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전쟁 참상 똑바로 전해야".. 아버지 이은 평화주의 노선
도쿄/이하원 특파원 입력 2019.05.01. 03:08
옥스퍼드大 유학때 역사 관심.. 유엔 '물·위생 자문위' 명예총재 맡아
우익의 퇴위 공격도 이겨내.. 실세 총리 아베와 관계 설정에 주목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30일 도쿄의 고쿄(皇居·일 왕궁)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국회 의장단, 왕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퇴위 의식을 가졌다. 일본에서 국왕의 생전 퇴위는 202년 만이다. 86세의 아키히토는 3년 전 고령(高齡)을 이유로 올해 퇴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키히토는 "오늘로 임무를 마치게 됐다"며 "새로운 레이와(令和) 시대가 평화롭고, 결실을 맺기를 왕비와 함께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했다. 또 "우리 나라와 세계 곳곳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아키히토는 자신의 30년간 재위에 대해 "상징으로서의 나를 받아들이고 지탱해준 국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국민의 깊은 신뢰와 경애를 갖고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회고했다.
아베 총리는 국민을 대표한 인사말에서 아키히토 일왕에 대해 "폐하의 지금까지 행보를 가슴에 새기면서 평화롭고 희망에 넘치고 자랑스러운 미래를 창조해 가기 위해 더욱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아키히토의 퇴위식에 이어 1일 오전에는 장남 나루히토(德仁)가 일본의 126대 국왕으로 즉위한다. 일본은 1일부터 연호도 레이와를 사용한다. 나루히토는 아베(1954년생) 총리처럼 전후(戰後) 세대다. 일본이 고도성장을 하던 1960년에 태어나 가쿠슈인대를 졸업하고, 1983년부터 2년간 영국 옥스퍼드대에 유학했다. 그는 역사·교통·물류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옥스퍼드대 유학 당시에는 템스강의 수운(水運) 시스템을 연구했다. 치수(治水)에 관심이 많아 유엔의 '물과 위생에 관한 사무총장 자문위원회(UNSGAB)'의 명예총재를 맡고 있다.
나루히토의 성향은 평화주의와 호헌(護憲), 두 키워드로 요약된다. 일왕은 헌법에 따라 정치 개입이 금지되며 '상징 천황'으로서만 존재한다. 정치적 입장 표명도 금기시돼 있다. 그러나 각종 국가 행사에서의 발언으로 나루히토의 지향을 엿볼 수는 있다. 그는 201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회견에서 "전쟁의 기억이 흐려지려고 하는 요즘, 겸허히 과거를 돌아보고 전쟁 체험 세대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 비참한 경험이나 일본이 밟아온 역사를 올바르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버지 아키히토처럼 평화주의자의 길을 걷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2014년 기자회견 때는 "지금의 일본은 전후 일본 헌법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평화와 번영을 향유하고 있다. 헌법을 지키는 입장에 서서 필요한 조언을 얻으면서 일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화헌법 개정을 집요하게 추진하는 아베와는 다른 입장인 것이다.
나루히토의 왕위 계승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1993년 하버드대 출신의 외교관 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와 결혼했다. 그러나 왕자 출산에 실패하고, 마사코의 '적응장애'(우울증)가 심해지자 우익을 중심으로 그의 왕위 계승에 시비를 거는 세력이 생겼다. 2013년에는 일부 우익 세력이 '신조 45'라는 잡지를 통해 나루히토 왕세자 퇴위론을 공론화하는 위기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흔들기에도 나루히토는 해외 방문 외교와 소외 계층 위로 등 왕세자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며 왕위 계승과 관련한 잡음을 잠재웠다. 아키히토가 재해 지역 피해자에게 무릎을 꿇고 위문하면서 '무릎 꿇은 절대자'로 각인됐지만, 사실 '무릎 대화'는 나루히토가 먼저 여러 피해 지역을 다니며 시작한 것이다.
나루히토 즉위 초반 주목되는 것은 '현실 권력' 아베 총리와의 관계 설정이다. 오는 11월이면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되는 아베는 최근 '4연임' 도전설이 나올 정도로 막강 권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앞으로 일본의 진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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