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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나라의 '갓(God)종관'

화이트보스 2018. 3. 10. 10:15



쌍둥이 나라의 '갓(God)종관'

입력 : 2018.03.10 03:02

[권승준의 한방]
저출산 시대에 직접 받은 쌍둥이 8000명… 多태아 자연분만 전문 서울대 전종관 교수

산부인과 의사는 5분 대기조 같은 삶을 산다. 툭 하면 새벽에 달려온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 약속을 잡은 날 서울 연건동에 있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만난 전종관 교수는 “오늘 오전 3시에 호출 와서 받은 아이들”이라며 쌍둥이를 양팔에 안고 웃었다.
산부인과 의사는 5분 대기조 같은 삶을 산다. 툭 하면 새벽에 달려온다.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뷰 약속을 잡은 날 서울 연건동에 있는 병원 신생아실에서 만난 전종관 교수는 “오늘 오전 3시에 호출 와서 받은 아이들”이라며 쌍둥이를 양팔에 안고 웃었다. /이태경 기자
지난달 28일 한국의 미래를 어둡게 한 뉴스가 발표됐다. 2017년 출생아가 35만7700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단 소식이었다. 이뿐 아니다. 가임 여성 수나 혼인율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한때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당부했던 정부는 이제 '낳기만 하면 나라에서 키워주겠다'고 읍소하고 있다.

온통 하락세인 출산 관련 통계에서 유일하게 증가세가 하나 있다. 다태아(쌍둥이 이상 신생아) 숫자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6년 9367명이었던 다태아 출산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2016년 1만5734명에 달했다. 전체 신생아 중 다태아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4%에서 3.9%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덕분에 많은 산부인과들이 폐업하는 와중에도 산모들이 몰려들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의사가 있다. 국내 최고의 쌍둥이 분만 전문가로 꼽히는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종관(59) 교수다.

지금까지 자신의 손으로 받은 쌍둥이만 8000여 명. 지난 1월에는 조산 위험이 있는 세 쌍둥이 산모를 진료하면서 첫째를 먼저 낳고, 8주 뒤 나머지 둘을 낳는 지연 간격 분만에 성공해 화제가 됐다. 지연 간격 분만은 불가피하게 첫째 아이를 일찍 분만해야 할 때 나머지 태아의 임신을 유지하는 기법이다. 국내에서 8주 간격을 두고 성공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교과서대로 했더니 명의가 됐다

산부인과 의사를 가장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건 엄마들이다. 회원 수 4만명이 넘는 인터넷 카페 '쌍둥이나라'에서 전 교수는 마치 대통령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그 덕분에 무사히 출산할 수 있었다는 쌍둥이 부모들의 간증(?)이 줄을 잇는 덕분이다.

-'쌍둥이나라'에선 '갓(God)종관'으로 불리고 있더군요.

"그런가요? 전혀 몰랐습니다. 산모들에게 물어보면 그 카페에서 얘길 듣고 왔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에 관해 무슨 얘길 하나 궁금해서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쌍둥이 부모들만 가입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결국 못 들어갔죠(웃음). 1990년대엔 절 찾아오는 쌍둥이 산모가 1년에 50~6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300명쯤 됩니다. 쌍둥이 출산도 점점 늘고 있고요. 올해 안식년이었는데 결국 포기했습니다. 저에게 진료받겠다고 오는 산모들을 두고 쉴 수가 없더라고요."

-출산율이 줄어드는데 왜 유독 쌍둥이만 늘어나는 걸까요?

"간단한 이유죠. 예전보다 난임 치료 기술이 발전한 덕분입니다. 난임 시술은 보통 여성이 과배란 주사를 맞는 걸로 시작합니다. 과배란 주사란 게 말 그대로 배란을 과하게 하도록 만들어주는 주사입니다. 난자가 여러 개 나오게 해서 착상 확률을 높이는 것. 난자가 여러 개 나오다 보니 쌍둥이 임신 확률도 높아지는 거죠."

-교수님이 자연분만을 우선하기 때문에 많은 부모가 찾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쌍둥이는 보통 제왕절개를 하고, 어떤 병원은 산모 의사도 묻지 않고 제왕절개를 하는 곳도 있다던데요.

“제가 자연분만을 많이 하긴 하지만, 무조건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쌍둥이 산모들에게도 자연분만을 하나의 선택지로 주는 거죠. 제왕절개는 산통을 겪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수술 후 회복 기간이 필요하고 합병증 위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쌍둥이 자연분만은 당연히 하나만 낳는 것보다 위험합니다. 안전하게 자연분만으로 쌍둥이를 낳으려면 의사의 경험이 중요한데 그걸 단시간에 쌓기 어렵죠.”

-교수님은 어떻게 경험을 쌓은 겁니까.

“원래 제 전문 분야는 ‘고위험산모’예요. 쌍둥이 산모 중에 그런 분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많이 보게 된 거죠. 자연분만 같은 경우도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로 한 것뿐이에요. 의학 교과서라는 게 결국 ‘지금까지 이런저런 의사들의 경험을 종합해 봤을 때 이 경우엔 이런 방법이 제일 유리하다’고 요약해 놓은 것이거든요. 교과서에 나와 있는 테크닉이라면 다 익히는 게 의사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수능 고득점 비결과 같은 건가요.

“교과서대로만 해도 소의(小醫)는 될 수 있습니다(웃음).”

-무슨 뜻인가요.

“의사들끼리 하는 말로 대의(大醫)와 소의가 있다고 합니다. 흔히 예방의학을 하는 분들을 대의라고 합니다. 수술할 필요조차 없게 해주는 의사인 거죠. 수술을 잘하면 소의는 될 수 있는 것이고요.”

세 쌍둥이 중 첫째는 2017년생, 둘째·셋째는 2018년생 전종관(사진 왼쪽) 교수는 지난해 11월 산모 손지영(사진 가운데)씨의 세 쌍둥이 중 1명을 먼저 출산하도록 하고, 8주 뒤인 지난 1월 나머지 둘을 낳는 ‘지연 간격 분만’에 성공했다. 덕분에 먼저 나온 첫째와 나머지 둘은 한 살 터울이 나는 셈이라 화제가 됐다.
세 쌍둥이 중 첫째는 2017년생, 둘째·셋째는 2018년생 전종관(사진 왼쪽) 교수는 지난해 11월 산모 손지영(사진 가운데)씨의 세 쌍둥이 중 1명을 먼저 출산하도록 하고, 8주 뒤인 지난 1월 나머지 둘을 낳는 ‘지연 간격 분만’에 성공했다. 덕분에 먼저 나온 첫째와 나머지 둘은 한 살 터울이 나는 셈이라 화제가 됐다. /서울대병원

실패로 시작한 교수 생활

지금이야 국내 최고의 분만 전문가 중 한 명이지만, 전 교수는 “분만을 하는 산과 의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말했다.

-원래 지원 분야는요.

“전 산부인과에 올 때 산과(産科·분만) 의사가 될 거란 생각도 안 했습니다. 전공의 시절엔 난임 분야를 주로 공부했습니다. 1993년에 교수 임용 시기가 왔을 때도 난임 분야를 지원했죠. 그런데 당시 산부인과 과장인 이진용 교수님이 ‘산과를 하라’고 제의했습니다. 청천벽력이었죠. 그땐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관심이 없던 분야라서 교수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인데, 제가 수련하던 1980년대만 해도 아기 받는 건 어떤 의사나 다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입니다. 인턴이나 심지어 의대생에게 받으라고 하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지방 의대에 실습 나가니 ‘아이 한번 받아보라’고 맡기길래 기겁한 적이 있습니다. 산과 전임 교수라고 타이틀을 달아도 처음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 맡은 산모의 양수 검사를 하는데 바늘로 찔러도 양수가 안 나오는 거예요. 두 번 실패한 뒤에 다음에 다시 오라고 했더니 안 오시더군요. 실패로 경력을 시작한 거죠.”

-환자는 무조건 받아준 의사로도 유명합니다.

“아무래도 종합병원에 근무하다 보니 주변에 개업한 선배나 작은 병원에서 출혈이 심한 산모처럼 어려운 환자가 있으면 저에게 보냈습니다. 물론 저만 보고 보낸 건 아니었지만, 아무튼 매일매일 살얼음 걷는 기분으로 산모를 받았습니다. 어차피 겪어야 할 시련이면 기간이라도 줄이자는 생각에서 오는 환자는 무조건 받았습니다. 그렇게 3~4년을 보내니 강호의 고수들과 교감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더군요.”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요.

“아무래도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오래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온 산모가 1만명은 될 텐데 그중 사망한 분들이 10명쯤 됩니다. 특히 2004년 한 해 동안 제가 받은 환자 중 3명이 죽었습니다. 5월, 6월, 8월에 한 명씩. 정말 미칠 거 같았어요. 죽을 거 같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죽는 산모도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후 5시 45분에 응급실에서 부르길래 갔더니 내과에서 보던 환자인데 임신했다고 저를 불렀더라고요. 가서 물어보니 환자가 별 이상한 기색은 없었어요. 입맛이 없어 밥도 잘 안 들어가고 기운이 없다길래 ‘밥을 안 먹으니 기운이 없죠’라고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의 상태였습니다. 근데 밤 10시에 심정지가 오더니 11시에 죽었습니다. 사인은 불명이었고, 남편은 부검도 사양했죠.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분은 SL루푸스란 희귀병 환자였던 것 같아요.”

전 교수는 사망한 환자 한 명 한 명의 정확한 사망 시각과 정황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태교는 여성에게 근거 없는 죄의식 느끼게 한다

전 교수는 “임신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합니다. 산부인과 의사의 제안은.

“저출산은 사회문제이니 의사인 제가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닙니다. 다만 의학적으로 보면 임신 자체가 여성에게 큰 부담이자 위험인 건 사실이죠. 그게 임신을 기피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엄마가 되는 건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자에게 부담이 너무 많이 갑니다. 거기다 인터넷에서 엉터리 정보가 너무 많아 여성들을 지레 겁먹게 만드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어떤 정보가 엉터리인가요.

“예를 들면 산모에게 먹지 말라는 게 너무 많습니다. 의학적으로 볼 땐 거의 다 근거 없는 얘기예요. 저는 산모들에게 담배와 술 빼곤 먹고 싶은 대로 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권합니다. 커피도 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아요. 태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태교 반대론자입니다. 의학적으로 태교의 효과가 증명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태교라는 걸 잘 살펴보면 산모를 위하는 게 아니라 산모를 억압하는 게 너무 많아요. 일하는 여성들은 태교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그 때문에 근거 없는 죄의식을 느끼는 겁니다. 안전한 출산의 제1원칙은 무엇보다 산모가 건강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그 반대로 임신한 여성들이 죄의식을 느끼게 만듭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산부인과에 의대생들이 몰렸는데, 지금은 정반대라고 들었습니다.

“산부인과, 특히 내가 있는 산과는 체력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항상 응급이에요. 5분 대기조 같은 삶입니다. 아이가 날 잡아서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오늘도 새벽 3시에 아이가 나온다고 전화가 왔어요. 지하철 2호선 교대역 근처에 사는데 병원까지 10분 만에 왔습니다. 의대생들이 산부인과에 안 들어오니까 지방 의대에선 나중에 원하는 전공으로 바꿔줄 테니 일단 산부인과에서 일하라는 식으로 데려온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요즘 산과를 보면 후배들은 어리숙한 친구들이 많이 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동네 산부인과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지방에선 애 낳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하더군요. 경영난 때문인지 산부인과들이 과잉 진료를 많이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가슴 아픈 얘기죠. 가끔 제대로 된 산부인과가 없어서 우리 병원까지 몇 시간씩 차를 타고 오는 산모들도 있어요. 산부인과도 경영이 힘들다 보니 ‘공포’ 마케팅을 하는 의사들이 종종 있어요. ‘아이에게 필요하다’면서 불필요한 검사에 수십만원을 쓰게 하는 식이죠. 대표적인 게 ‘니프티(NIFTY)’라고 중국에서 나온 기형아 검사 상품인데, 이게 건강보험 항목이 아니라 비싸요. 제가 볼 땐 다른 검사로 충분한데 산모들의 공포심을 자극해서 비싼 검사를 받게 만드는 거죠. 안타깝습니다.”

-수많은 생명 탄생의 현장을 지킨 의사에게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생명이란 가능성 같아요. 그야말로 무한한 가능성.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쌍둥이인데 임신 18주에 배 위쪽에 자리 잡은 아이의 양수가 터진 겁니다. 그 애가 있는 태반에서 양수가 몽땅 사라졌어요. 죽었구나 싶었는데 위쪽에 있는 애라 꺼낼 수도 없었어요. 그러면 아래쪽 애가 위험하거든요. 그 뒤로 위쪽 애는 초음파 검사도 안 했어요. 28주에 아래쪽에 남은 애를 받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 세요?”

전 교수는 갑자기 자신의 스마트폰 사진첩을 열더니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두 아이가 다섯 개의 초를 꽂은 생일 케이크를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아이가 살아있는 거예요. 그것도 아주 건강하게!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죠. 그때부터 생명 앞에서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설사 엄마가 포기해도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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