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유 논설위원이 간다] 부모의 효, 자식의 효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한국의 효를 극찬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인 1973년 86세 때였다. “장차 한국 문화가 세계 인류 문명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 사상일 것”이라며 부모를 끝까지 모시는 우리의 경로사상을 부러워했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64세, 전체 가구의 90% 정도가 부모를 모시고 살던 반세기 전 일이었다. 100세 시대로 향하는 지금, 그런 가족 형태는 드물다. 거동을 못 하는 부모, 치매를 앓는 부모를 24시간 수발하다 보면 삶 자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자식들은 어려운 결정을 한다. 노부모를 요양시설에 맡기고 전문적인 돌봄서비스를 받는다. 그래도 불효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전국 3300개 요양원 중 가장 인기가 좋다는 서울 세곡동 서울요양원에서 그 현실을 들여다봤다. (※가족 요청에 따라 실명을 안 씀)
건보공단 직영 시설 입소 바늘구멍
150명 어르신 부모처럼 돌봐 인기
장기요양보험 이용자 60만명 돌파
요양원 3300곳, 공공은 100곳 불과
재가·주야간·돌봄센터 내실화로
토인비 극찬한 '한국의 효' 살려야
“대통령과 악수한 손인데…나흘은 안 씻었지.”
92세 할머니는 기억이 또렷했다. 지난해 6월 2일,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했는데 너무 좋아 그랬단다. 당시 문 대통령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찾아가는 대통령’ 행사 세 번째로 서울요양원을 방문했다. 그때 할머니는 2층 치유정원에서 문 대통령과 화분을 만들었다. “대통령이 치매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어. 나도 책임지겠지, 뭐.” 척추측만증으로 거동을 못 해 4년 전 입소한 할머니는 치매도 치료받는 중이다.
“집보다 여기가 더 편해.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복지사가 다 딸이야. 사람도 못 알아보는 다른 할매들의 마음도 같을 거야.” 할머니는 요양원 어르신 150명 중 정신이 또렷한 편에 든다. 그래서 할머니 얘기부터 들은 것이다.
4층 건물인 서울요양원은 아담하다. 주변이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고, 길 하나 건너면 경기도 성남시인데 서울공항이 지척이다. 2014년 11월 문을 열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08년 7월부터 시행한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의 합리적인 기준과 비용의 적정성, 제도 개선 표준모델 개발을 위해 직영으로 운영한다. 입소 정원은 150명. 그런데 바늘구멍이다. 9월 말 현재 대기자만 1085명이다. 전옥분 사무국장은 “3년 넘게 기다리다 돌아가신 분도 70여 명 된다”며 “더 모시고 싶어도 시설에 한계가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입소에 '대통령 빽도 통하지 않는다'는 서울요양원의 인기 비결은 뭘까.
로비부터 쾌적하고 인상적이다. ‘마음까지 보살피는 요양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카페처럼 아늑하다. 1층에는 가족과 어르신들의 만남 장소인 쉼터와 물리·온열치료실이 있다. 2~4층이 어르신들의 보금자리다. 150명의 평균 연령은 86세, 할머니가 124명이다. 층별로 건강 상태가 다르다. 4층은 거동을 못하고 인지력도 없는 최중증, 3층은 거동이 불편하고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 2층은 경증 치매 어르신의 방이다. 요양원에는 마을이 10개 있다. 방 서너 개씩 16명을 한동네 주민처럼 마을에 소속시켜 친근감을 갖게 했다. 행복마을·다정마을·꽃마을·샘마을·목련마을·살구마을 등 이름이 정겹다.
4층에는 요양원 최고령 103세 할머니가 있다. 귀가 어둡고, 거동도 못 하신다. 송계자 요양보호사는 “인지력은 없지만 인기척은 반기신다”며 “추석 때 사람들이 많이 오자 얼굴이 환해지셨다”고 했다.
어르신 돌봄이 주기능인 요양원은 의사가 있는 요양병원과는 다르다. 장기요양보험 재원으로 운영돼 요양 인정자(1~5등급) 중 중증인 1~2등급부터 입소가 가능하다. 요양사와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며 무료로 수발한다. 간병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장기요양 인정 등급이 없어도 입원하는 요양병원(전국 1500여 개)과 다른 점이다. 서울요양원 박득수 원장과 요양사·복지사에게 현실을 물어봤다.
- 전국 요양시설 중 가장 인기가 좋다.
- 가족도 돌보기 힘든 분들인데 어려움이 많겠다.
- 본인 부담금은 얼마나 되나.
- 왜 민간시설도 서울요양원처럼 못하나.
전국의 장기요양보험 누적 신청자는 92만4000명이다. 이 중 78%인 58만5000명이 인정을 받았고(2017년) 올해는 60만 명을 돌파한다. 2008년 21만 명이던 수급자가 세 배로 불어난 것이다. 가장 큰 과제는 '간병살인'까지 부르는 치매환자다. 전체 노인의 10%인 70만 명이나 된다. '2017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어르신 10명 중 6명은 "요양시설 입소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반면 자녀 10명 중 7명은 "부모가 치매라면 요양원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부모가 생각하는 효와 자식이 생각하는 효가 다른 것이다. 미용실보다 요양원이 더 많은 동네가 있을 정도라지만 서비스 질은 가족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다. 토인비가 예찬했던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 해답은 1층 쉼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낮 12시. 칠순이 가까운 남성이 102세 어머니의 음식 수발을 든다. 한 술 한 술 죽을 떠드리는 모습이 정겹다. 그 남성은 “아들도 알아보지 못하지만, 언제 가실지 몰라 매일 찾아뵌다"고 했다. 요양원 직원들도 그 마음에 감동해 할머니를 아들 마음으로 모신다. 바로 옆에선 노랫소리가 들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 90세 어머니와 함께 노래를 부르던 딸은 “엄마가 이 노래만 기억하신다”며 애달픔을 달랬다. 칠순의 딸은 “여기는 가족적인 분위기라 좋다. 100세 시대에는 효와 요양원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 3300여 개 요양시설에는 16만 명의 어르신이 인생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공공시설은 100여 개에 불과하다. 더 늘리려도 부지 확보가 어렵고 님비도 간단치 않다. 누구나 늙고 병드는데 자신만은 그리되지 않을 거라는 허상이 가득하다. 서울요양원이 보여주는 건 뭔가. 바로 마음으로 어르신을 돌보는 공동체의 정성이다. 우후죽순으로 급증하는 요양시설 운영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재가서비스와 주야간 보호센터를 확대하고, 겉도는 치매 돌봄센터를 내실화하는 게 첫걸음이다. 그리하면 세계 최고속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의 현실을 토인비도 이해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