일로 지난 시대의 세력 균형은 무용지물이 됐다. 가공할 공포가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공포심이 선제타격으로 발현되면 곧 전쟁이다. 100년 전 제1차 세계대전은 ‘누구도 원치 않은 전쟁’이었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두려워서 공격했다. 경쾌한 걸음으로 참전했던 유럽인 1000만 명이 죽었다(김정섭, 『낙엽이 지기 전에』).
한반도 전쟁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 그런데 강대국들은 계산되지 않는 위험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상황과 맞닥뜨렸다. 김정은을 통제할 사람은 본인도 잘 모르는 자신뿐이다. 4대 강국 지도자들은 지난 세기 그 어느 때보다 독선적 성격의 소유자다.
히로시마 원폭 10배 이상의 수소폭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http://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709/14/d91a0c8a-f8da-42f0-81f6-260b621ba44b.jpg)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포괄적핵실험금지기구(CTBTO)는 지진파 규모를 6.1로 최종 평가했다. 미국원자력학회 펠로인 주한규 서울대 교수가 지진파 규모 5.7~6.3을 생성해 낸 핵무기의 위력을 추정했다. 지진파 규모 5.7은 TNT 폭약으로 50kt, 6.3은 200kt에 해당한다(그림 1). 한국의 지진관측소는 풍계리 핵실험 장소로부터 15도 각도 내부에 위치해 있기에 전방위적 측정이 어렵다. 지진관측소가 만주 전역에 분산된 중국이 측정한 수치, 6.3이 더 실체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그림 2). 원자폭탄(atomic bomb)의 한계치가 20kt이라고 보면 지진파 규모 6.3을 일으킨 그 핵실험은 200kt 위력의 수소폭탄(hydrogen bomb)이라는 게 주 교수의 결론이다.
북한은 이제 수소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명실공히 핵보유국이 됐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1990년대 초반 이후 한국이 강온전략을 오락가락하는 동안 북한은 꾸준히 이걸 노렸고 급기야 성공했다. 그 수소폭탄이 서울 상공에서 터지면 어떻게 될까. 피해 범위는 그림과 같다. 반경 2㎞ 내에서는 거의 사망(초록색), 반경 6㎞ 내에선 3도 화상에 신경세포 괴사(노란색)·치명상 60만 명·총 사상자 250만 명에 달한다.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시나리오다. 공포를 부추길 필요는 없지만 정확히 알아야 대책이 나온다.
전술핵을 다시?

김정은이 마구잡이로 쏴 올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과 거기에 탑재될 핵탄두가 일으킨 미국의 공포심리는 허리케인급이다. 9·11 사태의 충격은 에피소드다. 미국 본토가 핵미사일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핵탄두로 뉴욕을 공격하는 평양발 포스터도 나왔다. 미국 군사기지가 밀집한 괌에 시험 발사한다고 했으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격분할 만하다. 미국은 모든 가용한 군사력 자산을 동원하는 실질적 전쟁 준비 단계로 돌입했다. 중국·러시아·일본도 군사력의 일자진(一字陣)을 펴고 있다. 한반도가 태풍의 눈이다.
그럼에도 몽롱한 나라는 정작 한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절박한 심정이지만 상대가 북한인지 미국인지 헷갈렸다. 전쟁 발발 여부를 좌우할 한국의 목소리는 사실 모기 소리만 한 게 현실이다. 이상희 전 장관은 북한의 괌 공격 위협을 떠올렸다. ‘한·미 상호방위조약 당사자로서 괌 공격은 한국을 공격하는 것과 동일한 도발행위로 간주한다’고 결연히 말했어야 옳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합참의장과 전략본부장을 지낸 군사전문가다. ‘전쟁 불가론’과 ‘한·미 동맹 책임론’ 중 어느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가? 어느 쪽이 상황 통제에 효력이 있는가?
이 전 장관은 북한의 6차 핵실험은 92년 합의한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을 최종 폐기 처분한 도발이라고 결론지었다. 공동선언은 ‘①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사용을 하지 아니하며 ②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사용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미군의 전술핵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그럼 다시 불러와야 하는가? 트럼프 대통령이 전술핵 재배치를 들고 나온 맥락이다. 보수 야당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맞받았다. ‘핵에는 핵으로!’ 전술핵 재배치는 강대국의 반발과 세계적 비난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국민은 재무장론과 대화론 사이에서 헷갈린다. 그럼 손 놓고 있어야 할까? 탈핵·탈원전이 우리의 길인가?
탈원전의 충격
북한의 핵 위협을 정말 심각하게 고려했다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그리 성급하게 선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탈원전이 향후 60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다고는 했지만 원전 기술은 핵무기 원천 기술을 쌓는 영역이다. 주 교수는 한국의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손을 놓으라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전마피아? 다른 분야도 관련 업계 소수집단이 그러하다. 핵무장을 전제하지 않고도 핵 기술 연구는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학자와 연구자들은 오직 ‘공익’을 위해 일했다고 억울해했다. 그런데 왜 원자핵공학자들을 이익집단 내지 안전위해집단으로 매도하는지 따져 물었다.
핵무기 개발에는 순도 높은 핵물질을 확보하는 게 필수적이다. 사용후 핵연료의 고온 전기분해 과정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은 핵물질 추출과 관련된 기술이다. 다만 순도 높은 핵물질 추출은 규제가 많아 현재는 고속중성자원자로에서 평화적 이용만이 가능하다. 그런데 내년 정부 재정에 파이로프로세싱과 고속중성자원자로 연구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미래 대비 원자력 연구도 하지 말라는 얘기인가? 주 교수는 허망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관련 기관의 채용계획도 중단됐다. 전국 원자핵공학도가 갈 곳이 없어졌다. 유학 인력도 외국에 눌러앉는다. 북한은 사력을 다해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했다. 수소폭탄 개발 충격에도 우리의 정부 방침은 탈원전이다. 사리에 맞는가? 새로운 변수 앞에 재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