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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제일의 절경인 주왕산의 기가 모인 곳

화이트보스 2019. 10. 1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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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의 펜화로 본 한국] 주왕산 대전사(48)


기암절경 앞에 서면 누구나 부처가 됩니다

경북 제일의 절경인 주왕산의 기가 모인 곳…의상대사의 화엄경이 들리는 듯

▲ 주왕산 대전사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고 소문난 산 중에 청송 주왕산(周王山)이 있습니다. 주왕산은 기암(旗巖)이라는 특이한 모양의 산으로 유명합니다. 두툼한 가죽으로 만든 장갑의 손가락 같은 기암에 형형색색의 단풍이 어울리면 중국의 명산에라도 온 듯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그러나 여름 주왕산도 가을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수직 암벽이 장관을 이룬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흘러내리다 폭포가 된 곳이 세 곳이나 됩니다. 특히 비가 온 뒤에는 이름 없는 폭포까지 생겨 골짜기는 물소리로 가득 찹니다.

주왕산은 백악기 화산암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기암괴석과 폭포, 소를 이룬 빼어난 경관으로 경북 제일의 절경지로 손꼽습니다. 바위가 많은 산은 늙은 땅으로, 영기(靈氣)가 강합니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윤회를 많이 한 늙은 영혼의 소유자가 많답니다. 영혼도 늙으면 고향으로 회귀하려는 본능이 커집니다. 영혼의 고향은 기독교의 천당이나 불교에서 말하는 불국토입니다. 그러니 바위가 많은 나라에서는 종교가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티베트를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한국도 바위가 많은 늙은 땅입니다. 그래서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가 한국에 몰려있는 것입니다.

▲ 대전사 돌탑

▲ 대전사 삼층탑

주왕산 같은 명산에는 큰 절이 있게 마련입니다. 대전사(大典寺) 터가 기암의 기가 모인 자리입니다. 대전사 마당 한쪽에 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눌러주는 돌탑이 있습니다. 풍수에서 비보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수행자들은 기도가 잘 되는 명당을 찾게 마련입니다. 최치원, 나옹선사, 도선국사, 보조국사, 무학대사 등 쟁쟁한 인물이 대전사에서 수행을 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대전사에서 승군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대전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버립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5방, 3불전, 3루각에 쌍탑이 있는 큰 절이었답니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물은 보광전과 명부전뿐입니다. 보광전 앞에 오래된 부재를 끼워 넣어 세운 3층 석탑이 있습니다. 기단석의 사천왕상 조각이 정교하며 무척 세련되어 보입니다. 그러나 쌍탑의 부재를 하나로 조립을 하다보니 조각의 크기와 솜씨가 다른 것이 뒤섞여 부자연스럽습니다. 어둑한 새벽에 떠오르는 햇빛이 기암을 비춘 모습이 인상 깊어 펜화에 담아 보았습니다.

▲ 주왕암 앞 촛대바위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합니다. 의상스님은 귀족불교였던 신라에 화엄종을 널리 알립니다. 화엄경은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일반 백성에게 인기가 많았답니다. 그러나 화엄경은 많은 불경 중 가장 수준 높은 경입니다. 의상스님은 화엄경을 한자 210자로 요약한 법성게(法性偈)를 만듭니다. 불성이 무엇인지 설명한 것인데 난해하기 짝이 없습니다. 요즈음 불경을 첨단 현대과학으로 풀이하는 과학자들이 있습니다. 펜화가도 법성게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첨단과학으로 풀어 보았습니다.

법성게 중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를 직역하면 ‘하나의 작은 티끌 속에 모든 세상이 들어있고, 일체의 티끌이 역시 그러하다’가 됩니다. 너무 어렵지요? 예를 들어 풀이해 보겠습니다.

▲ 학소대 계곡

인간은 약 10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이 티끌보다도 작은 세포를 복제하면 인간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작은 세포 안에 인간의 설계도와 제조방법까지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냥 세포증식을 하면 고깃덩어리만 되지요. 그런데 복제된 인간이 태어나면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으로서의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인간이 수행을 하다 깨달으면 ‘불성’ 즉 ‘이 세상의 참 모습’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배움이나 알음알이로 해결될 수 없다고 하였으니 ‘본래 갖고 있던 것’을 스스로 깨친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세포 하나에 인간을 구성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정보가 몽땅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미진중함시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좀 되셨습니까. 3차원의 상식인, 크기에 대한 개념을 버리시기가 어렵지요?

이야기가 옆으로 흘렀네요. 대전사를 보시고 나면 대전사 좌측으로 난 산길로 올라갑시다. 계곡을 따라가는 길은 물소리처럼 시원합니다. 산성을 쌓았던 돌무더기를 지나 언덕을 오르면 깎아지른 암벽 사이가 좁아지는 곳에 주왕암(周王庵) 가학루(駕鶴樓)가 길손을 반깁니다. 주왕암은 이끼 낀 바위틈에 나한전 등 여러 법당이 몰려 있는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대전사와 같은 시기에 지은 암자로 일급 기도처입니다.

▲ 주왕암

주왕암 뒤쪽에 주왕산에 숨어있던 주왕이 폭포에서 세수를 하다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주왕굴이 있습니다. 주왕암을 되돌아 나와 오른편 산길을 택하면 급수대(伋水臺) 밑을 지나서 학소대(鶴巢臺)를 보게 됩니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은 깎아지른 바위 절벽으로 싸인 학소대는 주왕산 계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입니다. 학소대 돌다리를 건너면 선녀탕과 구룡소를 돌아 나온 계곡물이 흰 물보라를 뿌리며 떨어집니다. 제1폭포라 합니다. 1㎞를 더 올라가면 중용추(中龍湫)라 부르던 제2폭포를 만나게 됩니다. 계곡 물이 절구처럼 생긴 바위 웅덩이에 떨어졌다가 넘쳐서 다시 떨어진다고 하여 ‘절구폭포’라고도 합니다. 제3폭포는 2단 폭포로 내용추(內龍湫)라고도 합니다. 등산을 하시지 않을 분이라면 제3폭포에서 되돌아나오면 약 3시간의 답사코스가 됩니다. 대체적으로 길이 평탄하여 노약자도 큰 부담이 없이 답사를 할 수 있으니 어른을 모시고 가기에 좋습니다. 물론 젊은 연인은 손잡고 답사할 수 있는 곳입니다.

 

경북 청송(주왕산) 대전사 ................

 

신라말 의상대사.고려초 보조국사, 누가 창건했을까
창건 당시엔 웅장·번창
임란후 화재 '쇠퇴의 길'
題字 : 서산 권시환
 
대전사 보광전과 기암 절경
대전사 보광전과 기암 절경
주왕산은 불교와의 인연이 깊은 곳이다. 큰 사찰과 작은 암자들이 계곡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많은 전설을 간직한 산답게 종교 이외 다른 이유들로 유명한 암자들이 즐비하다. 주왕산의 불교는 신라 말부터 임진왜란 전까지 가장 번창한 듯하다. 대전사를 비롯해 곳곳의 암자에는 수많은 고승이 수행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번창했던 불교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전사가 소실되고 암자 일부도 없어지면서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대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다. 672년(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주왕사적'에 의하면 신라 말인 892년(진성여왕 6년)에 '낭공대사'가 창건했다는 주장도 있다. 낭공대사가 남긴 비기 '주왕사적'에 의하면 신라 헌덕왕 14년에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이라 칭하고 금성을 침입하였다가 당시 주방산(주왕산)으로 도망쳐 옥정(주왕굴)에 숨어 있던 중 신라 마일성 장군에게 잡혔다. 아들 김범문이 아버지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 창건 동기가 됐다고 전한다.

대전사는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고려태조 왕건 2년에 보조국사가 창건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주왕내기'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 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게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도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도가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도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고 하였다. 대전사 건너편에 위치한 백련암은 주왕의 딸 '백련'의 이름을 따서 암자를 지었다 한다. 당시 큰 종이 있어서 새벽마다 여명의 종소리가 하늘로 메아리쳐 온누리를 진리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창건 당시 매우 웅장한 사찰이던 대전사는 도중에 화재로 소실되고 비석과 부도만 남았다. 조선조 때 어느 스님이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를 날마다 냇물을 길러 사용했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양하는 물을 마련하기위해 거리가 좀 먼 개울까지 가려고 하니 귀찮았다. 스님들이 서로 의논한 결과 가까운 앞뜰에 우물을 파서 그 물을 청수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러던 얼마 후 원인모를 화재가 나서 사찰이 전소돼 버렸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스님들이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라고 기록돼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임란당시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당시 주왕산에서 승병훈련을 시키고 있던 사명대사에게 보낸 가로 42.5㎝, 세로 24.5㎝의 목판 편지가 있었는데 원판은 분실되고 복사판만 전해내려오고 있다. 또 이곳에서는 금동여래입상과 금동이불병좌상이 발견됐다. 금동여래입상은 1968년 4월 1일 절터 옆 밭에서 높이 5.5∼15.2㎝ 되는 모두 7점의 불상이 발굴돼 국립대구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또 조선시대에는 소헌·인순왕후 두 왕후의 시조 묘소를 수호하는 재궁(齋宮)이 있었다.

임진왜란
석존여래삼존불2
석존여래삼존불
때 소실된 대전사는 1672년(현종 13년)에 중창, 1976년 단청을 했으며 1988년에 봉향각, 수선당, 회연당을 신축했다. 또 1995년에 명부전과 산신각을 이전, 신축했다. 임진왜란 전에는 5방, 3불전, 3누각과 쌍탑이 있었지만, 이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02호 '보광전'과 '명부전' 뿐이다. 또 '금강탑'이라는 쌍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파손되어 원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다. 법일 스님이 주지로 와 경내에 아무렇게 쌓여있던 조각들을 모아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

■이여송 친필목판

의승도대장 사명대사 귀하

의로운 승장 사명 대사의 장도에 삼가 보냅니다.

세상의 명예와 지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불도와 선도만을 배우십니까?

지금 나라의 일이 위급하다 하오니 의승병을 모두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기 바랍니다.

명나라 장수 태자소부 이여송 삼가 씀

■주왕암

주왕골 입구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때는 '주방사'라 부르기도 하였다. 주왕사적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말인 892년에 '낭공대사'가 대전사보다 먼저 창건했다고 한다. 1797년 '홍의호' 청송부사가 쓴 상량문에는 '승묵' 스님이 홍 부사에게 중수를 건의하고 부사가 이를 받아들여 각계각층의 협조로 중수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 기록에 의하면 이 암자 주변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주방산성 축조시 만들어진 우물로 보인다. 주왕암에는 나한전, 가학루, 산령각, 요사가 있으며 가학루는 1994년에 완전 해체하고 그대로 지었다. 나한전에는 동자상을 포함해 19나한이 봉안돼 있다. 이 나한상들은 진철대사의 작품인 듯해 문화재적 가치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천시석(天矢石)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대전사 인근 마을에 감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감무는 금오택에서 금자라를 잡아와 주왕암에서 자주 요리를 해 먹었다고 한다. 그날도 평소처럼 금자라로 요리를 해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오리알만한 돌이 지붕을 뚫고 들어와 감무의 밥상에 떨어졌다. 이에 크게 놀란 감무는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얼마 후 죽고 말았다. 그후 사람들은 이 돌을 부처님이 내린 천벌이라고 하여 천시석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시석이라는 돌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전설로 주왕암 가까이에 있었던 금오택에 금자라가 많았다는 사실과 금자라에 대한 살생을 막기 위한 승려들의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전사 쌍탑 복원

훼손으로 시기불상 연대에 해체된 국립공원 주왕산 대전사의 쌍탑이 최근 문화재 조사에서 통일신라말기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밝혀졌다. 대전사 주지 법일 스님은 중창불사를 위해 보광전 앞의 쌍탑을 복원할 계획으로 사찰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탑 부재들을 모아 문화재 전문위원들에게 의뢰한 결과 쌍탑은 2기단 3층석탑으로 밝혀졌다. 이 탑은 9세기의 석탑 양식으로 통일신라 초기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을 유지하면서 풍수사상에 의한 새로운 탑상조형이 나타났던 시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층기단 탑주가 2주, 상기단 탑주는 1주이며 1층 탑신은 비례 미의 비규칙상이 나타나고 옥개의 총 단수는 4단이며 탑의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법일 스님은 "완전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8가구의 면석 조각상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기단갑석 부분 등이 훼손된 상태지만 복원이 가능해 연내 완전복원해 가치를 인정받겠다"고 말했다.
출처 : 영남일보

 

 

 

강력한 기운 풍기는 기막힌 절경

▲ 방호정

방호정은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정경도 좋지만 방호정 마루에 앉아 길안천의 맑은 물을 내려다보는 풍류가 정말 일품입니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산중처사가 되어 학문에만 전념한 조준도의 호방한 기개가 담겨 있습니다.


청송군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서울을 비롯한 외지인에게 “청송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말해주세요” 하면 대다수가 “보호감호소밖에 모르는데요” 합니다. 청송이 외진 곳으로, 교통편이 나쁘고 산이 많아 외부인의 출입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물류비용 때문에 번듯한 공장 하나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청송군은 영양군과 함께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혔습니다.

그러나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이 있듯이 청송은 개발이 안된 덕택에 전국 최고의 웰빙 지역이 되었습니다. 산이 높으니 계곡도 많은데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여울을 따라 우뚝우뚝 솟은 이름 없는 바위 절벽은 하나같이 절경입니다. 아마 서울 같은 대도시 주변에 있었으면 모두 명승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청송은 ‘주5일 근무’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휴양지가 될 것입니다. 또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공장 설립을 자제하고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아서 천혜의 자원을 최대한 보호해야 되겠지요.

산 좋고 물 맑은 곳이니 정자가 없을 수 없지요. 청송읍내 중심을 흐르는 용전천의 망미정(望美亭), 현서면 월정리의 침류정(枕流亭), 진보면 반변천의 풍호정 등 아름다운 정자가 있지만 안덕면의 방호정(方壺亭)은 정말 대단한 정자입니다.

방호정은 안덕면 신성리 진골 뒷산으로부터 뻗어내린 바위 줄기가 길안천으로 숨기 직전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곳에 그림같이 앉아 있습니다. 산맥의 기는 바위를 타고 흐른답니다. 바위가 동물의 뼈처럼 골격이 되고 기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전국의 정자 중에 암반 위에 지은 정자가 가장 많은 것은 기의 흐름을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았던 선비가 많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가 강한 암반 위에 정자를 세우면 피로회복이 빠르고 머리가 맑아진답니다. 펜으로 그린 방호정 그림에서도 강한 기가 나온다는군요. 사실 대상물을 가는 펜으로 세밀하게 그리는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건축과 자연의 특성까지 제대로 표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학문 연구 겸하던 정자

방호정은 조선 광해군 11년(1619) 방호 조준도가 생모의 묘가 바라보이는 곳에 세웠습니다. 정자의 바닥모양은 ㄱ자형이나 절벽 쪽 온돌방 위로 맞배지붕을 내고 풍판을 달아서 지붕 모양은 丁자형입니다. 절벽 쪽에 마루방 2칸과 온돌방 한 칸, 뒤쪽에 부엌과 한 칸짜리 온돌방이 더 있습니다.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숙식을 겸한 공간이지요.

마루에는 절벽 위로 강하게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위에만 창호지를 바르고 아래는 판자로 막은 독특한 창문을 달았습니다. 다소 답답해 보입니다만 학문 연구를 겸하던 곳이라 필요할 때만 열어놓도록 하였을 것입니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고 많은 이들이 쓴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순조 27년(1827)에 4칸짜리 방대강당을 증축하여 강학기능을 넓혔습니다.

방호정은 강 건너에서 바라보는 정경도 좋지만 방호정 마루에 앉아 길안천의 맑은 물을 내려다보는 풍류가 정말 일품입니다. 벼슬길을 마다하고 산중처사가 되어 학문에만 전념한 조준도의 호방한 기개가 담겨 있습니다.

▲ 백석탄

▲ 주왕산 계곡

방호정 앞을 흐르는 길안천을 따라 돌아가면 강 건너편의 깎아지른 절벽이 강물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신성계곡(薪城溪谷)으로 병암(屛岩), 얼음골폭포, 현비암(賢妃岩)과 함께 청송이 자랑하는 절벽입니다. 강을 따라 3㎞쯤 들어가면 강바닥에 느닷없이 흰 기암괴석이 무리를 지어 돌출된 곳이 나옵니다.

백석탄(白石灘)이라는 이름처럼 하얀 돌이 알프스 연봉처럼 솟았는데 그 사이로 맑은 물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광경은 참으로 장관입니다. 전국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특이한 풍경입니다. 백석탄 옆 마을은 아름다운 계곡에 세속을 초월한 사람이 은거하며 사는 마을이라 하여 고와리(高臥里)라는 고운 이름이 붙었습니다.

청송에는 산골마을답게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주왕산(周王山)이 그 위용을 자랑합니다. 수직으로 우뚝우뚝 솟은 봉우리들과 그 사이의 협곡에 가을 단풍이 들면 이국적인 풍광에 반한 전국의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특히 대전사(大典寺) 뒤편의 기암(旗岩)은 독특한 형태로 주왕산의 캐릭터로 쓰입니다. 해발 720m의 기암괴석 봉우리가 연출하는 천혜의 아름다움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옛날에는 석병산, 대둔산, 주방산 등으로 불렀답니다. 연화봉, 시루봉, 향로봉, 촛대봉 등 여러 봉우리 사이로 외주왕계곡, 내주왕계곡, 내원계곡이 있고, 네 곳의 폭포와 부암, 석병암, 신선암, 학소대 등이 장관을 이룹니다.

볼 만한 건축문화재로 진보향교(眞寶鄕校), 청송향교, 찬경루(讚慶樓), 만세루(萬歲樓), 평산신씨종택(平山申氏宗宅), 송소고택(松韶古宅), 후송당(后松堂), 금대정사(金臺精舍) 등이 있어 답사의 내용을 알차게 합니다.

그림ㆍ글ㆍ사진=김영택 펜화가(honginart@hanmail.net)

 

 

[여행] 청송 주산지
물안개에 젖은 몽환의 신새벽 가을이 익어 별천지더라

청송 주왕산 기슭의 주산지(注山池)는 천년 전 숨어들었던 주왕의 전설을 들려줄 듯한 신비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저수지다.

 

특히 물안개가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가을 새벽녘엔 신비스럽다. 비록 사람이 만든 인공 저수지지만, 분위기는 조물주가 이 땅을 창조할 무렵의 연못 같다.

주산지의 주인은 수백 년 묵은 왕버들

주산지는 280여년 전인 1720년(숙종 46) 착공해 이듬해 10월에 완공한 인공 저수지다. 낙동정맥 분수령 가까이 있는 덕에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바닥이 드러난 적은 없다는 주산지.

둑에 서있는 작은 비석엔 ‘정성으로 둑을 쌓아 물을 막아 만인에게 혜택을 베푸니, 그 뜻을 오래 기리기 위해 한 조각 돌을 세운다(壹障貯水 流惠萬人 不忘千秋 惟一片碣)’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저수 면적 1만여평의 결코 크지 않은 주산지의 주인은 누가 뭐라 해도 300년 묵었다는 왕버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30여종에 이르는 일반 버드나무에 비해 키가 크고 잎도 넓어 왕버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이 주산지에서 왕버들은 진짜로 왕 대접을 받는다.

아마 주왕의 전설을 들려줄 듯 지키고 있는 20~30그루의 왕버들이 없었다면 주산지는 주왕산 깊이 있는 호젓한 저수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연못이든, 호수든, 저수지든 물이 가득해야만 제격이다. 주산지도 마찬가지다. 모내기철이나 갈수기에 저수지의 물이 줄어들거나, 겨울에 눈은 내리지 않고 얼음만 얼어있으면 주산지의 매력은 반감된다.

봄엔 봄비가 많이 내린 다음날, 여름엔 장마가 끝난 뒤에 찾으면 좋다. 그리고 9월이 지나면 저수지에 물을 빼지 않기 때문에 넘실대는 물결을 만날 확률이 높다. 가을날 이른 아침엔 하얀 물안개가 속세를 떠난 듯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특히 별바위 주변이 단풍으로 물들 무렵엔 별천지가 따로 없다. 올해 주산지 단풍은 10월25일을 전후해서 절정을 이룰 것이라 한다.

주산지 아랫마을인 부동면 이전리 길가에 세워져 있는 장승과 솟대.

청송 주왕산 기슭의 주산지(注山池)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가 상영된 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촬영지가 어디인지 묻는 질문이 쇄도했다. 이 영화는 2004년 제41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았는데, 주산지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작품상은 주산지 덕분”이라고 했을 정도다. 허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암자는 아쉽게도 환경적인 이유로 곧바로 철거되었다.

국립공원주왕산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주산지를 찾는 사람은 평일에는 1일 500명, 주말엔 무려 2,000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주왕산에 버금 가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허나 주산지는 몇 년 전만 해도 비경을 알아챈 사진작가들만이 소리소문 없이 찾아들던 곳이었다.

요즘도 주산지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형 카메라와 삼각대를 갖추고 있다. 허나 기죽을 필요는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주산지는 신새벽에 카메라만 들고 가면 누구나 사진작가가 될 수 있을 정도다. 어느 곳에 렌즈를 맞추든지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자기 생애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솟대와 장승이 반기는 주산지 아랫마을

주산지의 내력을 알려주는 비석.

주산지를 오가다 보면 붉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과수원풍경을쉽게 만난다. 그리고 과수원과 접한 麗×?금방 따온 사과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어김없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도시 청과물시장에서 구입하는 사과보다 당연히 싱싱하고 싸다.

 

육즙이 달큼한 청송 꿀사과도 빼놓을 수 없지만, 기왕에 주산지를 보러 나선 길이라면 이전리 서쪽에 있는 장승과 솟대도 한번쯤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심심산골 오지마을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산지가 청송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자연이라면,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면서 도로의 이정표 기능을 하였던 장승, 그리고 하늘을 향한 주민들의 소망을 담은 솟대는 산골 주민들의 소박함을 보여주는 민속인 것이다.

이전리 주민들은 매년 정월에 장승과 솟대를 세운 후 고사를 지낸다. 이 장승은 주왕산 입구 삼거리의 안승걸 장인공방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안씨는 각종 장승경연대회에서 수상한 경력의 소유자다.

여행정보

교통 △서울→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안동→35번 국도(영천 방향)→길안→914번 지방도→청송읍→31번 국도(영천 방향)→청운리 삼거리(좌회전)→914번 지방도→주왕산 입구 삼거리(우회전)→부동면→이전리→주산지. 수도권에서 5시간 소요. 부동면사무소에서 부남면으로 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타고 1㎞정도 달리면 오른쪽 길가에 장승과 솟대가 보인다. △동서울→주왕산=매일 5회(08:40 10:20 10:50 14:20 15:00)운행. 청송→주산지(이전리)=매일 10회(07:00~19:25) 운행. 30~40분 소요.

숙식 주산지 진입로와 절골이 갈라지는 삼거리에 있는 주산지민박(054-873-4093)을 이용하면 주산지 아침 안개를 보기가 수월하다. 성인 2~3인이 묵을 수 있는 방 한 칸에 3만원. 주산지에서 승용차로 10~20분 거리의 주왕산 입구에 민박집과 식당이 많다. 메뉴는 산채비빔밥이 가장 무난하다. 1인분 5,000원.

 

 

청송 주왕산일대 트레킹

 

▲ 저 육중한 바위들을 보라. 이 人生 초라하고, 말 없는 저 산이 부럽다. - 주왕산 제1폭포 입구
 
경북 청송(靑松)군. 푸른 소나무가 울창한 이 고장에서는 주왕산국립공원과 주산지, 달기약수를 만날 수 있다.
산 속으로 들어가면 주왕의 전설이, 물을 찾아나서면 새벽 안개나 백옥바위 같은 신비스런 자태가 눈을 홀린다. 120년을 넘은 옛 집에서 하룻밤 묵으면 어느새 ‘어험’하는 양반기침이 터져 나올 것 같다.
 
 

● 기암과 폭포 '주왕산 절경'

청송에는 주왕산국립공원이 있다. 1976년 3월 우리나라의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대한민국 대표여행지’ 또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국내여행지’ 100군데 중에서 베스트 10 안에 들어갈 것이 분명한 명소이다.

등산이 목적이 아닌 일반 여행객들은 상의매표소에서 제1폭포를 거쳐 제3폭포까지 트레킹을 즐기고 되돌아 나오도록 한다. 왕복 7㎞에 3시간이 소요된다. 제2폭포까지 감상한다면 그 거리는 7.4㎞로, 시간은 3시간 30분으로 늘어난다. 수도권에서는 이른 아침에 떠났다 하더라도 주왕산 입구에는 얼추 점심 무렵에나 도착하게 된다.

▲ 주왕산 기암(旗岩)
매표소를 통과하자마자 대전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고개를 들면 절집 지붕 위에 우람한 자태로 기암이 솟아 있다. 주왕산의 수문장 역할을 한다는 바위, 주왕이 깃발을 세웠다던 바위이다.

여기서 제1폭포까지 1.8㎞ 거리. 아들바위, 촛대봉, 망월대, 급수대, 학소대, 시루봉 같은 기암들을 중간에서 만난다. 협곡 사이에 나무로 만든 계단을 밟으면 물소리가 들려온다. 제1폭포에 닿은 것이다. 낙차는 크지 않으나 주변을 에워싼 검고 거대한 바위들이 공명 장치 구실을 하고 있어 물소리가 제법 크다. 나무 계단이 끝나갈 즈음에는 반드시 뒤를 돌아봐야 한다. 거인같은, 웅장한 바위들의 성채가 여행자의 상상력을 압도한다.

제3폭포에 닿기 200m 전.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제2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토끼 몇 마리 지나갈 정도로 좁은 오솔길 끝자락에서 물소리를 내는 제2폭포는 표주박을 반으로 쪼개놓은 듯한, 복숭아처럼 미끈하게 생긴 골 속으로 줄기차게 흐른다.

드디어 발길이 머무는 제3폭포. 매표소에서 여기까지 3.5㎞다. 2단으로 청정수가 떨어진다. 안전한 감상을 위해 윗단과 아랫단 물가에는 난간을 두른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수영금지 표지판과 붉은색 튜브 하나가 물가에 놓여있지만 않았다면 자기도 모르는 새,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물가에 발이라도 담갔을지 모른다.

 

▲ 물안개 핀 주산지(注山池)

 

 

● 영화 촬영 소문난 주산지

일교차가 큰 청송 땅에서 물안개가 드리워진 주산지의 신비로운 풍광을 감상해 보자

조선 숙종 대에 이공이라는 인물이 인공으로 만든 이 저수지는 왕버드나무 30여 그루가 물 속에서 자라는 기이한 곳이라 사진작가들에게 입소문으로만 알려졌던 곳. 그러다가 김기덕 감독이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를 찍었다고 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여행객들의 발길이 잦다. 밀려드는 차량 때문에 지난 6월 초 연휴에는 동트기 전부터 주차장이 북적거리기도 했다.

주산지에서 운좋게 새벽 안개를 만났다면, 달기약수탕에서 철분이 함유된 약수로 스스로에게 상을 내리자. 물론 약수로 만든 닭백숙과 닭죽도 반드시 먹어봐야 청송 여행을 제대로 한 셈이다.

● 아흔아홉칸짜리 옛 집에서의 하룻밤

모닥불에 감자를 구워 먹고, 장작불로 달궈진 온돌방에 누워 허리를 지지고, 다음날이면 장닭의 울음소리에 단잠이 깨는 집. 아흔아홉칸짜리 송소고택(파천면 덕천리·경북 민속자료 제63호)에서는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애초 송소고택은 조선 영조 때 만석꾼이었던 심처대의 7대손 송소 심호택 선생이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동으로 들어와서 1880년에 지은 집이다. 2003년 7월 박경진(47)씨가 심씨 집안 후손과 직장 동료인 인연으로 가옥 전체를 임대, 고택체험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안채, 사랑채, 별채 등의 건물과 디딜방앗간, 곳간, 헛간, 우물, 장독대 등이 1500평 대지 안에 들어서 있다. 손님이 잠을 자는 방은 11개이며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다. 안방에만 보일러가 설치돼 있고 나머지 방들은 장작을 때는 온돌방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들을 위해 ‘민속놀이 5종경기’라는 것을 후원에서 즐기게끔 했다. 제기차기, 새총쏘기, 투호, 칠교, 굴렁쇠(또는 고무신 과녁에 넣기) 등이 대표 종목.

불편해서 더 인간적인 '고택 체험'

TV도 없고 컴퓨터, 에어컨도 없는 고택체험에는 약간의 불편이 뒤따른다. 개별취사를 할 수 없고 화장실이나 세면실도 공용이라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때로는 창호지를 건너온 옆 방 손님의 코골이도 감상해야 한다. 그러나 하루쯤 양반 집안의 귀한 손님이라도 된 듯한 기분을 체험할 수 있다면 까짓 불편이야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송소고택에서 주왕산국립공원은 차로 20분 거리, 주산지와 절골계곡은 30분 거리, 달기약수탕은 5분 거리이며 대중교통 이용 고객들은 승합차가 청송시외버스터미널로 마중나간다. 2인 기준 하루 숙박료는 5만~7만원선. 진보면 방면에서 내려갈 경우 청송읍내로 들어가기 직전 파천초등학교 방음벽을 따라 우회전, 다리를 건넌 뒤 덕천마을, 송소고택 안내판을 따라가면 찾을 수 있다. 예약 문의 054-873-0234, 홈페이지 www.songso.co.kr

 

 

<여행수첩>

● 가는 길(서울 기준)

①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34번 국도→안동시내→청송군 진보면→31번 국도→청송터널→청운3거리→914번 지방도→주왕산국립공원 ②중앙고속도로 남안동나들목→안동시 일직면→의성 고운사 입구→79번 지방도→점곡면→안동시 길안면→914번 지방도→송소고택 입구→주왕산국립공원

● 먹을 곳(지역번호 054): 약수닭백숙, 산채정식, 도토리묵, 파전 등이 청송의 향토음식이다. 달기약수탕 주변에 부산식당(닭백숙, 873-2078), 예천식당(닭백숙, 873-2169), 신촌약수탕 주변에 신촌식당(닭날개구이, 872-2050), 가든세계평화(닭불고기, 874-0306) 등. 대전사 입구에 수달래식당(산채정식, 873-3052), 청송읍내에 고향식당(수타자장면, 873-3066) 등.

● 묵을 곳(지역번호 054): 청송읍내에 주왕산온천관광호텔(874-7000), 파라다이스모텔(873-5563), 주왕산 입구에 꿈의 궁전모텔(874-1611), 주왕산가든여관(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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