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부 임명한 대법관·헌재 재판관 중 TK는 ‘제로’
국민이 원한 것은 탕평이지 특정 지역 응징 아니다
박근혜 정부 말기 기준으로 대법관(14명)·헌재 재판관(9명) 총 23명 중 영남권 출신은 10명(그중 TK는 3명)이었다. 그런데 헌재 재판관 5명이 교체되는 오는 19일에는 그 절반인 5명 또는 6명(자유한국당 지명자가 TK 출신인 경우)으로 줄어든다. 5명만 남으면 그중 4명은 PK, 딱 한 명이 TK 출신이다. 나 홀로 TK가 될 조희대 대법관(경주 출생)이 1년 반 뒤에 퇴임하면 TK 출신 대법관·헌재 재판관 절멸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다음 주에 국회 청문회장에 나오는 헌재 재판관 후보자들이 모두 무사히 임명될 경우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이 충남(4명)과 전남(2명) 출신으로 구성된다. 광역·특별시를 포함한 충남·전남 인구는 721만 명으로 전체 국민의 14.1%에 해당한다. 인구 비율로 보면 14%가 두 최고 법원 중 한 곳의 67%를 차지하는 게 된다. 지역 분포 측면에선 전례 없는 편중이다.
대법관과 헌재 재판관을 출신지에 따라 고르게 임명해야 한다는 법이나 규칙은 없다. 관행적으로 다양성과 지역 균형을 고려했을 뿐이다. 지명권을 행사한 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더불어민주당이 TK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결과가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TK 출신 법조인 중 상당수가 이래저래 전 정부 ‘적폐급’ 인사들과 연결돼 있어 적당한 인물 찾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TK 지역이 고향인 판사 출신의 한 법조인은 “이번 정부에서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나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한 판사를 후보로 지명하다 보니 그런 곳에 참여한 법조인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TK 지역이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극단적으로는 정권 내부에 TK에 대해 ‘마이 무따 아이가’ 심리가 작동했을 수도 있다. 대법관·헌재 재판관만 놓고 보면 이런 ‘포식론’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기대했던 탕평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도 ‘우리 편 챙기기’가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TK 출신들이 검찰총장·서울중앙지검장·청와대 민정수석 등 권력의 길목을 두루 꿰차며 다시금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지난해 봄 국민은 이런 비정상이 정상화되기를 바랐다. 그게 촛불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국민이 원한 것은 TK 응징·박대는 결코 아니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에서 장·차관급으로 임명된 공직자 114명 중 TK 출신은 11명이었다. TK와 인구가 비슷한 전남·북 지역 출신은 29명이었다. 경찰 고위 간부 중에서도 TK를 찾기가 힘들게 됐다. 대구에서는 “여기가 적폐의 땅이냐”는 냉소가 넘친다. 시민의 마음에 옹이가 자리 잡으면 없애기가 어렵다. 소외 의식은 복수심을 낳는다. 업보(業報)를 쌓는 인사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문 대통령의 광화문광장 기억을 소환한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 통합이 시작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취임사 앞 대목이다. 불과 16개월 전인 그날 국민은 열렬히 손뼉을 쳤다.
이상언 논설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