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지스님의 자유 '무등등자유' <32> 이육사의 '황혼'
세상의 모든 힘든 자에게 베풂을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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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5-01-23 19:57:38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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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을 맞아들이는 화자의 마음에 '정성'이 가득 담겼으니 어쩌면 자동반사적으로 '커어튼'을 열게 된 것이 아닐까. |
이 시는 그의 나이 31세 때 '신조선·新朝鮮'에 실린 작품이다. 시의 배경은 '골방'과 '황혼'이다. 그 사이에 '커어튼'이 있어 여러 가지 시적 장면과 화자(시인)의 바람에 이어 사유의 오솔길을 열게 하고 있다. '커어튼'을 걷는 행위가 없었다면 이 시는 이처럼 다양하게 내용이 전개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걷는 행위자는 화자(시인)이지만 그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은 '황혼'이라 할 것이다.
'황혼'을 '맞아'들이는 화자의 마음에 '정성'이 가득 담겼으니 화자의 손은 어쩌면 자동반사적으로 '커어튼'을 열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24세 때 이미 옥고를 겪어야 했기에 몸이 많이 상했을 것 같은 상황에서 병상에 갇힌 그는 인생의 '외로움'을 뼈저리게 느꼈을 법하다. 그래 아! 아! 하고 울부짖으며 바다에 떠도는 '갈매기' 같은 것이 '인간'의 행태라고 느꼈을 것이다. 얼핏 전원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된 시가 고독한 비애감을 깊이 숨기며 맴도는 것 같다. 그러나 화자는 고독과 비애에 굴종하는 정서의 노예가 되기를 다음 구절에서 탈피하고 있다.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비애의 종으로 굴종함이 아니라, 보시(布施) 곧 베풂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달라고 '황혼'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십이 성좌(十二 星座)'란 황도(黃道) 12궁 별자리를 말한다. 그런 천체의 별자리들에 '뜨거운' '입술'을 보내게 해 달라는 화자의 보시 마음은 가히 우주적이라 할 만하다.
화자는 절실히 공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심장 얼마나 떨고' 있을 것인가를 또 살아가기 너무나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고비사막' 같은 죽음의 모래땅 악전고투하며 '끊어' 가듯 생사양단(生死兩端)의 길을 가는 낙타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와 같은 미개하고 어두운 곳에 활 쏘며 살아가는 연민의 '인디안'에게도 '뜨거운 입술'을 보내고 싶다는 박애와 보시의 정신을 풀어내고 있다.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달라고 애원조로 시를 엮고 있다. 왜 '반쪽만'일까? 이 시에 등장한 군상들과 고뇌와 고통에 놓인 사람들 이 외의 포시럽거나 여유로운 사람들, 많은 군상 위에 군림하여 고통을 주거나 방임하는 사람들은 제외되어야 하겠기에 '지구의 반쪽만'일 뿐이라 할 것이다.
천룡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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