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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에서 미군은 '장군의 아들들'이 더 많이 죽었다!

화이트보스 2019. 10. 7. 09:20


한국전에서 미군은 `장군의 아들들`이 더 많이 죽었다!| 아름다운 글모음

세바스티아노(김정광) | 조회 37 |추천 0 | 2015.04.20. 03:52

 

한국전에서 미군은 '장군의 아들들'이 더 많이 죽었다!
평균 戰死傷率의 네 배. 장군 아버지를 둔 아들 142명이 참전, 35명이 죽거나 다쳤다.

趙甲濟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

 

한국전 휴전 때의 유엔군사령관 마크 W. 클라크 대장(1896-19840은 전역 후 쓴 회고록,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에서 자신의 아들 클라크 대위가 한국전에 참전, 9군단장 무어 소장의 연락관이었다고 소개하였다.

 

1951년 미 육군의 야전군 사령관 자격으로 한국전선을 시찰한 클라크 장군은 아들을 만났다. 무어 소장은 "클라크 대위가 소총중대를 맡고 싶어한다"고 귀띔해주었다. 일선 근무를 자원한 것이다.

 

클라크 대위는 2사단의 중대장으로 전보되었다. 무어 군단장은 그 며칠 뒤 헬기 추락 사고로 죽었다. 한국전에서 미군은 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을 자동차 사고(한국군 6사단 운전사가 모는 스리쿼터가 워커 장군의 지프 차를 들이받았다)로 잃은 적이 있다.
  
  클라크 장군은 아들이 세 번째로 부상하여 미국내 병원으로 후송된 이야기를 하면서 "회고록에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휴전 후 클라크 장군은 시카고에 사는 한 여인으로부터 "당신은 어떻게 하여 아들을 한국 전선에 보내지 않았느냐"고 항의하는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전선에서 미군 14만2000명이 전사, 실종, 부상하였다. 장군 아버지를 둔 군인 142명이 한국전에 참전, 35명이 死傷하였다. 그 어떤 범주의 사상률보다 높다. 35명 중엔 밴 플리트 8군 사령관의 조종사 아들(전사)도 포함된다.>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은 연인원으로 약 180만 명, 그 가운데 약 8%가 死傷했다. 장군의 아들들 사상률은 그 약 네 배인 25%였다. 장군 아들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클라크 대위처럼 일선 근무를 자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에서는 흥남철수의 배경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美해병대에는 가장 고전한 전투로 유명하다. 사진은 장진호 전투 당시 얼어죽은 美해병대 장병들 시신. ⓒ6.25전쟁 종전 60주년 기념 블로그.

      ▲ 장진호 전투는 한국에서는 흥남철수의 배경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美해병대에는 가장 고전한 전투로 유명하다. 사진은 장진호 전투 당시

 얼어죽은 美해병대 장병들 시신.

 ⓒ6.25전쟁 종전 60주년 기념 블로그.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

 Oliver Schroer의 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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