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판교 히어로
“임상 100% 성공을 얘기한다면, 그건 100% 거짓말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 셀트리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2/a379451d-1e45-40ee-9466-e8151583e247.jpg)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 셀트리온]
"투자자에 무조건 된다고 하면 불신 불러"
그는 이어 “진정한 과학자이고, 진짜 바이오산업 종사자라면, ‘임상 3상에서 성공한다’고 말하기보단 ‘임상 결과가 나와봐야 한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투자자와 얘기할 때도 ‘업계 평균 성공률은 어느 정도고 우리가 가진 신약후보 물질은 이보다 얼마나 높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투자자에게 무조건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연구비를 조달하다 보면 결국 투자자의 불신은 깊어지고, 이제 태동 중인 국내 바이오산업은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셀트리온 실적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바이오·의료 분야 투자 9월 들어 위축
서 회장은 이와 관련 "임상이란 결국 많은 노하우와 경험이 필수"라면서 "한 예로 임상 디자인 역시 미국 식품의약처(FDA) 같은 허가 기관과의 충분한 사전 교감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만큼 비용이 들더라도 관련 경험이 많은 해외 전문가 집단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부 K-바이오 몸값 너무 비싸"
“자금이 많이 드는 임상 3상 등은 거대 기업의 투자를 통해 진행하는 식으로 ‘위험 분산(Risk Sharing)’이 이뤄지는 산업구조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다. 또 서 회장은 “신약 후보 물질들이 적정한 값에 가치 평가를 제대로 받아야 기술거래가 더 활성화되는데, 지금 일부 K-바이오 업체의 몸값은 너무 비싸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기업 가치 부풀리기에 대한 우려다.
"창업하려면 목숨 걸 각오해야"
실제 그의 삶이 그랬다. 충북 청주의 연탄가게 집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삼성전기와 한국생산성본부, 대우자동차 등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직장을 잃었다. 재취업이 안 돼 술독에 빠져 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뭐라도 해보겠다’는 생각에 벤처기업을 차렸다. 후에 셀트리온이 된 넥솔이다. 이후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 비싼 오리지널약을 계속 쓸 수는 없을 것’이란 생각이 그를 움직였다. 이후 그는 무작정 바이오산업의 본산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2002년 셀트리온 설립 계약 체결 당시의 모습. 오른쪽 둘째가 서정진 회장. [사진 셀트리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12/5f3066dc-f83e-4172-b5bf-c43d932e709f.jpg)
2002년 셀트리온 설립 계약 체결 당시의 모습. 오른쪽 둘째가 서정진 회장. [사진 셀트리온]
그곳에서 싸구려 모텔을 전전하면서도 매일 스탠퍼드 대학의 토머스 메리건 에이즈 연구소장을 찾아갔다. 만남을 거절당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보름여가 지나도록 매일 같이 연구소로 찾아오는 서 회장에게 메리건 연구소장은 결국 한장의 추천서를 써줬다. 그가 바이오 사업가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포브스 선정 세계의 부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지금도 직원들 '블라인드' 보는 이유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이어 대한민국 2위, 전 세계 181위의 부자(미 경제전문 매거진 포브스 기준, 보유 재산 81억 달러)가 된 지금도 서 회장이 직장인 애플리케이션(앱)인 ‘블라인드’를 매일같이 직접 꼼꼼히 살피는 이유다. 그는 “우리 직원들은 블라인드에서 회사 욕도 하곤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지혜를 배울 수 있다”며 웃었다.
다음 목표는 U 헬스케어
"대한민국 2위 부자이지만, 순댓국이 맛있다"
셀트리온 창업 초기엔 신체 포기각서를 쓰고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더는 팔수 있는 부분이 없을 정도”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더는 갈 곳이 없다’는 생각에 극단적인 결심까지 했지만, 이를 악물고 시련을 견뎌냈다. 그리고 결국 성공했다.
남은 꿈은 사회 통합
그런 그에게 남은 꿈은 “사회 통합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위 성공이란 걸 하고 여러 계층을 살아봐도 여전히 순댓국이 맛있고, 제육볶음이 생각나곤 한다”며 “돈을 얼마를 더 버는 것보다는 후세가 잘살 수 있도록 사회 통합을 이뤄내고 싶다”고 했다.
그 시작은 65세에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이다. “회장이라고 다른 임원들과 다른 기준을 적용받으면 그건 독재”라는 말도 했다. ‘오너 경영자가 은퇴하긴 65세는 너무 젊지 않나’란 질문엔 “은퇴 후에 에너지가 남아 있다면 사회를 위한 다른 일을 하면 된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서 회장은 “돼지 농사를 잘 지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영ㆍ미식 비즈니스 세계에선 창업이 "새끼 돼지를 키워 중간 돼지 단계에서 이를 팔아 이익을 챙기는 식이라면, 한국 기업인은 그보단 사회적 책임까지 다하는 ‘돼지 농사’를 짓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출처: 중앙일보] 서정진 회장의 한탄 "임상 100% 성공? 그건 100%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