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한라산

천연 아이스링크’ 한라산…“히말라야 설질과 닮았다”

화이트보스 2018. 1. 29. 11:04


천연 아이스링크’ 한라산…“히말라야 설질과 닮았다”

등록 :2017-12-19 11:19수정 :2017-12-19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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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제주 산꾼 2인의 겨울 한라산 여행법
에베레스트 훈련캠프 장구목은 최고의 절경
눈꽃 도보여행 최고는 영실 · 어리목 코스
사계절 푸른 구상나무와 설경의 조화
천연 아이스링크 사라오름 산정호수
눈 덮인 겨울 한라산의 모습. 올해 1월25일 직접 헬기를 타고 촬영한 항공 사진이다. 제주/허호준 기자
눈 덮인 겨울 한라산의 모습. 올해 1월25일 직접 헬기를 타고 촬영한 항공 사진이다. 제주/허호준 기자

겨울 한라산은 또 하나의 제주도다. 남한 최고봉(1950m)답게 눈 덮인 한라산의 모습이 장엄하다. 눈이 쌓이면 한라산을 찾는 탐방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눈꽃과 눈꽃이 핀 나무 사이를 지나 한라산에 오르면 겨울 왕국의 주인공이 된다.

지난 5일과 8일 제주도 산간 지역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큰 눈이 두 차례 한라산에 내리면서 윗세오름(해발 1700m)에는 14㎝, 성판악 코스 진달래밭(해발 1500m)에는 12㎝, 어리목(해발 970m)에도 9㎝ 이상 쌓였다. 이때쯤이면 한라산 등산 마니아들의 마음도 설레기 시작한다. 한라산의 설경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다. 황량한 다른 겨울산과 달리 한라산 국립공원 전역에 있는 구상나무의 눈꽃이 아름답고, 하얀 눈 위에 피어 있는 초록도 산을 찾게 한다. 한라산 등산학교 출신인 2명의 산악인에게 한라산의 매력과 절경 포인트를 들었다.

한라산 사제비동산의 주목이 눈으로 뒤덮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강남일 작가 제공
한라산 사제비동산의 주목이 눈으로 뒤덮여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강남일 작가 제공

겨울 한라산의 매력

강남일(60·중학교장)씨는 벌써 15년 가까이 한라산을 올랐다. 한라산 백록담 정상까지 1년에 너덧 차례 오르지만, 주말이면 등산 동호인들과 함께 한라산과 오름 순례에 나선다. 출입 금지된 지역의 오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오름을 탐방했다. 그가 바라본 겨울 한라산의 가장 큰 매력은 ‘설경’이다.

강씨는 “한라산은 사계절이 모두 색다른 멋으로 다가오지만 특히 겨울철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무거운 장비를 지고 올라야 해 힘들지만 은빛 세상을 보는 순간 그 무게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눈(雪)이 눈(眼)에 선사하는 즐거움 때문에 산에 오른다”며 웃었다. 18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한라산에 오르는 이종범(64·여행사 대표)씨는 “설악산이나 지리산과 달리 한라산에는 계속 눈이 내리면서 쌓이고, 얼고 녹기를 반복해 단단해져 히말라야의 설질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히말라야 등반 원정대들이 한라산 관음사 코스 부근의 장구목에서 훈련한다. 이씨는 한라산만큼 눈꽃이 매력적인 곳이 없다고 자랑했다. 한라산 쓰레기 되가져 오기 운동 단체인 ‘한라산 지킴이’ 소속 이씨는 한 달에 2번 이상 성판악 코스나 관음사 코스로 정상에 오르고, 수시로 어리목 코스나 영실 코스 등으로 윗세오름에 오른다.

이씨는 “한라산 설경을 보려면 날씨가 좋아야 한다. 하지만 수시로 바람이 불어 하루에도 몇 번씩 한라산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강씨는 “구름이 약간 낄 때도 좋고, 눈이 내리는 날도 좋다. 눈이 아주 많이 내린 뒤 푸른 하늘이 보이는 화창한 날이면 더 좋다. 눈이 오면 걷는 게 지겹지 않다. 무거운 배낭도 가볍게 느껴진다”라며 웃었다.

서어나무에 핀 눈꽃.  강남일 작가 제공
서어나무에 핀 눈꽃. 강남일 작가 제공

이곳은 꼭 가보자

눈 쌓인 겨울, 한라산의 절경 포인트는 어디일까? 한라산에는 사철 푸른 구상나무가 자란다. 생육 환경 악화 등으로 절반에 가까운 구상나무가 고사했지만, 한라산 구상나무 숲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세계 최대 규모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한 나무다. 구상나무에 눈꽃이 피면 한라산은 겨울 왕국으로 변한다.

강씨는 ‘윗세오름-남벽 코스’를 추천한다. 강씨는 “윗세오름을 지나 남벽 분기점으로 가는 등반로에서 만나는 구상나무들이 눈옷을 입으면 마치 ‘스노우 몬스터’ 같은 장관이 연출된다. 서북벽 쪽에서 남벽 쪽까지 백록담 분화구 벽인 부악(釜岳)의 기암 설경이 대단히 매력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강씨가 두 번째로 추천하는 곳은 ‘어리목 코스’로 윗세오름에 오를 때 만세동산의 평원을 덮은 눈과 그곳에서 바라보는 정상 풍경이다. 강씨는 “눈이 쌓여 축축 늘어선 나무 사이를 지나 사제비동산에 오를 때는 동화 속 세계 같다. 눈 쌓인 한라산을 오를 땐 이런 천국이 또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에베레스트산 등 해외 등산 원정대의 겨울철 훈련 캠프로 이용되는 한라산 장구목(해발 1800m)과 용진계곡(해발 1700m)을 한라산의 최고 절경으로 꼽았다. 이씨는 “장구목에서 용진계곡에 걸쳐 설치된 겨울철 훈련 캠프를 보면 정말 환상적이다. 온 산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 왕관릉이 보이고 울긋불긋한 작은 텐트들이 죽 늘어선 모습은 하얀 도화지에 점을 찍은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오르게 한다”고 했다.

이씨도 강씨처럼 백록담 분화구 남벽 쪽을 함께 추천했다. 이씨는 “남벽 쪽은 날씨가 맑을 때도 좋지만, 안개가 걷히거나 덮일 때는 신이 있다면 이런 곳에 살지 않을까 생각된다. 남벽에 붙어 있는 눈과 그 아래 구상나무 숲에 쌓인 눈꽃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게 기가 막히다”고 찬탄했다. 두 사람이 선호하는 코스는 달랐다. 강씨는 어리목 코스로 윗세오름을 거쳐 남벽까지 갔다가 오는 코스를, 이씨는 관음사 코스를 추천했다.

관광객들이 제주 한라산 어리목 탐방로를 오르고 있다.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관광객들이 제주 한라산 어리목 탐방로를 오르고 있다.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한라산 등반 코스

한라산에는 5개의 코스가 있다. 등산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판악 코스(9.6㎞, 4시간)는 백록담 정상까지 갈 수 있다. 사라오름(해발 1324m)도 이 길로 갈 수 있다. 사라오름에는 산정호수가 있는데, 겨울철이면 얼어 아이스링크장 같다. 등산 코스 중 가장 힘들다는 관음사 코스(8.7㎞, 5시간)도 정상까지 갈 수 있다. 한라산 분화구 벽을 가까이 보면서 걸을 수 있는 돈내코 코스(7㎞, 3시간30분)는 남벽 분기점(해발 1600m)을 거쳐 윗세오름으로 연결된다. 많은 등산객이 눈꽃 도보 여행의 최고 명소로 영실 코스와 어리목 코스를 꼽는다. 영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영실 휴게소까지 거리는 2㎞ 남짓인데 택시들이 운행된다. 영실 휴게소(해발 1280m)에서 시작하는 본격적인 산행은 영실기암이 보이는 가파른 길이다. 병풍바위 또는 오백장군이라고 불리는 갖가지 형태의 기암과 어우러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영실기암은 제주의 뛰어난 풍광을 말하는 ‘영주십경’ 중 하나다. 이곳을 지나면 눈이 쌓인 구상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뭇가지와 잎사귀에 얼어붙은 눈도 볼 수 있다. 구상나무 군락지를 지나면 만나는 진달래와 철쭉 군락지를 뒤덮은 눈꽃은 조각 작품이다. 어리목 코스로 가면 치렁치렁 눈으로 뒤덮인 숲으로 들어서 사제비동산(해발 1423m)을 거쳐 만세동산(해발 1606m)에서 눈 덮인 평원을 보며 윗세오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어리목~윗세오름~영실 또는 영실~윗세오름~어리목으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많다. 어리목~윗세오름~남벽 분기점(해발 1600m)까지는 6.8㎞(3시간)로, 겨울철에는 4시간 정도 걸린다. 영실 휴게소~윗세오름~남벽 분기점까지는 5.8㎞(2시간30분)이고, 겨울철에는 조금 더 걸린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남벽 분기점으로 가는 길에서 찍은 백록담 외벽. 사진 강남일 작가 제공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남벽 분기점으로 가는 길에서 찍은 백록담 외벽. 사진 강남일 작가 제공

남벽 분기점을 향해 한라산을 오르는 탐방객.  강남일 작가 제공
남벽 분기점을 향해 한라산을 오르는 탐방객. 강남일 작가 제공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강남일 작가 제공
한라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강남일 작가 제공

한라산 동절기(11~2월) 허용 시간 입산은 낮 12시 이전에 해야 한다. 윗세오름 통제소는 오후 1시까지다. 하산은 윗세오름 오후 3시, 동릉 정상 오후 1시30분, 남벽 분기점 오후 2시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겨울철 안전 산행을 위한 팁 4가지

겨울철 등산에는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한라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한라산은 넉넉한 어머니의 품처럼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어 등산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내에서는 푸른 하늘이 보여도 한라산에 오를 때쯤이면 눈보라가 세차거나 강풍이 불 때도 있다. 아무리 좋은 날씨라 해도 바람, 비, 눈 등 기상 악화에 대비한 장비를 갖춰야 한다.

안전산행 1. 등산하기 전에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는 게 좋다. 추운 날씨로 굳은 몸의 근육과 관절을 충분한 스트레칭과 마사지로 풀어주고 등산을 시작하자. 
안전산행 2. 겨울 산행에 자만은 금물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산에 올라야 한다. 한라산은 해발고도에 따라 0.6~1도 안팎의 차이를 보일 정도로 온도 차가 심하고 강풍이 불면 체감온도는 더 내려간다. 이 때문에 겨울 등산에 필요한 보호 장구를 마련해야 한다. 보온 대책 마련도 필수다. 해가 짧아 헤드 랜턴도 필요하다. 간식 등 비상 식품을 충분히 챙기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방풍·방수 기능의 바지,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가거나 바지가 젖는 것을 막기 위한 스패츠 착용도 필수다. 미끄럼 방지를 위한 아이젠과 스틱, 눈부심 방지를 위한 선글라스는 기본이다. 넘어질 경우에 대비해 보폭은 짧게 걷는 것이 좋다. 
안전산행 3. 등산은 혼자 가지 말고 여럿이 가는 게 좋다. 한라산은 수시로 안개가 덮이는데, 반드시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해 여러 명이 함께 탐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낙상 같은 위험한 상황이 일어나면 외부에 도움을 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산행 4. 등산 중 체력적 부담을 느낄 때는 등산을 멈추고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좋다. 물을 마시고 당분이 있는 사탕이나 초콜릿, 견과류 같은 간식을 먹으며 5∼10분 정도 쉬는 게 좋다. 등산하다 보면 땀을 많이 흘려 탈수증상이 올 수 있으니 30분에 한 번 정도는 수분을 섭취하는 게 좋다.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jejuand/824115.html?_fr=mb2#csidx0d00a82f8c6e139a4394d0fb7d9a2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