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영균
91세 배우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이번주 시작
‘남기고 싶은 이야기’ 연재 신영균씨
평생 술·담배·도박 멀리하고 살아
연예인 남편 결사반대했던 아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겠다 설득
은막서 잘 나갈 때 가족 생각뿐
전성기 땐 한 해 집 열채 값 벌어
차곡차곡 모아 사업 밑천 만들어
성공 비결?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
7억원에 산 명보극장 500억 가치
“91년 영화 같은 삶 후회는 없다, 남은 것 다 베풀고 갈 것”

신영균씨가 지난 6일 서울 명보아트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흔하나인 신씨는 카메라 앞에선 여전한 현역 배우였다. 19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카리스마가 남아 있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아름다운 마무리가 ‘주고 가는 삶’이라고 보시나요.
- “크진 않지만 내 노후생활을 위해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요. 그걸 베풀고 싶은 거죠. 자식들은 다 먹을 게 충분하고….”
신씨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술·담배는 물론 여자와 도박도 멀리해 왔다. “제가 조금 재미없게 살았죠. 그래도 원칙 하나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합니다.”
구순의 신씨는 지금도 규칙적으로 산다. 오전 10시 서울 명동 호텔28 사무실에 출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호텔28은 영화 촬영장 분위기가 물씬한 부티크 호텔로, ‘28’은 이곳 명예회장인 신씨가 태어난 해(1928년)를 가리킨다. 그의 삶을 돌아보는 첫 인터뷰도 이곳에서 진행됐다. 1m72㎝에 68㎏, 회색 재킷 정장에 중절모를 쓴 신씨의 첫인상은 ‘28년생’보다 ‘28청춘’에 가까웠다.
- 너무 젊어 보입니다. 건강 비법이 있나요.
- “한창 촬영할 때는 피곤하니까 초콜릿·사탕을 많이 먹었어요. 40대 중반쯤 되니 당뇨가 왔어요. 그래서 단 음식은 주의하고 하루 5000보 이상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매일 오후 헬스장에 가서 한 시간 이상 가벼운 근육운동과 러닝머신을 해요.”
- 당뇨 말고는 달리 불편한 곳은 없나요.
- “배우 시절 너무 소리를 질러서인지 기관지가 좀 안 좋은 것 빼고는 다 괜찮아요. 나이 먹으니 체중이 자꾸 줄어서 68~70㎏ 왔다 갔다 하는데 한창 시절엔 85㎏까지 나갔어요.”
신씨가 2010년 사회에 내놓은 명보극장은 그의 보물 1호였다. 1977년 8월 당시 7억5000만원에 인수했던 극장의 자산가치가 40년 새 60배 넘게 뛰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신씨는 ’나중에 내 관 속에 성경책 하나만 함께 묻어달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다. 김경희 기자
- 비싸게 받고 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 “누가 500억원 줄 테니 팔라고 하긴 했었는데 내가 거절했죠. 지금 이렇게 좋은 일에 쓰면서 오래 보존할 수 있으니 훨씬 좋지 않나요.”
“다시 태어나도 배우의 길 가겠다”
신씨의 기증 재산을 토대로 2011년 신영균영화예술재단이 출범했다. 재단은 건물 임대료와 기부금 등 각종 수익금으로 9년째 영화인 자녀 장학금 지급, 단편영화 제작 지원 등을 하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제9회 아름다운 예술인상’ 시상식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연극·영화계 인사들의 공로나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상인데, 이 분야의 상금(5개 부문 총 1억원)으로는 최고 액수다.
- 마치 자식 같은 극장을 내놓으셨는데.
- “60~70년대에는 내 영화를 맘껏 틀 극장이 너무나 갖고 싶었죠. 하지만 이제 욕심이 없어요. 그저 마지막으로 내가 가지고 갈 거는 40~50년 손때 묻은 이 성경책 하나예요. 혜진아(딸을 보며), 이걸 나랑 같이 묻어 다오.”
신씨는 가죽이 다 해어진 성경책 한 권을 만지며 말했다. 딸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소리 내 읽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이에요.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를 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오직 하나님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런 말씀 때문에 오늘날 신영균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허허.”
한국 영화 전성기로 꼽히는 60년대는 배우 신영균에게도 황금기를 안겼다. 60년 영화 ‘과부’로 데뷔하면서 그간 연극으로 다져온 연기 실력을 단박에 인정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벼락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상록수’ ‘연산군’ ‘빨간마후라’ ‘미워도 다시 한번’ 등 19년 동안 300여 편에 출연했다.
- 또 기회가 온다면 맡고 싶은 역할은.
- “글쎄요…. 머슴, 왕, 군인, 사장 뭐 안 해본 캐릭터가 거의 없어요. 주로 상남자 스타일이었죠. 심지어 예수, 석가모니도 했다니까요.”
- 다시 태어난다면 왕, 머슴 중 뭘 고르실까요.
- “신영균을 선택하겠어요. 배우 하며 이런 인생, 저런 인생 다 살아봤으니까요. 허허허, 정말 후회 없이, 유감 없이 살았습니다.”
“윤정희와 마지막 영화 … 알츠하이머 안타까워”
![신씨의 전성기와 함께한 영화들. 사진은 ‘연산군’. 신씨는 19년간 300여 편에 출연했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2/c8239440-c6ec-4538-a689-87614e5167a9.jpg)
신씨의 전성기와 함께한 영화들. 사진은 ‘연산군’. 신씨는 19년간 300여 편에 출연했다.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