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6.04 03:17
일자리 예산 20여조원 매년 투입해도 성과 없어
의료 산업 키우고 농업·서비스업 고급화해
'수요'를 먼저 늘리는 게 소득 주도 성장의 正道

일자리 창출을 국정 과제 1호로 내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다. 지난해 일자리 예산 17조9000억원이 부족해서 7월에 추경 11조원을 편성했던 정부는 올해에도 일자리 예산 19조2000억원을 제대로 써 보기도 전에 벌써 추경을 3조9000억원 편성했다. 이는 일자리 창출이 만만찮음을 정부도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10조원이면 40만명에게 연간 2500만원씩 나눠 줄 수 있는 엄청난 돈이다. 이 많은 돈을 쓰고도 일자리 창출이 이 모양이면 뭔가 잘못됐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수요 확대 효과가 더 크고 확실한 방법이 얼마든지 더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일자리가 없는 사람을 취직시켜 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더 빨리 더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요 진작책을 먼저 쓰는 것이 '소득 주도 성장'의 정도(正道)라는 말이다.
그 첫째가 해외로 유출되는 수요를 조금이라도 국내에 잡아두는 것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국민 2650만명이 해외여행을 가서 307억달러(약 33조원)를 썼다. 일본이 2011년 622만명이었던 방일(訪日) 관광객을 1869만명으로 늘리는 동안, 우리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탓만 하고 있었다. 유학과 병(病) 치료를 위해서도 상당한 금액을 해외에서 쓰고 있다.
관광은 인프라가 빈약하고 교육은 언어 장벽 등으로 쉽지 않겠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인력과 시설을 가진 의료에서 규제 때문에 수요를 외국에 뺏기는 것은 정말 아프다.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정부의 무능함만 폭로하는 그런 대책은 내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라미드나 요세미티공원 같은 것을 만들라는 게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게만 해줘도 국내에서 훨씬 더 많이 돈을 쓸 것이다.
둘째,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농업과 서비스업도 '해외 수요'를 개척해야 한다. 농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제조업 종사자들보다 특히 무능하거나 게으르다는 증거는 없다. 해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해보라고 하지도 않았고, 하겠다고 해도 할 수 있게 해주지를 않았을 뿐이다.
무(無)에서 출발한 제조업을 세계 최강 반열에 올려놓은 그 전략, 전술, 정책을 농업과 서비스업에도 적용하면 된다. 제조업에 해주었던 규제 혁파와 정책적 지원도 그대로 해주어야 한다. 서비스업과 농업이 내수에만 의존하고 있는 한, 투자를 일으키고 수요를 더 늘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셋째는 우리나라 농업과 서비스업에도 '고급화 전략'을 도입하고 제조업이 버는 만큼 돈을 버는 것을 용납해 주어야 한다.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두 배 높은 나라에서도 하루에 여섯 끼를 먹거나 맹장 수술을 두 번 하는 사람은 없다. 소비량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는데 더 비싼 값을 치르는 고급 소비를 하기 때문에 고(高)소득 국가가 된 것이다.
간단한 예로 우리는 병원에 가면 평균 2~3분 진찰을 받고 나오는데, 이를 5분으로 늘리면 의사와 간호사의 일자리를 2배 늘릴 수 있다. 3만달러의 소비만 하는 나라는 3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없다. 수요의 해외 유출도 국내 서비스의 수준이 불만족스러워 생기는 게 대부분이다.
금융업이나 통신·의료 산업 등의 요금을 억제해 도무지 돈을 벌 수 없게 하는 것도 문제다. 예컨대 통신 요금을 깎는 대신 통신 회사로 하여금 다양한 고급 콘텐츠 산업 등에 투자하게 하면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돈을 벌 전망이 안 보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