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2/09/00579f81-448b-43f7-bc92-a10ceae2a569.jpg)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중앙포토]
“한국의 민주ㆍ진보파가 이해하는 직접민주주의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뿐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 체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9일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다. 위기의 본질은 한국진보의 도덕적, 정신적 파탄”이라며 진보 세력을 맹비난했다. 이날 오후 1시 30분부터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학술회의-김대중과 한국민주주의’ 기조 강연을 통해서다. 그는 “(집권 세력이) 민주화 이전으로 회귀해 역사와 대결하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며 “적폐 청산 열풍은 민주화 이전의 민주주의관으로 회귀했음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민주주의 위기의 상징적 장면으로 10월 ‘조국 사태’ 당시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있었던 조국 찬반 집회를 꼽았다. 그는 두 집회를 종교전쟁에 빗대면서 “두 집회의 군중들 사이의 진리는 결코 같다고 할 수 없다. 이런 격렬한 정치 갈등의 조건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공정한 사법적 결정이 가능할 수 있을지 실로 의문”이라고 했다. 법원 판결이 내려져도 어느 한쪽이 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갈등이 심화했다는 의미다.
“민주주의 위기의 시작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그런 관점에서 최 교수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게 ‘DJP 연합’이다. 그는 “DJP 연합은 단순한 정치연합의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정치연합의 상대가 군부독재의 원조(김종필 전 국무총리)”라며 “DJ는 과거 갈등을 되풀이하는 게 더 큰 갈등을 불러들이는 것 말고 얻을 게 없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봤다”고 했다. 또 “햇볕정책 추진, 금융위기ㆍ노동문제ㆍ한일관계 등 각종 현안을 풀어나가는 데 연합으로 인한 넓은 정치적 기반의 역할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 했다. YS의 3당 합당을 두고도 “민주화 운동론을 민주적 통치론으로 대체했다”며 높게 평가했다.
“위기의 시작은 이명박(MB) 정부 때부터”라는 게 최장집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MB정부가 앞선 진보적 두 정부(김대중ㆍ노무현 정부)의 기본 정책들을 전면적으로 뒤엎는 정책을 폈을 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검찰수사가 패자(敗者)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고 봤다. 그러자 “진보파들은 제도권 밖 시민사회를 조직ㆍ동원하는데 사활을 걸었고, 문성근의 100만 민란운동 등 ‘좌파 포퓰리즘 운동’이 분출됐다. 이러한 흐름이 문재인 정부를 만드는 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다원성보다 선악 구도 집중하는 운동론적 민주주의관”
그는 이와 함께 "자유주의적ㆍ헌법주의적 전통이 약한 대신 ‘인민민주주의’적 민주주의관이 강한 한국 민주화의 특성"에도 함께 주목했다. 이같은 맥락이 더해지면 현재 진보세력 내에서 언급되는 ‘직접 민주주의’가 전체주의와 유사해질 수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다원적 통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가 누락되고 직접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해하고, 모든 인민을 다수 인민의 ‘총의’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틀은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체제"라고 경고했다.
사례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대담집 ‘진보 집권플랜’에 드러난 정치관을 언급했다. 최 교수는 "진보 대 보수, 개혁 대 수구 등 확실한 구분과 치열한 투쟁, 권력 쟁취를 지향하는 경향이 독일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의 정치이론과 깊숙이 접맥된다"고 봤다. 칼 슈미트(1888~1985)는 전체주의적 국가 ㆍ 정치관을 주장해 나치에 중요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거로 악명이 높은 학자다.
또 최 교수는 청와대가 앞장선 2018년 헌법개정 시도도 비판했다. "대통령이 한국사회를 민주ㆍ개혁파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개혁의 조타수로 이해하는데, 이는 운동론적 민주주의관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