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11.17 03:00
[누가 봐도 연애소설] 터미널서 사라진 80대 부부
없다. 아무리 둘러봐도 남편이 보이질 않았다. 불과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대합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얌전히 TV를 보고 있었는데, 분명 그 구부정한 어깨를 몇 번씩 확인했는데, 느닷없이 바뀐 계절처럼 갑자기 영감이 사라지고 없었다. 급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그녀 다리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지만, 생각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커다란 바늘 몇 개가 무릎 관절 사이에 꽂혀 있는 것처럼 걸음을 뗄 수 없었다. 터미널 대합실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집 대문을 나선 것은 오전 6시 30분 무렵이었다. 사위는 아직 컴컴했지만, 먼 산에서부터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볏단을 쌓아 놓은 논에선 까치가 날고 있었다. 읍내까지 나가는 버스는 오전에 총 네 번 있었다. 7시, 8시, 9시 30분, 11시.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고 마을회관 앞으로 걸어갔다. 추리닝 바지 위에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남편은 때때로 걸음이 빨라졌다. 그때마다 그녀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남편은 마치 자동차 불빛을 만난 고라니처럼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걸음을 뗄 때마다 남편의 추리닝 밑단이 힘없이 펄럭거렸다. 한때는 억센 종아리 위까지 바지를 걷어붙이고 같은 길을 터벅터벅 걷던 양반이었다. 종아리에 살이 빠지니 어쩐지 신발도 한 치수 더 커 보였다. 올해 여든한 살인 그녀의 남편은 일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었다. 남편은 가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읍내에서 인근 광역시로 나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전 그녀는 남편을 데리고 화장실에 들렀다. 매점에서 사준 바나나 맛 우유를 마신 남편이 아무래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차마 여자 화장실론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그녀가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남편을 소변기 앞에 세우고 추리닝 바지를 내려주었는데도, 오줌을 누지 않겠다고 징징거렸다. 몇몇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서다가 남편의 옆에 서 있는 그녀를 보곤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남편의 점퍼 호주머니에 오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어주었다.
"자, 자, 당신 좋아하는 돈. 이거 줄 테니까 어서!"
그녀는 남편의 허리를 두어 번 툭툭 두들겨주었다. 그제야 남편이 소변을 봤다.
치매가 온 이후부터 남편은 유달리 돈에 집착했다. 장롱 안 손가방에 넣어둔 만원짜리 세 장이 사라져서 며칠 마음이 무거웠는데, 손빨래하려고 내놓은 남편의 양말 안에서 그 돈이 나왔다. 동전은 파스와 알약을 모아둔 약통에서, 천 원짜리 지폐는 장판 갈라진 틈과 쌀통 안에서, 불쑥불쑥 모습을 보였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 음식에만 집착한다던데, 남편은 그게 돈이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짠하게 만들었다. 팔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학교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머슴처럼 일만 한 남편이었다. 논 한 마지기 물려받지 못한 몸으로 결혼해 삼 남매를 낳고 모두 짝을 맺어주기까지, 소처럼 남의 밭을 갈고, 불과 몇 해 전까지도 푼돈을 받고 남의 조상 산소 벌초까지 대신해 주던 양반이었다. 그런 남편이 기억을 잃은 뒤에도 돈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그저 세상이 야속할 뿐이었다. 저 양반과 내가 살아온 세월이 다 뭐였나, 허망하기만 했다.
광역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그녀와 남편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갔다. 남편이 아닌 그녀 때문이었다. 두 달 전부터 기침을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멎질 않았다. 감기인가 싶어 읍내 의원에 나가 주사도 맞고 약도 타 먹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다. 큰 병원에 한번 가보시는 게 좋겠는데. 읍내 의사 말에도 도라지청과 뭇국을 끓여 먹으며 참다가 나선 길이었다.
"예약을 안 하고 오셨어요, 할머니?"
접수 창구에 의료보험증을 내미니 대뜸 그 말부터 돌아왔다. 그녀는 자꾸 어항 쪽으로 다가가려는 남편의 팔을 잡고 있느라 그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예약 환자가 많아서요, 오후 늦게나 진료받으실 수 있을 텐데…."
접수 창구 직원은 그러면서 오늘은 예약만 하고 다음에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다.
내과 앞 기다란 의자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기다렸다. 딸에게 말할 걸 그랬나? 사실 그녀의 둘째 딸은 바로 이곳 광역시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두 딸과 아들은 그녀의 남편을 하루빨리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마까지 병 얻는다고, 엄마까지 쓰러지려고 그래? 그녀가 먼저 병원에 입원이라도 한다면… 그땐 아마 그녀의 남편 또한 요양병원 입원을 피하진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내과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가 조용히 남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러곤 진료도, 예약도 다시 하지 않은 채 다시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기침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미리 사놓은 생수를 한 모금씩 마셨다. 남편은 택시에 타자마자 멀거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뒤통수가 납작한 남편. 그 뒤통수가 서러워서 그녀는 잠깐 고개를 떨궜다.
그런 남편이 터미널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잠깐 읍내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나 살피고 온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계속 바쁘게 고개만 돌리고 있을 순 없어서 절뚝거리며 터미널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화장실도 갔다가 약국 안도 들여다봤다가 다시 원래 앉아 있던 TV 앞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소리라도 질러서 찾아봐야 할까, 경찰한테 부탁해야 할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머리만 점점 어질어질해져 오고 숨이 가빠왔다.
한참을 그렇게 헤매다가 그녀는 우뚝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거기, 편의점 구석 전자레인지 옆에 마치 죄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는 남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옆엔 편의점 유 니폼을 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아니 할아버지 자꾸 여기다 지폐를 넣으시면 어떡해요? 네? 여기 홀랑 다 탄다고요! 할아버지 돈 많아요?"
편의점 알바생은 그러면서 아니, 오천원짜리 지폐가 뭐 고향만두야, 하고 더 소리쳤다.
그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저런 싸가지 없는 자식을 봤나. 그녀는 최대한 허리를 편 채 다가갔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집 대문을 나선 것은 오전 6시 30분 무렵이었다. 사위는 아직 컴컴했지만, 먼 산에서부터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볏단을 쌓아 놓은 논에선 까치가 날고 있었다. 읍내까지 나가는 버스는 오전에 총 네 번 있었다. 7시, 8시, 9시 30분, 11시. 그녀는 남편의 손을 잡고 마을회관 앞으로 걸어갔다. 추리닝 바지 위에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은 남편은 때때로 걸음이 빨라졌다. 그때마다 그녀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 남편은 마치 자동차 불빛을 만난 고라니처럼 우뚝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걸음을 뗄 때마다 남편의 추리닝 밑단이 힘없이 펄럭거렸다. 한때는 억센 종아리 위까지 바지를 걷어붙이고 같은 길을 터벅터벅 걷던 양반이었다. 종아리에 살이 빠지니 어쩐지 신발도 한 치수 더 커 보였다. 올해 여든한 살인 그녀의 남편은 일 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었다. 남편은 가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읍내에서 인근 광역시로 나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전 그녀는 남편을 데리고 화장실에 들렀다. 매점에서 사준 바나나 맛 우유를 마신 남편이 아무래도 불안했기 때문이다. 차마 여자 화장실론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그녀가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남편을 소변기 앞에 세우고 추리닝 바지를 내려주었는데도, 오줌을 누지 않겠다고 징징거렸다. 몇몇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서다가 남편의 옆에 서 있는 그녀를 보곤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남편의 점퍼 호주머니에 오천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어주었다.
"자, 자, 당신 좋아하는 돈. 이거 줄 테니까 어서!"
그녀는 남편의 허리를 두어 번 툭툭 두들겨주었다. 그제야 남편이 소변을 봤다.
치매가 온 이후부터 남편은 유달리 돈에 집착했다. 장롱 안 손가방에 넣어둔 만원짜리 세 장이 사라져서 며칠 마음이 무거웠는데, 손빨래하려고 내놓은 남편의 양말 안에서 그 돈이 나왔다. 동전은 파스와 알약을 모아둔 약통에서, 천 원짜리 지폐는 장판 갈라진 틈과 쌀통 안에서, 불쑥불쑥 모습을 보였다. 남들은 그렇게 먹는 음식에만 집착한다던데, 남편은 그게 돈이었다. 그 사실이 그녀를 짠하게 만들었다. 팔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학교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머슴처럼 일만 한 남편이었다. 논 한 마지기 물려받지 못한 몸으로 결혼해 삼 남매를 낳고 모두 짝을 맺어주기까지, 소처럼 남의 밭을 갈고, 불과 몇 해 전까지도 푼돈을 받고 남의 조상 산소 벌초까지 대신해 주던 양반이었다. 그런 남편이 기억을 잃은 뒤에도 돈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니 그저 세상이 야속할 뿐이었다. 저 양반과 내가 살아온 세월이 다 뭐였나, 허망하기만 했다.
광역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그녀와 남편은 다시 지하철을 타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갔다. 남편이 아닌 그녀 때문이었다. 두 달 전부터 기침을 한번 시작하면 좀처럼 멎질 않았다. 감기인가 싶어 읍내 의원에 나가 주사도 맞고 약도 타 먹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질 않았다. 큰 병원에 한번 가보시는 게 좋겠는데. 읍내 의사 말에도 도라지청과 뭇국을 끓여 먹으며 참다가 나선 길이었다.
"예약을 안 하고 오셨어요, 할머니?"
접수 창구에 의료보험증을 내미니 대뜸 그 말부터 돌아왔다. 그녀는 자꾸 어항 쪽으로 다가가려는 남편의 팔을 잡고 있느라 그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예약 환자가 많아서요, 오후 늦게나 진료받으실 수 있을 텐데…."
접수 창구 직원은 그러면서 오늘은 예약만 하고 다음에 오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다.
내과 앞 기다란 의자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기다렸다. 딸에게 말할 걸 그랬나? 사실 그녀의 둘째 딸은 바로 이곳 광역시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그러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두 딸과 아들은 그녀의 남편을 하루빨리 요양병원에 입원시키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다가 엄마까지 병 얻는다고, 엄마까지 쓰러지려고 그래? 그녀가 먼저 병원에 입원이라도 한다면… 그땐 아마 그녀의 남편 또한 요양병원 입원을 피하진 못할 것이었다.
그녀는 내과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앉아 있다가 조용히 남편 손을 잡고 다시 일어섰다. 그러곤 진료도, 예약도 다시 하지 않은 채 다시 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기침이 나오려고 할 때마다 미리 사놓은 생수를 한 모금씩 마셨다. 남편은 택시에 타자마자 멀거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뒤통수가 납작한 남편. 그 뒤통수가 서러워서 그녀는 잠깐 고개를 떨궜다.
그런 남편이 터미널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잠깐 읍내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나 살피고 온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나, 계속 바쁘게 고개만 돌리고 있을 순 없어서 절뚝거리며 터미널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화장실도 갔다가 약국 안도 들여다봤다가 다시 원래 앉아 있던 TV 앞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남편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소리라도 질러서 찾아봐야 할까, 경찰한테 부탁해야 할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머리만 점점 어질어질해져 오고 숨이 가빠왔다.
한참을 그렇게 헤매다가 그녀는 우뚝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 거기, 편의점 구석 전자레인지 옆에 마치 죄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는 남편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옆엔 편의점 유
"아니 할아버지 자꾸 여기다 지폐를 넣으시면 어떡해요? 네? 여기 홀랑 다 탄다고요! 할아버지 돈 많아요?"
편의점 알바생은 그러면서 아니, 오천원짜리 지폐가 뭐 고향만두야, 하고 더 소리쳤다.
그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그쪽으로 걸어갔다. 저런 싸가지 없는 자식을 봤나. 그녀는 최대한 허리를 편 채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