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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에 싸인 지리산과 그 안을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화개장터는 섬진강 최상류에 위치해 지리산 일대와 남해를 이어주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김동리의 ‘역마’에는 화개장터가 주요 공간으로 나온다. 박경일 기자 park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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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소설 ‘역마’의 배경…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산물·지리·인간이 만나는 곳 ‘조선의 5大시장’ 번성했지만 해방후 쇠퇴…최근 명소부활 아들의 역마살 없애려는 母情 색시와 짝 지어주려 애쓰지만 얽힌 인연 탓에 모든일 虛事로 결국은 ‘역마살 운명’에 순응 액운이라 여겼던게 진짜 내길 생명력 충만하고 아름다운 곳 兄구속·아들죽음 겪은 김동리 무릉도원 같은 화갯골에 반해 자신의 ‘구경적 삶’의 무대로주말의 화개장터는 늘 붐빈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에 위치한 화개장터는, 섬진강에서 돛단배가 드나들 수 있는 최상류 지점에 위치해 조선시대 때부터 지리산 일대와 남해를 이어주는 상업중심지로 기능했다. 해방 이전에는 조선의 5대 시장 중 하나에 꼽힐 정도로 번성했지만, 교통의 발달과 유통과정의 변화 등으로 해방 이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 화개장터는 하동군과 지역민들의 뜻을 모아 문화관광형 전통시장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특색 있는 전통시장으로의 부활은 한국의 대표적 단편소설인 김동리의 ‘역마’(‘백민’, 1948.1)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개장터에는 ‘역마’를 테마로 한 역마상과 옛 보부상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으며, 이외에도 장돌뱅이들의 저잣거리와 난전, 주막, 대장간 등이 ‘역마’의 명성으로 인해 단순한 건축물 이상의 아련한 향기를 내뿜는다.김동리의 ‘역마’는 시간적 배경이 대단히 모호하지만, 주요 공간인 화개장터에 대한 묘사는 매우 상세하다. 시작 부분에 자세하게 묘사된 화개장터의 기본적인 특징은, 이곳이 만물이 만나고 헤어지는 유랑의 공간이라는 점이다. 경상, 전라의 접경인 화개장터에서는 구례와 화개협에서 흘러내린 냇물이 섬진강과 만나고,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이 얽혀든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산채가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 장수들의 생필품들이 구례길에서 넘어오며,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이 올라온다. 이처럼 여러 가지 산물과 지리와 인간이 어우러지고 갈라서는 화개장터의 유동적인 성격이 주인공 성기에게 성격화된 것이 바로 역마살(驛馬煞)이다. 전통사회에서 인간의 운명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풍수(風水)와 사주(四柱)를 들 수 있다. 풍수가 공간의 기(氣)와 관련해 인간의 운명을 바라본다면, 사주는 시간의 기와 관련해 인간의 운명을 바라본다. 성기의 역마살은 화개장터라는 공간의 기가 시간의 기로 전환돼 운명화된 것이다.
제목이기도 한 역마는 당사주(唐四柱·중국 당나라 이허중의 점서에 그림을 넣어 도해하고 한글로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의 역마살을 가리킨다. 역마는 늘 분주하게 이리저리 떠돌아다녀야 하는 운명을 말한다. 오늘날에는 그리 나쁠 것도 없는 팔자지만, 정착을 기본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떠돌아다니는 삶은 주로 하층민(남사당, 장돌뱅이 등)들의 몫이기에 역마살은 액운일 수밖에 없다. 옥화는 역마살을 타고난 아들 성기의 액운을 없애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성기를 쌍계사로 보내거나 책 장사를 시켜 역마살을 때우려고도 하고, 색시와 짝을 지어서 생활이라는 진창에 꽉 붙들어 매려고도 한다. 남사당의 딸이자 운수납자(雲水衲子·구름이나 물처럼 떠돌아다니는 승려)를 성기의 아버지로 둔 옥화는 어떻게 해서든 성기만은 역마살의 액운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들고 싶은 것이다. 옥화의 비원은 체장수 영감이 데려온 계연이를 통해 거의 성사 단계에 이른다. 옥화는 계연과 성기를 맺어주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성기도 계연과 깊은 연정을 나누는 것이다. 둘이 가정을 이뤄 한곳에 정착한다면, 성기는 남사당 할아버지나 운수납자인 아버지와는 달리 뿌리내린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옥화의 소원이 성취되려는 순간에,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누구도 아닌 옥화 스스로 계연이가 자신의 이복동생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바람에 모든 일은 허사가 돼 버린다.
그토록 사랑하는 계연이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성기는 한참을 앓아누웠다가 계연이를 처음 만났던 여름이 돌아오고 나서야 다시 몸을 추스른다. 역마살의 극복이라는 옥화의 비원에서 벗어난 성기는 새로 맞춘 나무 엿판을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어 매고 길을 나선다. 그런 성기 앞에는 화갯골로 난 길과 구례로 난 길, 그리고 하동으로 난 세 갈래 길이 펼쳐져 있다. 이 세 갈래 길은 모두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 화갯골로 난 길은 쌍계사로 이어진 길이고, 그것은 성기가 역마살을 극복하려던 노력과 연결된다. 구례 쪽으로 난 길은 계연이 체장수 영감과 떠나간 길로서, 성기가 계연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가능성을 암시한다. 마지막 하동으로 난 길은 유랑의 삶을 의미하고 그것은 역마살이라는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된다. 역마살과 관련해서 성기는 극복, 거부, 순응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마주한 것이다. 이 중에서 성기가 선택하는 것은 하동으로 난 길, 즉 역마살에의 순응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마’의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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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사고를 딛고 2015년 새롭게 재단장한 화개장터. |
성기가 엿판을 걸머지고 하동 쪽으로 떠나는 장면에서, 온 천지는 성기를 축복하는 것처럼 생명력으로 충만하고 들떠 있어 아름답다. 가는 비가 지나가고 유달리 맑게 갠 화개장터에는 뻐꾸기의 건드러진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는 햇빛이 밝게 젖어 흐른다. 만사에 무력하고 소극적이던 성기도 이때만은 제법 육자배기 가락으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세상 만물이 어찌나 행복하고 아름다운지 이 대목을 읽을 때면, 나도 당장 엿판이라도 하나 맞춰 성기를 따라가고 싶을 정도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성기의 모습에서 옥화가 그토록 염려한 액운으로서의 역마살을 떠올리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한국소설사 전체를 놓고 보아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밝고 흥겨운 이 장면에서, ‘늘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객지생활로 고생한다’는 역마살의 부정적인 의미와 정서를 발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성기의 선택이 지닌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마’보다 두 달 뒤에 발표된 평론 ‘문학하는 것에 대한 사고’(‘백민’, 1948.3)를 나란히 펼쳐놓고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김동리는 그 유명한 ‘구경적(究竟的) 생의 형식의 탐구’라는 자신의 문학관을 펼친다. 참된 문학이란 ‘생명현상으로서의 삶’이나 ‘직업적 삶’을 넘어서서 ‘구경적 삶’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리는 이러한 ‘구경적 삶’이 “우리와 천지 사이엔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 없는 유기적 관련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아 속에서 천지의 분신인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참된 삶의 가능성은 비로소 개시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성기의 하동행은 먹고 잠자고 생식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생명현상으로서의 삶’이나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직업적 삶’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 작품에서 계연과의 사랑은 본능에 충실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계연의 정신적 자질은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그녀의 육체적 매력은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것이다. 계연의 아리따운 두 눈은 다섯 번이나 “꽃”에 비유되며, “작고 도톰한 입술”이라는 표현도 무려 다섯 번이나 등장한다. 칠불암 산행길에서 성기와 계연은 “들짐승”에 비유되며, 둘의 입술이 포개지는 순간 계연의 작고 도톰한 입술에서는 “한나절 먹은 딸기, 오디, 산복숭아, 으름들의 달짝지근한 풋내와 함께 향토흙을 찌는 듯한 향긋하고 고소한 고기(肉) 냄새가 느껴”진다. 성기와 계연의 애정은 김동리가 말한 ‘생명현상으로서의 삶’에 바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기가 구례 쪽을 향하다가 몸을 돌리는 모습은, 정착을 거부하는 것에서 나아가 ‘생명현상으로서의 삶’을 거부하는 것으로 새겨보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성기의 선택 속에서 생활의 편리와 연관된 ‘직업적 삶’을 발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가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인 ‘직업적 삶’에 관심을 두었다면, 아무런 보장도 없는 엿장수의 삶보다는 옥화의 곁에 머물거나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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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 많은 지역 중에서도, 김동리가 ‘구경적 삶’의 현장으로 화개장터와 그 주변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김동리와 가장 인연이 깊은 공간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그의 고향인 경주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그는 나고 자란 ‘신라 천년의 경주’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애정을 수많은 소설과 수필을 통해 평생 동안 피력했다. 그러나 김동리는 화개장터와도 적지 않은 인연을 맺었다. 화개장터와 가까운 사천에 위치한 광명학원에서 1937년 봄부터 1941년 6월까지 강사로 생활했으며, 이후에는 강제 징용장이 나온다는 제보를 받고 1943년에 6개월간 쌍계사 인근에 숨어 지낸 적도 있다. 이 당시 김동리는 “나는 지금도 진달래 철쭉으로 뒤덮인 화개협이라면 절로 무릉도원 같은 것을 연상케 된다”(김정숙, ‘김동리 삶과 문학’, 집문당, 1996, 192면)라고 회고할 정도로, 화갯골의 아름다움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 당시 화갯골이 이토록 아름답게 다가왔던 이유는 당시 김동리가 처한 상황이 너무도 어두웠기 때문일 것이다. 쌍계사 근처로 숨어들기 직전에 김동리는 평생을 의지한 맏형 김범부의 구속, 광명학원의 폐쇄, 조선어 잡지 ‘문장’의 폐간, 큰아들 진홍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을 연이어 겪어야만 했다. 이토록 고통스럽던 김동리에게 화갯골의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위안과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역마’에서 성기와 계연이 칠불암 구경을 가는 장면에서는 온갖 동식물로 빛나는 화갯골의 아름다움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다.
김동리는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일컬어진다. 신라 정신과 불교의 공(空) 사상에 연결되는 세계관은 물론이고, 서사를 채우는 구체적인 육체도 전통적인 우리네 풍속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목부터 토속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역마’야말로 대표적인 사례다. 흥미롭게도 계연과 옥화가 이복동생이라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되는 것은 둘의 귓바퀴에 사마귀가 있다는 것과 옥화의 의심(계연과 자신이 이복자매라는 생각)을 확인해주는 점쟁이의 말뿐이다. 김동리의 ‘역마’에는 당사주, 역마살, 명도점 등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는 조금은 슬프지만, 신명으로 가득 찬 한국인의 옛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경재
숭실대 국문학과 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