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능지스님의 자유 '무등등자유' <32> 이육사의 '황혼'

화이트보스 2017. 12. 3. 19:52



능지스님의 자유 '무등등자유' <32> 이육사의 '황혼'

세상의 모든 힘든 자에게 베풂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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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5-01-23 19:57:38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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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을 맞아들이는 화자의 마음에 '정성'이 가득 담겼으니 어쩌면 자동반사적으로 '커어튼'을 열게 된 것이 아닐까.
내 골방의 커어튼을 걷고/ 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 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 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쎄멘트 장판 우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 그들의 심장 얼마나 떨고 있을까?// 고비 사막 끊어 가는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 인디안에게라도/ ···/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5월의 골방 아늑도 하오니/ ··· 내일도 저 푸른 커어튼을 걷게 하겠지/ 정정(情情)이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 올 줄 모르나 보다.// -이육사 '황혼'


이 시는 그의 나이 31세 때 '신조선·新朝鮮'에 실린 작품이다. 시의 배경은 '골방''황혼'이다. 그 사이에 '커어튼'이 있어 여러 가지 시적 장면과 화자(시인)의 바람에 이어 사유의 오솔길을 열게 하고 있다. '커어튼'을 걷는 행위가 없었다면 이 시는 이처럼 다양하게 내용이 전개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걷는 행위자는 화자(시인)이지만 그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은 '황혼'이라 할 것이다.

'황혼''맞아'들이는 화자의 마음에 '정성'이 가득 담겼으니 화자의 손은 어쩌면 자동반사적으로 '커어튼'을 열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4세 때 이미 옥고를 겪어야 했기에 몸이 많이 상했을 것 같은 상황에서 병상에 갇힌 그는 인생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꼈을 법하다. 그래 아! ! 하고 울부짖으며 바다에 떠도는 '갈매기' 같은 것이 '인간'의 행태라고 느꼈을 것이다. 얼핏 전원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된 시가 고독한 비애감을 깊이 숨기며 맴도는 것 같다. 그러나 화자는 고독과 비애에 굴종하는 정서의 노예가 되기를 다음 구절에서 탈피하고 있다.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비애의 종으로 굴종함이 아니라, 보시(布施) 곧 베풂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달라고 '황혼'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십이 성좌(十二 星座)'란 황도(黃道) 12궁 별자리를 말한다. 그런 천체의 별자리들에 '뜨거운' '입술'을 보내게 해 달라는 화자의 보시 마음은 가히 우주적이라 할 만하다.
그런 다음 고뇌스럽기만 한 인간계로 정서가 돌아오고 있다. 그것은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뜨거운 입술을 보내고 싶고 '쎄멘트 장판 우 그 많은 수인들에게도' 보내고 싶다고 풀어내고 있다. 우주적 상승의 정서가 고뇌와 고통스러운 인간계의 행태로 하강적 보시의 의지를 펼치고 있다. '그윽한 수녀들'이란 대목에서 '수녀들'의 가련한 느낌을 풍기는 장면이라 할 것 같고 '쎄멘트 장판 우''쎄멘트' 바닥 위를 말하는 것으로 풀이해야 할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 많은 수인들'이란 항일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당한 독립투사들을 상정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화자가 이미 항일운동에 가담해 '의열단'에 몸 던진 바 있고 수감됐다.

화자는 절실히 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심장 얼마나 떨고' 있을 것인가를 또 살아가기 너무나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고비사막' 같은 죽음의 모래땅 악전고투하며 '끊어' 가듯 생사양단(生死兩端)의 길을 가는 낙타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와 같은 미개하고 어두운 곳에 활 쏘며 살아가는 연민의 '인디안'에게도 '뜨거운 입술'을 보내고 싶다는 박애와 보시의 정신을 풀어내고 있다.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달라고 애원조로 시를 엮고 있다. '반쪽만'일까? 이 시에 등장한 군상들과 고뇌와 고통에 놓인 사람들 이 외의 포시럽거나 여유로운 사람들, 많은 군상 위에 군림하여 고통을 주거나 방임하는 사람들은 제외되어야 하겠기에 '지구의 반쪽만'일 뿐이라 할 것이다.

천룡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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