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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 5대 쟁점, 대법관들은 이렇게 판단했다

화이트보스 2019. 11. 23. 19:06



백년전쟁 5대 쟁점, 대법관들은 이렇게 판단했다

             

입력 2019.11.23 14:26 | 수정 2019.11.23 14:48

심사 방법부터 결과, 논쟁의 의미까지 첨예하게 양분된 대법원
"사료 기초한 의문 제기"vs."미검증 자료·오역으로 주관적 왜곡"
"‘주류적’ 해석에 다른 가능성"vs."우리 사회, 무조건 옹호 안 해"
"진실과 다소 달라도 공익적"vs."악의적으로 만든 경솔한 공격"
"해석의 자유 열어두자는 것"vs."국민 갈등·분열 부를 해석한 것"

지난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근혜 정부 때 시청자 제작 전문 TV채널 시민방송이 방영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의 제재가 부적법했다고 판결했다.

표면적인 결과는 '백년전쟁'의 방송 내용이 방송심의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것이지만, 판결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착석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착석하고 있다./연합뉴스
합의에 관여한 대법관 12명은 방통위 제재를 두고 "부적법했다(김재형·박정화·민유숙·김선수·노정희·김상환, 이하 다수의견)"와 "적법했다(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이하 반대의견)", 6 대 6 반으로 나뉘어 논쟁했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했다.

대법관들은 '백년전쟁'이 방통위의 방송심의 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였지만, 방송 내용의 심의규정 준수 여부에 대해서는 팽팽하게 의견이 갈렸다.

대법원은 우선 방송심의 요건인 '객관성', '공정성', '균형성'의 의미부터 정리했다. '객관성'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증명 가능한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여 있는 그대로 가능한 한 정확하게 사실을 다루는 것. '공정성'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전달함에 있어 편향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 ‘균형성’이란 각각의 입장에 대하여 시간과 비중을 균등하게 할애해야 한다는 양적 균형이 아닌 실질적으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공평하게 다루는 것.

그렇다면 다수의견과 반대의견은 핵심 쟁점인 '백년전쟁'의 방송 내용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균형감을 갖추고, 고인이 된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아닌지 여부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던 것일까.

①객관성
다수의견은 우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상반된 역사적·사회적 평가가 존재하고 이들의 친일 여부나 업적과 관련된 논쟁은 지금도 정치적 견해 차이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사료 선택과 평가에 주관적 관점의 개입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더라도 사실관계는 신빙성 있는 자료에 근거하고,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방송의 기초가 되는 자료 내용의 진위에 대하여는 사전에 충분한 조사 활동을 거치는 게 원칙"이라면서 '백년전쟁'은 "제작자가 기획에서 방송에 이르기까지 사실 확인을 위하여 상당한 노력을 투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사료에 기초하고 있다"고 봤다.

반면 반대의견은 "역사적 사실들은 이를 선택해 기록으로 남긴 사람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기 마련이므로 어떠한 내용이 서적이나 언론보도 등 자료에 기재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숭배해 곧바로 사실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백년전쟁'은 제작자가 선별한 자료만을 근거로 자료의 전체 맥락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일부 표현만을 발췌·인용해 이를 단정적으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방송했다"고 했다. 또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이 조사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자료들 자체가 객관적이라거나 동시대에 사료로서 검증받은 것이라고 볼 수 없고, 근거 자료 번역은 오역을 가장해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했다.

방송의 구성 등이 시청자에게 남길 수 있는 인상에 대한 평가도 엇갈렸다. 다수의견은 "방송의 내용과 구성, 인터뷰 대상자의 지위나 경력 등이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은 기존에 세워진 역사적 사실과 그 전제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한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추측이나 과장, 단정적 표현 및 편집기술을 통해 사실관계와 평가를 자신의 관점으로 왜곡시켜 역사적 인물을 조롱하거나 희화화했다"라고도 지적했다.

②공정성·균형성
다수의견은 '백년전쟁'이 공정성을 갖췄는지에 대해 "역사에 관한 사실관계나 그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역사관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다른 관점을 가진 의견을 모두 반영하면 자칫 역사적 관점에 대한 단순 나열에 그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알려져 사실상 ‘주류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다양한 여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 것은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은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정책적 과오에 대해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주류적 시각이라고 볼 수 없고,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저속한 표현으로 나열했을 뿐인 ‘백년전쟁’을 두고 제대로 된 역사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다수의견은 '백년전쟁'이 두 전직 대통령을 해석하는 다양한 입장을 공평하게 다뤘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에게 접근 가능한 방송 기회가 보장되는 것으로 충분하다"면서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에의 참여 등을 통해 여러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할 기회가 열려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백년전쟁'이 방통위 제재 대상이 된 것은 "특정한 관점을 취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관점의 다양성이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특정 인물에 대한 날선 비판과 조롱만이 있을 분 공정성·균형성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이 방송사업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적 책임도 다하지 못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이 무엇인지 확정할 수 있는 역할을 특정 방송의 제작자 나아가 우리 세대만이 독점할 수 없다"며 "이는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 영역이므로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송하려면 자신의 오류가능성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성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③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 위반
다수의견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악질 친일파, A급 민족반역자'로 지칭하거나,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을 뱀 사진과 나란히 편집한 부분에 대해 "저속하거나 모욕적인 표현에 해당할 여지는 있지만 사실 적시가 필요한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또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에서 진실과 약간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서도 "방송 목적이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로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신문기사, 전문가 인터뷰 등을 기초로 해 진실과 다소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이를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반대의견은 "모욕과 조롱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저속한 표현으로 기본권을 침해해 방송심의 제재 대상이 맞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부분만을 발췌해 마치 그 부분만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방영해 방송내용이 공익과는 무관하게 주로 이승만, 박정희 개인의 인격을 훼손하려는 악의적인 목적이나 동기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이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으로서 현저히 상당성을 잃었다"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연합뉴스
④"완화된 심사 기준 적용해야"vs."방송법 취지 외면한 자의적 해석"
방송심의 요건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다수의견이 2013년 소송제기 이후 시민방송이 주장해 온 내용 상당수를 끌어안은 것은 심사 기준 완화 덕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수의견은 "방송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의 구체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해 심의규정 준수 여부를 심사하면, 방송의 다양성을 보장하고자 하는 취지 및 공정한 여론의 장을 형성하고자 하는 방송의 역할을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백년전쟁' 같은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은 방송내용의 진실성과 신뢰도에 대한 기대의 정도나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방송사업자가 직접 제작한 방송프로그램과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심사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 이유로 "시청자 제작 방송프로그램은 소수의 이해와 관점을 반영해 다양한 사회적 의견을 형성하는 방송의 공적 역할을 위하여 도입된 것으로, 시청자가 제작한다는 점에서 기술이나 자본, 접근 가능한 정보의 양에 한계가 있고 그 결과 전문성이나 대중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은 차별화된 심사기준 적용에 대한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은 채, 접근성이 낮은 채널에서 방영되는 시청자 참여 방송이 신문기사나 외국 국가기관이 작성한 자료를 근거로 제시하는 역사 다큐멘터리라면 방송법에 위반되더라도 제재하지 말고 너그럽게 용인하라는 것 밖에 없다"며 "이는 방송법의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백년전쟁'은 개인인 시청자가 단순하게 제작한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제작장비와 체계를 갖춘 제작진이 유명 배우의 내레이션, 여러 교수 인터뷰, 각종 컴퓨터그래픽을 동원한 상당한 수준의 편집을 거쳐 제작한 시리즈 기획물"이라며 "대중적으로 신뢰성 있는 유명인들이 출연해 신문기사나 외국 국가기관이 작성한 자료 등을 보여주면서 주장을 펼쳐나가는 역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국민들은 어떤 측면에서는 단편적인 보도 프로그램보다 더욱 진실한 것이라고 믿게 된다"고 강조했다. '백년전쟁'은 지난 1991년 설립돼 29년째 친일문제를 연구해 온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해 200만명이 넘게 봤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은 '백년전쟁'의 방송 내용을 시청자 개개인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로 수준을 낮춰 봄으로써 면죄부를 부여했고, 완화된 심사기준에 따르면 심의규정의 의무를 준수했다는 것은 순환논법에 다름아니다"고 했다.

⑤"방송 제재 범위 의견 나눈 것"vs."역사 해석으로 갈등·분열 촉발"
대법관들은 대법원을 반으로 가른 논쟁의 의미에 대해서도 상반된 해석을 내놨다. 다수의견 측은 "백년전쟁이 제기한 역사적 쟁점에 관해 어떤 관점과 평가가 더 올바르고 타당하냐가 아닌 '국민의 역사 해석과 표현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 한계와 정도'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나눈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반대의견 측은 "사법부가 역사를 해석할 수는 없다"면서 "역사적 인물에 대한 모욕과 조롱이 우리 사회가 감수해야 하는 범위 내에 있다는 견해는 국민들 사이에 새로운 갈등과 분열을 촉발할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23/20191123007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