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재발견/민족사의 재발견

사명대사가 일본 사찰에 남겨준 글씨가 400년만에 돌아왔다

화이트보스 2019. 10. 15. 17:56



사명대사가 일본 사찰에 남겨준 글씨가 400년만에 돌아왔다

등록 :2019-10-14 12:31수정 :2019-10-14 20:58


사명대사가 일본 사찰에 남겨준 글씨가 400년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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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교토 고쇼지 소장 글씨 공개
국립중앙박물관서 15일부터 한달간 전시
사명대사가 ‘벽란도’를 차운해 쓴 글씨.
사명대사가 ‘벽란도’를 차운해 쓴 글씨.
16세기말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켰고, 정유재란 뒤에는 강화 및 포로송환 협상 대표로 일본에 건너가 활약했던 사명대사 유정(1544~1610)이 교토의 절 고쇼지(興聖寺)에 남긴 친필 글씨 5점이 국내 처음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사명대사가 정유재란 뒤인 1604~05년 일본 수도 교토에 강화협상 대표로 머물 당시 고쇼지에 남긴 유묵(遺墨:생전에 쓰거나 그린 글씨나 그림)을 절쪽의 협조로 빌려와 15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상설전시실 중근세관 조선1실에서 전시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전후 조선과 일본 사이에 평화의 기틀을 놓은 대사의 뜻을 기려 박물관과 불교계가 합심해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쇼지가 소장한 사명대사 글씨 5점과, 고쇼지를 창건한 승려 엔니료젠(1559∼1619)이 쓴 글씨 1점, 동국대박물관이 소장한 19세기께의 사명대사 초상화까지 자료 7점을 선보이게 된다. 유묵 중에는 고려시대 문신 유숙이 지은 시 '벽란도'(碧瀾渡)를 차운해 완성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이 글씨 작품에서 유정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지낸 시기가 10년이 됐으니 일본에서 소임을 마무리하고 선승(禪僧)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신라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의 싯구 일부인 '나팔 소리 들리고 아침저녁으로 물결 일렁이는데/ 청산의 그림자 속을 지나간 이 예나 지금 몇이나 될까'(畵角聲中朝暮浪/靑山影裏古今人) 란 문구를 쓴 유묵도 있고, 고쇼지에 소장된 중국 남송의 승려 '대혜 종고' 글씨를 보고 감상을 적은 글, 고쇼지를 창건한 엔니 료젠에게 '허응'(虛應)이라는 도호(道號)를 지어 주고 쓴 글씨와 료젠에게 보낸 편지들도 나왔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려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을뿐 아니라 전후 교토에 외교사절로 파견돼 일본 막부의 실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강화를 맺으면서 조선인 포로 3천여 명을 데리고 돌아오는 등 전란을 마무리하는데도 큰 공적을 남겼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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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13096.html?_fr=dable#csidx462b3ee631322a292ceb5b330ca11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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