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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대통령이 사면 검토하겠다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핵심 단체 및 인물의 면면(面面) 4대강 사업·사드배치 반대 시위에도 참여 글 최우석 월간

화이트보스 2018. 10. 12. 14:33


文 대통령이 사면 검토하겠다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핵심 단체 및 인물의 면면(面面)

4대강 사업·사드배치 반대 시위에도 참여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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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제주도를 방문해 강정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불법 시위로 사법처리된 강정마을 주민과 외부단체 인사들에 대해 "(사면 복권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사진=조선DB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제주도를 방문해 강정마을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불법 시위로 사법처리된 강정마을 주민과 외부단체 인사들에 대해 "정부의 구상권 청구는 이미 철회됐다. (사면 복권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야권(野圈)에선 "나라에 수백억의 손해를 끼친 불법 시위자들에 대해 사면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월간조선》이 검찰 수사 자료를 통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단체, 인물의 면면을 살펴본 결과 정부가 보이는 제주 강정기지 건설 반대파에 대한 호의(好意)가 옳은지 의문이다. 자료를 보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하게 반대해 온 내·외부 단체는 5곳(▲강정마을회 ▲제주참여환경연대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단법인 개척자들 ▲생명평화결사)이다. 
  
‘강정마을회’는 서귀포시 강정동 주민을 구성원으로 하는 마을회다. 2007년경부터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반대했다. 검찰은 “강정마을회는 외부 활동가들과 규합, 공사 방해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핵심적 기능을 한 단체”라고 했다. 사실 강정마을회는 2007년 4월 제주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 군이 1993년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이래 14년 만에 기지 유치를 원하는 마을이 나온 것이었다. 강정마을이 유치 희망을 밝힌 후인 2007년 5월 제주도는 해군기지 건설에 관한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제주도민 54.3%, 강정마을 주민 56%가 찬성 의사를 밝히면서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부지로 결정됐다. 당시 강정마을회 윤태정 회장은 “마을 주민들이 지역발전의 계기가 될 해군기지 유치 확정에 상당히 고무돼 있다”며 여론조사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갑자기 마을 내부의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2007년 4월 26일 마을총회에는 강정마을 주민 1900여 명 가운데 87명만 참석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강정마을회는 2007년 8월 11일 임시총회를 다시 열어 윤태정 회장을 전격 해임하고 강동균씨를 신임 마을회장으로 선출했다. 이후 강정마을회는 본격적인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나섰다.
    
제주참여환경연대
  
제주참여환경연대는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반대범도민회’로 출발한 단체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은 1990년 제2차 제주도 종합개발계획을 검토 중이던 노태우 대통령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1차 제주도 개발계획의 미비점을 보완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건의를 받아들여 제정됐다. 당시 법안을 두고 제주도에서는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찬성하는 측은 제주도를 한국의 하와이, 즉 국제적인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반대하는 측은 이 법이 사업시행 절차의 간소화 등을 통해 급속한 개발을 추진, 오히려 제주도를 피폐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의 전신인 ‘제주도개발특별법반대범도민회’는 이름 그대로 제주도개발특별법을 반대하는 단체였다. 특별법안은 날치기로 통과됐다. 이를 반대해 재야단체에 몸담았던 제주도 청년이 분신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2013년 제주도는 연간 관광객 1000만 명 시대를 열었다. 당시 이는 세계적 섬 관광지인 하와이·발리·오키나와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이었다.
  
제주를 찾은 관광객 수는 1962년 집계를 시작한 후 5년 만인 1966년에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어섰다. 1983년 100만 명을 달성했고 특별법안이 통과한 1991년 300만 명, 1996년 400만 명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500만 명 달성은 2005년에 이뤄졌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외부세력 중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은 제주 해군기지 공사 시작 초기부터 반대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핵심 조직이다. 이 단체는 용산 미군기지 반환운동 등을 벌인 반미(反美)단체이기도 하다. 강정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이념교육을 실시하는 등 해군기지 건설 반대 세력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해군은 평통사를 구상권 행사 대상 중 대표 조직으로 지목했다. 평통사는 1994년 문규현 신부와 홍근수 목사 주도로 설립됐다. 2003년 매향리 폭격장 폐쇄 투쟁과 효순·미선 투쟁 등을 함께해 온 운동권 단체들이 ‘조직의 전국화’를 꾀하며 재창립했다. 평통사는 2014년 창립 20주년을 기점으로 한일 군사협력 중단, 한·미·일 삼각 미사일 방어망 및 군사동맹 저지 활동, 국방예산 삭감 등을 위해 주력하고 있다. 전국에 22개의 지역평통사와 해외 조직 등 30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 단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2011년부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불법과 부당함을 폭로하고 공사 중단을 위한 실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에는 사드 배치와 일본군의 한반도 재침략을 막아 내기 위한 50개 도시, 50일 평화행동(30만 장 홍보물 배포·800회 영상 상영)을 폈다고 홍보했다. 평통사는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국제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유엔안보리에 재(再)조사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평통사를 주도해 온 인물 중에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거나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한 친북(親北) 성향의 인사가 적지 않다. 상임대표를 맡았던 문규현씨는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들어갔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상임대표를 지낸 또 다른 인물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5년을 받은 이력이 있다. 이 인물은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북(對北) 사과 요구를 철회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친북 인사인 강정구씨도 이 단체의 상임대표를 맡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처벌을 받은 그는 2002~2005년 몇몇 계간지에 ‘6·25전쟁은 북한 지도부가 시도한 통일전쟁’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생명평화결사
  
'생명평화결사’는 생명평화를 가꾸고 실천하고자 결의한 사람들의 연대다. 홈페이지에 나온 단체 소개에는 ‘생명평화결사’의 시작은 ‘2001년 2월 16일에 시작된 좌우익 희생자와 뭇 생명 해원상생을 위한 범종교계 100일 기도부터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기도는 2001년 5월 26일 지리산 달궁에 5000여 명이 모여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를 올린 것을 계기로 ‘생명평화 민족화해 평화통일 지리산 1000일 기도’로 확대된다. 기도에는 7대 종단(유교·천도교·한국민족종교협의회·원불교·천주교·개신교·불교)이 모였다.
  
검찰 자료에 따르면 생명평화결사는 강정마을에 상주하며 해군기지 공사 방해 행위를 주도·선동·방조한 단체다. 생명평화결사를 이끄는 인물은 김○○ 목사다. 제주도에 상주하며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해온 김 목사는 “제주에 있는 생명평화 등불(회원)들이 군사기지 반대 활동에 관심 있게 참여하고 있어서 등불들을 독려하고, 제주도 현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제주도로) 오게 됐다”고 했다. 앞서 김 목사는 2008년 운하 반대를 위한 4대 강 100일 순례를 진행했다.
  
그는 2014년 3월 11일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김 목사는 3월 3일 한라산에서 출발한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 중이었는데, 11일 부산 사상구를 지나갔다.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순례단이 자신의 지역구를 지난다는 소식을 들은 문 대통령은 사상에 있는 삼락생태공원에서 김 목사 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김 목사 등과 문 대통령은 낙동강 하굿둑을 막으면서 재첩과 철새가 사라진 이야기, 우리 사회 편 가르기에 대한 이야기 등을 주고받았다. 이야기 끝에 문 대통령은 “종교가 각종 편 가르기 행태를 따끔하게 나무라고 심판하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고 주문했고, 김 목사 등 순례단은 “여든, 야든 각자 자기들만 사랑하지 겨레를 사랑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개척자들
 
검찰에 따르면 사단법인 ‘개척자들’은 2011년경부터 강정마을에 상주하며 공사 방해를 주도, 선동했다. ‘개척자들’은 소위 ‘위험·분쟁 지역’에 직접 들어가 평화운동을 하는 단체다. 1993년 당시 서울 용산구 보광동 보광중앙교회 청년부 전도사였던 송○○씨가 몇몇 청년과 함께 시작한 골방 기도모임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의 기도모임’(WCF·World Christian Frontiers)에서 시작됐다.
  
2012년 3월 8일 송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 되길 바라는 염원에서 2011년 3월 이곳에 들어와 주소까지 바꿔서 마을 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구럼비는 많은 사람이 모여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수많은 전설과 무속신앙이 서려 있는 곳을 파괴하는 일은 참으로 야만스러운 행위”라고 했다.
  
그는 사드배치 반대도 외친다. 2017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린 사드배치 반대 집회에 참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미군기지에 빼앗긴 땅을 되찾는 일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독립운동과 다르지 않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투지로 이 땅을 미군기지로부터 지켜내야 합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송씨는 2007년 7월의 아프가니스탄 납치·피살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단기 선교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아무리 위험해도 분쟁 지역으로의 선교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썼다. 주요 내용이다.
  
〈경솔하고 무책임한 단기선교는 더 이상 분쟁 현장에 적합한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분쟁 지역에서의) 선교 현장에 가야 한다. 우리가 개종시킬 사람이 그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에 놓일 것인지, 또 그런 개종자의 인생을 우리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숙고도 없이 사영리를 아랍어나 페르시아어로 음역해 예수를 영접시키고 떠나겠다는 단기선교나 한나절의 평화행진이나 하룻밤의 축제로, 십자군 전쟁 이후 1000년의 원한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너무 무책임하고 주술적인 맹신이다. 하지만 전쟁과 분쟁이 있는 위험한 곳에 더 많은 그리스도인 피스메이커들을 파견하기를 원한다. 원래부터 선교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분쟁 지역이 사람들이 위험 속에서 가장 두려워 떨고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절실하게 바라는 곳이다. 분쟁이 일어나면 자신이 개척한 교회와 양들을 남겨둔 채 자신의 가족만을 데리고 선교지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가 다시 안전해지면 돌아오는 선교사들이 문제다. 분쟁 지역이 위험하기 때문에, 그리고 한국 정부가 반대하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선교를 접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2007년 7월 31일 기독교 인터넷 신문 ‘뉴스앤조이’의 톱기사로 올려졌다. 탈레반은 31일 새벽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다. 8시간 후 심성민씨도 죽였다.
  
당시 이 기고문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분쟁 지역에서 평화와 화해의 발걸음을 계속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이런 얘기는 나중에 했으면 한다’ ‘기독교인들의 자기 착각이다’라는 반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송씨는 “준비되지 않은 단기선교 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준비된 자가 참여하는 선교 활동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고했다”고 말했다. 목사·신자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돼 이 중 배형규 목사와 신자 심성민씨가 살해되고 피랍 43일 만에 석방된 아프가니스탄 납치·피살 사건은 전 국민적 우려와 비판을 샀다.  
  
요주의 인물 3명
  
검찰 자료는 3명을 요주의 인물로 꼽았다. 첫 번째 인물은 송○○ 목사다. 송 목사는 2007년 5월에는 제주 해군기지 철회를 주장하며 22일간 단식했다. 그는 2010년 12월 27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예정지의 임시 현장사무소 가설 공사에 쓰일 레미콘차의 출입을 막고 있다 가부좌 상태로 경찰에 연행됐다. 그는 2012년 3월 13일 톱으로 제주 해군기지 공사 부지 부근 펜스를 절단하기도 했다. 송 목사는 2014년 9월 4일 대법원에서 업무방해죄 등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두 번째는 환경운동가인 황○○씨다. 검찰 자료를 보면 황씨는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2014년 4월 24일 대법원에서 업무방해죄 등으로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았다.
  
황씨는 2012년 3월 28일 진보 언론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이유에 대해 기고했다.
  
〈오늘 강정포구에 앉아 제주 해군기지 공사 현장을 바라보며 과연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남방 해로를 지키고 지역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해군기지라는데 실제로 전쟁이 나면 어찌 될까? 컴퓨터로 전쟁을 하는 21세기라도 병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략요충지를 누가 선점하느냐가 관건이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제주도는 일본과 한국, 중국 동남부, 동지나해 모두를 호령하는 자리에 있다. 실제로 일본 군부는 1920년대부터 제주도를 군사기지화하기 시작해 중일전쟁 때에는 제주도에서 출격한 비행기가 중국 본토를 폭격하고 돌아오기까지 했다. 만약에 미국이 서둘러 원자폭탄을 터트리지 않았다면 루스벨트는 일본 본토 공략을 위해 오키나와 다음으로 제주도를 점령했을 것이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 육군은 전세가 이미 기울어진 상황에서도 엄청난 인력을 투입해 제주도 일대를 요새화했다. 지금도 모슬포에 가면 그 흔적을 볼 수 있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틀어져 동지나해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제주도의 운명은 십중팔구 태평양전쟁 당시의 과달카날처럼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전략요충지인 과달카날섬(Guadalcanal Island)의 비행장을 차지하기 위해 그 좁은 섬에 양측 합해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하여 그토록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였다. 전쟁을 선택할 것인가, 평화를 선택할 것인가? 해군기지 찬성론자들은 안보 외에 다른 모든 가치는 부차적이며 평화는 오직 힘에 의해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과연 그럴까? 이를 방증하기 위해 복잡한 정치군사 이론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 분명한 것은 전쟁을 준비하면 전쟁을 불러오고, 평화를 준비하면 평화가 온다는 사실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황씨는 1984년에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13년 2개월을 안동과 대구, 대전 교도소에서 보냈다.
  
세 번째 인물은 제주군사기지 저지와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범도민대책위원회(범대위)의 공동대표 및 소외 제주환경운동연합 대표를 겸하는 오○○씨다. 오씨는 2012년 3월 12일 사업부지 경계에 설치된 철조망을 절단기로 자르고 사업부지 내에 침입한 후 공사를 방해, 2012년 6월 19일 경범죄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