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많아 소비 여력 없어
해외 생산 늘려 국내 제조업 위축
글로벌 시스템, 개별 정책 안 먹혀
기업 외국인 지분율 50% 정도 높아
고용 규모 확대, 임금 인상 어려워
이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면서 자영업자가 많은 노동시장 특성을 고려해 소득주도성장으로 변형됐다. 하지만 저자들도 인정하듯 국가의 재정 및 경제 정책이 시장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전제는 관세를 통한 시장보호와 교역의 국가 간 분립(分立)이었다. 시장이 통합되고 위기와 기회가 실시간으로 연계되는 글로벌 경제시스템하에서 한 나라만의 경제정책은 의도한 효과를 보기 어렵다.
② 가계부채 소득주도성장의 두 번째 장애는 가계부채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2017년 기준 1500조원을 넘었고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180%에 이른다. 2008년 금융위기 때의 미국(129%)보다 훨씬 높다. 소비·저축을 위해 쓸 수 있는 돈보다 빚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2600만 취업자가 각각 5700여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인데 4%로 계산해도 연간 228만원이 이자로 지출되는 셈이다. 정상적 경제라면 근로자는 소비하고 남는 돈을 은행에 저축하고, 은행은 기업에 생산 자금을 대출하며, 기업은 이를 이용해 돈을 번 뒤 근로자에게 임금으로 환원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기업이 저축(유보)하고, 은행은 이를 가계에 대출하는 역의 구조다. 임금이 충분치 않으니 근로자들은 소비를 대출에 의존한다. 성장을 견인할 소비 여력이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는 셈이다.
④ 노조 쇠퇴 노동조합의 쇠퇴 또한 소득주도 성장을 어렵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서구의 경험으로 보자면 1960년대와 70년대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이며, 근로자들의 소득과 생활수준이 최고였던 시점이다. 그러나 대번영의 시기 이후 노동조합은 쇠퇴를 거듭했고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제조업 소멸로 조직화 기반도 약화됐다. 따라서 임금개선을 위한 노동조합의 역할도 더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서비스산업의 취약계층 등을 중심으로 노조조직화가 확산되고 있기는 하지만 중산층으로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⑤ 제조업 위축 제조업의 위축 또한 중요한 문제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산업구조에서 제조업 비중은 급속히 축소되었고 서비스업 비중은 압도적으로 성장했다. 2016년 현재 전 산업에서 차지하는 제조업(광공업) 취업자 비중은 17.2%이며 서비스업의 비중은 77.9%에 달한다. 중요한 원인은 자본의 해외 이동이다. 한국수출입은행 발표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해외직접투자액은 약 492억 달러에 달한다. 국내로 유입되는 직접투자는 감소하는 추세인데 해외로 나가는 투자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해외 생산 비중은 80%를 넘었고, 현대자동차의 현지공장 생산 비중도 60%를 넘었다. 최근 40대의 고용률이 역대급으로 추락한 이면에 자동차·전자·조선 등 핵심 제조업의 쇠퇴가 내재한다.
이러한 추세의 역전 없이 성장과 소득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대차 공장 옆에는 이마트가 생길 수 있지만 이마트 옆에는 현대차 공장이 들어서지 않는다. 공장이 들어서야 식당·병원·상가·백화점이 생기며 주택공급도 증가한다.
해법은 소득주도성장 모델이 경쟁력을 얻기 위해서는 논리의 반대 경향에 대한 관심과 관리 또한 필요하다. 무엇보다 총소비 차원에서 소득의 성장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는 경우 기업은 비용관리를 위한 다양한 수단을 모색하는데 우선 가능한 선택은 고용을 축소하는 것이다. 고용이 축소되면 그만큼 임금의 소비효과는 상쇄된다. 다음은 비용 부담을 외부에 전가하는 경우다. 시장 수준 이상으로 임금이 인상되면 시장지배력이 높은 기업은 추가 비용을 하청기업이나 프랜차이즈에 전가한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하청근로자 소득은 감소하며 소비여력 또한 위축되어 임금의 소비효과 또한 상쇄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은 비용을 상품가격에 전가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도 물가인상으로 구매성향이 위축되어 소비가 확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상에서 언급한 딜레마는 해법이 쉽지 않은데 이를 해결하지 않고는 소득주도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