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6.04 03:00
내일 서울고법 부장판사회의… 이례적으로 입장 표명 추진
"재판 거래는 있을 수 없는 얘기" 일부 대법관, 대법원장에 항의
"대법원장, 법 따라 고발 결단해야" 진보성향 판사는 소셜미디어에 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오는 5일 회의를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정권에 우호적인 재판을 놓고 청와대와 거래하려 했다는 이른바'재판 거래' 의혹에 대한 입장을 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20년 이상 재판을 한 중견 법관이다. 사실심(1·2심)을 마무리하는 법원 내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 서울고법에는 전국 법원에서 가장 많은 68명(41%)의 부장판사가 일하고 있다.
특별조사단은 지난달 25일 '양승태 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여권(與圈)에 유리한 재판 결과를 활용해 청와대 설득을 시도한 내부 문건이 나왔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행정처가 재판 선고 뒤에 결과를 취합한 것으로 사전에 재판에 개입하진 않았다"고 발표했다. '재판 거래'는 사실무근이란 것이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관련자) 고발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재판 거래' 의혹은 사실처럼 외부에 비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오는 5일 모두 모여 회의를 할지, 기수별로 대표를 뽑아 모일지 등을 놓고 의견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 거래' 의혹이 주요 안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 거래를 계속 사실인 양 몰고 가는 것 같다.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 거래라는 말은 법원 재판을 통째로 부정하는 말이다. 김 대법원장이 왜 이 의혹은 허위라고 못 박아 말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일부 대법관도 지난 1일 김 대법원장과의 간담회에서 "재판 거래는 있을 수 없는 얘기"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대법관들이 사실상 '재판 거래' 의혹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김 대법원장에게 항의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는 문제를 논의하는 대법원장 자문 회의도 이달 초 연달아 열린다. 김 대법원장이 '양승태 행정처' 근무 판사들을 고발할지를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말한 데 따른 것이다. 오는 5일 대법원 사법발전위원회, 7일 전국법원장회의가 열린다. 11일에는 각급 법원의 직급별 판사 모임인 법관대표회의가 예정돼 있다.
법관대표회의를 앞두고 일선 판사들도 회의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할 예정이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 인천지법에선 4일 단독판사들이 회의를 갖는다. 5일엔 수원지법에서 전체 판사회의가 열린다. 앞서 지난 1일 의정부지법 단독판사들은 회의 후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해 성역 없는 엄정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낸 바 있다.
검찰 고발을 요구하는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판사들은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계에서) 고발이 안 된다고 해도 대법원장은 법에 따라 고발을 결단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고 있다. "(양승태 행정처의) 재판 개입이 없었다고 해도
법원 내부에선 김 대법원장이 관련자들을 고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김 대법원장이 자신이 만든 특별조사단이 최근 내놓은 '형사 고발 불가' 발표를 뒤집고 다시 '의견 수렴' 절차를 밟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