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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27 03:17
눈앞의 비상구를 몰라 손님은 떼죽음을 당했다
北核의 비상구를 국민은 얼마나 아는가
만약의 사태 때 분노는 국정 농단類가 아닐 것

일본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가운데 '근거리 피폭 생존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있다. 핵폭발 당시 폭심지(爆心地)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안에서 생존한 사람을 뜻한다. 당시 그곳에 있던 2만1000명 중 1년 이상 목숨을 유지한 사람은 1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일본인 의사가 27년 후 생존자를 수소문해 78명을 찾아냈다. 그 후 40년 동안 그들의 일생을 추적했다. 2014년까지 생존한 근거리 피폭자는 12명.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생후 5개월 여아는 69세가 됐다. 97세 노인도 있었다. 천수(天壽)에 접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피폭 장소는 은행·보험회사·학교 등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다른 많은 행운이 겹쳤겠지만 열선(熱線)과 방사선을 치사량 아래로 막아준 건물 재질이 가장 중요했다. 달리는 전차(電車)에서 살아난 소녀도 있었다. 만원(滿員) 전차에서 홀로 생존했다. 다른 희생자들이 소녀 위로 포개져 핵 열선이 몸에 직사(直射)하는 것을 막았다.
히로시마의 기적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경보가 울릴 때 콘크리트 건물 내부나 지하로 뛰어가는 사람의 운명은 지상에서 방황하는 사람의 운명과 달라진다. 물론 다 사는 건 아니다. 생존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은 공습경보 후 5분이 최장(最長)이다. 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 부모가 몸을 둘로 포개면 아이 목숨만은 구할 수도 있다. 우리 정서라면 아마도 많은 부모가 비극의 순간 이 방식을 택할 것이다.
이들의 피폭 장소는 은행·보험회사·학교 등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다른 많은 행운이 겹쳤겠지만 열선(熱線)과 방사선을 치사량 아래로 막아준 건물 재질이 가장 중요했다. 달리는 전차(電車)에서 살아난 소녀도 있었다. 만원(滿員) 전차에서 홀로 생존했다. 다른 희생자들이 소녀 위로 포개져 핵 열선이 몸에 직사(直射)하는 것을 막았다.
히로시마의 기적은 많은 것을 알려준다. 경보가 울릴 때 콘크리트 건물 내부나 지하로 뛰어가는 사람의 운명은 지상에서 방황하는 사람의 운명과 달라진다. 물론 다 사는 건 아니다. 생존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은 공습경보 후 5분이 최장(最長)이다. 이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 부모가 몸을 둘로 포개면 아이 목숨만은 구할 수도 있다. 우리 정서라면 아마도 많은 부모가 비극의 순간 이 방식을 택할 것이다.

핵무기 터지면 다 죽는데 훈련이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 일본은 '소용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히로시마의 근거리 생존자 2명은 폭심지 260m 지점에서 살았다. 은행 건물이었다. 나가사키에선 100m 지점에서 한 소녀가 살았다. 지하 방공호였다. 폭심지에서 멀어질수록 생존 확률은 가파르게 올라간다. 어느 지점에선가 순간적인 행동이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는 유의미한 경계선에 이른다. 기적이 아니라 확률 영역이다. 북핵이 강할수록 지점도 멀어진다. 하지만 어딘가 있다. 이때 생사(生死)를 결정하는 것은 무조건 작동하는 반사 신경이다. 이 반사 신경은 저절로 단련되지 않는다. 훈련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훈련하자"고 하면 "불안을 조장한다"고 공격한다. 넉 달 전 민방위 훈련 때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인터넷에서 '선동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소위 '네티즌 반응'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비슷한 말을 했다. 북핵 대비 훈련에 대해 "정부가 나서 위험을 조장하는 오해와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이 한 말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더 심해진다. 북핵 위협에 대비하자고 하면 올림픽 방해 세력처럼 바라본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엔 '개령(開寧)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왜군을 막기 위해 내려온 장군에게 개령 출신 백성이 "왜군이 가까이 왔다"고 알렸다. 백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충성이었다. 그런데 장군은 칭찬 대신 "세상을 미혹(迷惑)시킨다"며 목을 베려 했다. 백성은 "아침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절규했다. 동이 텄지만 왜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목은 날아갔다. 그 직후 왜군이 왔다. 많은 백성이 이를 일찍 보았으나 알리지 않았다. 목이 잘릴까 무서웠다. 조선군은 전멸했다. 이때 갑옷을 벗고 산발로 도망간 인물이 있었다. 장군이었다. 지금 북핵 위협을 말하는 사람들은 '개령 사람' 꼴이다. 장관이 말한 '불안 조장'과 장군이 말한 '세상 미혹'이 무엇이 다른가. 조선시대였다면 내 목도 날아갔을 것이다.
전쟁이 임박하면 정부 고관은 핵무기에 견딜 수 있는 어느 요새로 들어간다. 행정안전부 장관도 갈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당연하다. 그보다 당연한 게 있다. 국민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불안을 조장한다"며 생존 훈련을 안 한다.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안전하다" 하니 세상도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다들 북핵을 걱정한다면 최소한 요격 미사일을 쓸어다 이중삼중 평창 하늘을 방어한 다음 세계를 향해 손짓하는 게 정석 아닌가.
제천 스 포츠센터 2층 손님들은 눈앞의 비상구를 몰라 떼죽음을 당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중 북핵(北核)의 비상구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훈련을 통해 생존 확률을 높여야 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그 의무를 팽개쳤다. 이대로 만약의 사태가 일어난다면 정부는 국민의 분노와 희생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국정 농단 사태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훈련하자"고 하면 "불안을 조장한다"고 공격한다. 넉 달 전 민방위 훈련 때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인터넷에서 '선동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소위 '네티즌 반응'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얼마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비슷한 말을 했다. 북핵 대비 훈련에 대해 "정부가 나서 위험을 조장하는 오해와 불안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이 한 말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더 심해진다. 북핵 위협에 대비하자고 하면 올림픽 방해 세력처럼 바라본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징비록엔 '개령(開寧)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왜군을 막기 위해 내려온 장군에게 개령 출신 백성이 "왜군이 가까이 왔다"고 알렸다. 백성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충성이었다. 그런데 장군은 칭찬 대신 "세상을 미혹(迷惑)시킨다"며 목을 베려 했다. 백성은 "아침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절규했다. 동이 텄지만 왜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의 목은 날아갔다. 그 직후 왜군이 왔다. 많은 백성이 이를 일찍 보았으나 알리지 않았다. 목이 잘릴까 무서웠다. 조선군은 전멸했다. 이때 갑옷을 벗고 산발로 도망간 인물이 있었다. 장군이었다. 지금 북핵 위협을 말하는 사람들은 '개령 사람' 꼴이다. 장관이 말한 '불안 조장'과 장군이 말한 '세상 미혹'이 무엇이 다른가. 조선시대였다면 내 목도 날아갔을 것이다.
전쟁이 임박하면 정부 고관은 핵무기에 견딜 수 있는 어느 요새로 들어간다. 행정안전부 장관도 갈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 당연하다. 그보다 당연한 게 있다. 국민도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불안을 조장한다"며 생존 훈련을 안 한다. 타조처럼 모래에 머리를 파묻고 "안전하다" 하니 세상도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다들 북핵을 걱정한다면 최소한 요격 미사일을 쓸어다 이중삼중 평창 하늘을 방어한 다음 세계를 향해 손짓하는 게 정석 아닌가.
제천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