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충신 정치부 부장
영화 ‘남한산성’은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인들이 국제 군사·정치·외교의 내막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하면, 국민을 전쟁과 환란의 생지옥으로 내몰고 결국 나라를 결딴낼 수 있다는 엄중한 교훈을 준다. 17세기 명청 교체기 동북아 대격변기에 조선의 통치자들은 동북아 정세에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로 화를 자초했다. 맨부커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의 지난 10월 7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은, 한국의 지식사회가 6·25전쟁 실상에 얼마나 무지하며 큰 오류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우울한 삽화다. 한강이 “6·25전쟁은 강대국 간 대리전”이라고 했는데 이는 오류가 입증된 수정주의적 사관이다. 북한 김 씨 왕조에 남한은 존재 자체가 위협인,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대상이다. 북한은 ‘남침전쟁을 통해 남한을 강점한다’는 대남군사전략을 상황에 따라 변형시켰을 뿐 포기한 적이 없다. 북한 핵무기는 미국과 싸우지 않고 적화통일하기 위한 최후 수단임을 간과한 억측이다.
구 소련 문서보관소에서 나온 자료를 토대로 쓴 러시아 역사학자 알렉산더 판초프 교수의 최신작 ‘마오쩌둥 평전’(민음사)은 스탈린이 유럽 공산화 등 세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김일성에게 속임수를 썼다는 일화를 공개한다. 책은 흐루쇼프 회고를 통해 “스탈린은 처음부터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힘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무력충돌에 미국을 끌어들였다”고 적시했다. 스탈린은 전쟁 발발 후 미국의 참전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음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안을 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일부러 포기했다. 스탈린이 1951년 김일성과 마오쩌둥(毛澤東)의 정전 요청을 1953년 죽을 때까지 거부한 이유도 걸작이다. “이번 전쟁은 미국의 신경을 건드렸다. 북조선은 사상자를 제외하면 전혀 잃은 것이 없다.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보병이다. 그들은 보병이 많지 않으며, 그나마 보유하고 있는 보병도 약하다.” 지금 북한이 전방부대에 20만 특수부대원을 배치하고 128만 대군을 유지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남한산성’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미군이 대만이나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교전할 경우 주한미군이나 한국군이 연루되는 상황을 심각한 주권훼손으로 보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하려고 했으나 이는 잘못된 논리다. 중국 런민르바오 자매지 환추스바오가 최근 “미국이 북한의 핵시설에 외과수술식 타격을 한다면 외교적 수단으로 억제에 나서겠지만, 군사적 개입은 불필요하다”며 “다만 한미연합군이 38선을 넘어 북한을 침략하고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려 한다면 즉각 군사적 개입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은 북·중 군사 연대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전쟁 또는 급변사태가 발발한다면 6·25전쟁과 같은 국제전이 될 것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는 불가피하다. 한미연합사(司)는 북한의 전쟁 도발이나 급변 사태를 억제하는 전쟁 수행 체제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한미연합사 체제는 우리의 정치·경제·문화·사회를 보존하는 최고의 ‘헤징(hedging·안보확보) 자산’이다. 전작권은 북핵 폐기 후에 전환하는 것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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