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식물공장

심술 부린 5월의 하늘..벌들이 죽고 있다

화이트보스 2018. 6. 2. 18:21



심술 부린 5월의 하늘..벌들이 죽고 있다

입력 2018.06.02. 09:17 수정 2018.06.0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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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낮은 기온, 잦은 비..아까시꽃 금방 떨어졌다
꿀을 따지 못한 벌은 굶어 죽고 싸우다 죽어

[한겨레]

벌이 꽃에 앉아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안녕하세요. 도시양봉을 하는 한겨레신문 애니멀피플팀의 최우리 기자입니다. 푸른 5월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잘 보냈습니다. 그런데 벌들은 잘 보내지 못했다고 하네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1일 오후 2시 기상청 홈페이지에는 ‘5월 기상특성’ 보도자료가 올라왔습니다. 5월의 기상의 특징은 1~10일까지 기온이 평년보다 낮았고, 비가 많이 왔다는 점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비는 얼마나 자주 왔을까요? 전국적으로 비가 온 날은 12일이나 됐습니다. 2~3일, 6~7일, 7~9일, 12~13일, 29~30일입니다. 특히 3일 서울과 30일 울산에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우박이 떨어졌지요. 특히 중부지방에는 16~18일 많은 비가 왔습니다. 17일 철원 103.7㎜, 동두천 98.6㎜, 홍천 158.5㎜이나 내렸습니다. 각 지역 5월 일강수량 최다 기록을 바꿔놓았습니다.

이때 내린 비는 힘도 좋았습니다. 1시간 최다강수량을 기록한 지역이 많았습니다. 16일 서울에는 1시간에 35㎜가 내렸고, 17일 홍천에는 63.5㎜가 내렸습니다. 18일 고산 55.5㎜, 태백 34.9㎜ 등이 내렸습니다. 전국 5월 한 달 동안의 평균 강수량이 123.7㎜였으니, 하늘에 구멍이 뚫렸던 날이 아니었을까요? 덕분에 5월에 황사가 있던 날은 0.4일로 평년 기준(1.1일)보다 적었다고 하네요.

상순에 기온이 낮았던 것은 어떨까요. 3일 일평균기온이 인제 7.3℃, 고창 10.8℃이었습니다. 이날 고창의 최고기온은 15.4℃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찾아보니 고창의 3월31일 날씨가 8~19℃였으니 날씨의 역주행이라고 봐야겠죠. 속초도 10일 최저기온이 4.5℃까지 떨어졌습니다. 상순은 아니지만, 중부지방의 호우가 시작된 16일 서울의 최고기온도 21.8℃에 그쳤습니다.

5월의 날씨를 톺아보는 이유는 저와 동료들이 키우는 벌들 때문입니다. 4월말부터 5월말까지가 한국의 대표적 밀원식물인 아까시나무에 꽃이 피는 시기입니다. 이때 날씨에 따라 한 해 벌꿀 생산량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동 양봉을 하는 양봉인들은 아까시꽃의 개화 시기를 따라 북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올해 5월 아까시꽃 향기를 맡아보신 적 있으신지요. 저는 별로 없었습니다. 아파트에 핀 아까시꽃이 아주 잠깐 핀 것을 봤는데 금세 비에 젖어 축 늘어졌습니다. 곧 누렇게 색이 바래있는 모습만 기억납니다. 향기를 맡을 새가 없었어요. 기상청이 밝힌 대로 꽃들이 개화하는 5월에 춥고 비가 많이 왔다는 것은 벌을 포함한 생태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입니다.

벌들은 밀랍으로 만든 육각형 벌집 안에 꿀을 모은다. 꽃꿀에 벌이 만드는 효소를 섞은 후 벌이 날갯짓을 해 수분을 증발시켜야 우리가 먹는 꿀이 된다. 최우리 기자

비가 오면 벌들은 꽃에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벌이 만드는 꿀은 우리의 양식이기도 하지만 일단 벌들의 먹이입니다. 먹이가 부족한 벌 무리는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합니다. 남의 집 꿀을 훔쳐오는 도봉이 발생하는 거죠. 도봉을 하지 못하면 굶어 죽으니까요. 도봉은 사람 도둑처럼 몰래 꿀만 훔쳐오는 건 아닙니다. 따르는 여왕벌의 페로몬이 다른 벌 무리는 본능적으로 서로 싸우는데, 이때 죽어 나가는 벌들이 많이 생깁니다.

실제로 꿀이 적게 모였습니다. 서울 동대문, 명동 등의 건물 옥상에서 도시양봉을 하는 ‘어반비즈서울’ 상황도 좋지 않습니다. 1일 저의 양봉 교육 동기인 어반비즈서울의 관계자는 “지난해 5월이 평년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그보다 40~50% 줄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5월에 전체로는 1t, 벌통 한 통당 12㎏을 수확했는데 올해는 전체 400㎏, 6㎏밖에 꿀이 나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는 “백합나무, 피나무도 있지만 아까시나무만 못 하다. 6월말 밤꽃이 피기 전까지는 이 상황일 듯하다”라며 “일단 벌을 살리는 게 목적이라 먹이용 설탕물을 조금 주고 있다. 도봉은 일어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벌은 그림과 달리 꽃에서 꿀을 긴 혀로 빨아들여 몸속 저장 통에 담아 벌통으로 옮긴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한국양봉협회는 비상입니다. 한국양봉협회 쪽은 자체 추산 올해 약 30%의 수확량 감소를 예상합니다. 우리나라 한 해 벌꿀 생산량이 2017년 기준 15만1천톤입니다. 약 4만5천톤이 줄어든다는 것이지요. 회원인 양봉 농가는 전국에 2만4246호나 됩니다. 벌들 숫자는 셀 수 없이 많겠지요.

아까시꽃만이 아니라 사과꽃, 감꽃 등도 비가 많이 내려 일찍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과실 재배도 타격이 예상됩니다. 지난 28일 밤 경기도 화성 4천평의 사과밭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취재원이 낙과가 많아 속상하다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농촌진흥청 사과연구소의 권헌중 박사도 “복합적인 이유겠지만 사과꽃이 개화했을 때 수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낙과가 많이 발생했다. 4~5월 날씨가 춥고 비가 와서 그런 것 같은데 조사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지구에서 벌이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는 멸망한다고 했습니다. 꽃이 피지 않으면 벌도, 사람도 큰일 난다는 거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요? 지구온난화가 이유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이상기후가 반복되면 벌들은 더욱 살기 어려워진다는 거죠. 생활하시다가 주변에서 벌을 보면 ‘니들이 고생이 많구나’라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농가의 어려움도 생각해주세요.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어반비즈서울이 도시양봉을 하는 서울 동대문의 한 호텔 옥상. 최우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