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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화이트보스 2018. 2. 1. 10:30


입력 : 2018.02.01 03:16

2016년 8월 미국 대선이 한창일 때였다. 공화당 성향의 외교·안보 전문가 50여명이 반(反)트럼프 연판장을 돌렸다. "트럼프는 미국 안보를 위험에 빠트리고 가장 무모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트럼프 거부 선언이었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빅터 차와 친한 이들이 대거 서명했다. 빅터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선거 후 빅터가 국무부 차관보, 주한 미 대사 자리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빅터는 2002년 포린 어페어스에 쓴 논문으로 일약 '스타'가 됐다. 북한에 대해 '강경한 개입(hawk engagement)'을 구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협상을 해도 강한 압박과 제재를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논지였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이 깔렸다. '매파적 개입'으로도 불리는 이 용어 하나로 NSC에 발탁됐다. 6자 회담 차석 대표로도 활동하며 북한보다 노무현 정부 인사들과 더 많은 논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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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는 북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주전공은 한·미·일 3국 관계다. 컬럼비아대 박사 논문은 한·일이 미국과 각각 동맹을 맺은 '유사 동맹'이면서 '적대적 제휴'를 하는 기이한 상황에 주목했다. 그 논문으로 권위 있는 '오히라 저작상' 을 받았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만난 빅터는 "한국 집권 세력들이 반일(反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된 후 엄격한 검증을 받기 시작했다. 어느 모임에서 'A4 용지 60장짜리 질의서가 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전직 미 국무장관이 "나도 대사 되면서 청문회를 거쳤는데도 장관 될 때 또 까다로운 검증을 통과해야 해 소리를 지른 적이 있다"고 위로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그에게 아그레망 (대사 임명 동의서)을 부여했다. 이 상황에서 내정이 철회됐다는 뉴스가 태평양을 건너왔다.

▶자신도 강경파이지만, 트럼프의 '전쟁 불사' 대북 정책에 다른 견해를 밝힌 것이 문제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대사 자리를 준다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나서는 문화에 익숙한 우리로선 빅터가 대사직 대신 소신을 지켰다는 얘기가 생소하게 들리기도 한다. 주한 미 대사 자리가 지난 1년에 이어 앞으로도 최소 수개월은 공석이 되게 됐다. 이 엄중한 상황에 미국 대사가 이렇게 오래 비어 있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한·미 관계가 얼마나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31/201801310332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