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100년 ③ 임정 루트를 가다
일본, 윤봉길 의거 뒤 “김구 잡아라”
독립운동 지원한 미국인 피치
김구와 자기 부인을 부부로 위장
상하이서 자싱까지 피난시켜
저장성 임시주석 지낸 주푸청
며느리 친정, 비밀통로 있는 집 등
위험 감수하며 김구 은신처 제공
‘안창호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프랑스 조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예상대로 어제 새벽 2시 30분경 프랑스 조계 당국의 협조를 얻은 일본 영사관은 12대의 차량에 분승한 수십 명의 사복경찰을 파견해 대대적인 한인 검거에 나섰다.’
또 한 사람은 중국인 주푸청(褚輔成·1873~1948)이었다. 그는 고향 자싱에 있던 장남 주펑장(褚鳳章)에게 김구를 보내고 은신처를 제공했다. 주펑장은 우룽교(五龍橋) 남쪽의 실 만드는 슈룬사(秀綸紗) 공장에 김구를 숨겨줬다.
미국인 피치와 중국인 주푸청이 릴레이로 ‘미·중 합동 작전’ 하듯 상하이에서 자싱의 은신처까지 김구를 탈출시킨 셈이다. 지금은 미·중이 무역 전쟁으로 날을 세우고 있지만, 당시에는 미·중 양국 인사들이 김구와 임정의 불씨를 살린 셈이다.
피치의 부친은 장로교 선교사로서 한국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피치는 윤봉길 의거 이후 일본 경찰의 한국인 불법체포와 검문에 항의하는 서한을 프랑스 조계 지역 언론과 경찰에 보냈다. 1937년 일본의 난징(南京) 대학살 때는 난징의 외국인들과 국제위원회를 조직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고발했다. 1940년대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정을 승인하도록 도왔다.
김구는 그 후 천퉁성(陳桐生)의 집으로 옮기고 ‘광둥(廣東) 사람 장씨’ 행세를 했다. 당시 자싱 사람들은 외국어처럼 다른 광둥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왕미나(王咪娜) 해설사는 김구 피난처 앞에서 “이 문은 김구 선생이 호수에 드나들던 비밀통로”라며 작은 문을 열었다. 일본 경찰이 김구 피난처를 급습하자 주푸청은 며느리의 친정인 저장성 하이옌(海鹽)으로 김구를 피신시킨다. 김구는 하이옌에서 반년을 보내다 자싱으로 돌아왔다. 주푸청은 김구를 보호하기 위해 처녀 뱃사공 주아이바오(朱愛寶)와 부부로 위장시켜 일경이 순찰할 때마다 배 위에 덮개를 덮고 지내도록 했다.
“김구 선생의 거처는 임정 가족들에게도 비밀이었다”는 설명대로 생사를 건 도피 생활의 연속이었다. 김구는 주아이바오와 함께 난징에서도 광둥 출신 골동품상 부부로 위장해 피난생활을 계속했다. 1938년 난징이 일본에 함락되자 김구는 후난(湖南)성 창사(長沙)로 가면서 주아이바오를 잠시 자싱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그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난리 통에 벌어진 ‘가짜 부부’의 안타까운 생이별이었다.
항저우 임시의정원 유적지를 찾아갔다. 추이란(崔蘭) 부관장은 “중국인들은 쑤저우(蘇州)에서 태어나 항저우에서 살다 광저우(廣州)에서 먹고 류저우(柳州)에서 죽는 게 소원이라는 말이 있다”며 항저우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다. 쑤저우는 옷감이 풍부해서 태어날 때 좋고, 항저우는 수려한 곳이라 삶을 즐길 만하고, 광저우는 먹을 게 많고, 류저우는 큰 나무가 많아 죽을 때 좋은 관을 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라 잃은 임정 요인들의 항저우 피난살이는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1932년 5월 임시의정원이 항저우로 이동해 오자 김구·이동녕 외에 조소앙·이시영·안공근·안경근 등도 항저우로 모여들었다. 34년 11월 26일 밤에 열린 임시의정원 회의 참석자들의 복장은 피난 중이라 한복·양복과 중국식 의복이 섞여 마치 ‘다국적 행사’ 같았다. 추이란 부관장은 “1932년부터 3년 6개월 동안 항저우 시기에 임정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매우 심했다. 항저우 시기 임시의정원은 송병조(의정원 의장 겸임)·김철·양기탁 등 세 분이 갖은 고초와 난관을 극복하면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답사를 마치면서 항저우 임시의정원을 관리하는 뤼단(呂旦) 관장에게 한국에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사람들은 편안하고 행복했던 기억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항저우 사람들은 중국과 한국이 100년 전에도, 100년 후에도 친밀한 관계로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항저우·자싱=문영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