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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폭거를 불러들인 건 야권 분열이다

화이트보스 2020. 1. 2. 22:09



정권의 폭거를 불러들인 건 야권 분열이다


    
입력 2020.01.02 03:20

지난 연말 여권은 예산안에 이어 선거법, 공수처법을 며칠씩 간격을 두고 차례차례 밀어붙였다. 예산안을 여권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은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래 처음 있는 일인데다, 총선을 겨냥한 초대형 거품 예산을 거의 손대지 않고 통과시켰다. 더구나 민주주의 경쟁 규칙에 해당하는 선거법에 이어 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공수처법 처리까지 군사작전 벌이듯 집권 세력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나라의 기본 틀을 결정하는 법과 제도를 야당의 동의 없이 일방 변경하는 것은 제대로 민주주의 하는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역대 정권, 군부에 뿌리를 둔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쟁점 법안을 한 번에 무더기로 강행 처리하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았다.

수십 년 전 유신시대 행태를 정부가 거침없이 저지르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정권의 폭거를 견제하고 막아야 할 야당의 지리멸렬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법의 강행 처리를 맥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매번 "목숨을 걸고 막겠다" "죽기를 각오하겠다"는 각오를 외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여권의 쟁점 법안 연말 땡처리가 마무리된 후 '의원직 총사퇴'라는 극약 처방을 꺼내 들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때늦고 진정성도 없는 야당의 결기에 국민 반응은 냉소에 가깝다.

패스트트랙 충돌 때처럼 육탄 저지에 나섰다가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차기 총선 출마 길이 막힐지 모른다는 걱정과 몸에 밴 보신주의, 웰빙 체질이 한국당의 손발을 묶은 측면도 있다. 그러나 무기력증의 근본 원인은 야권 분열에 있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야당 세력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찬반 입장 때문에 한국당을 뛰쳐나가 여러 갈래로 찢겨 있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 정권에 맞설 단일 대오를 형성할 책임이 한국당에 있다. 그래야 정권의 오만과 독선에 화가 난 민심도 하나로 뭉친다. 그때야 비로소 집권 세력도 국민을 무서워하며 대한민국 체제 흔들기를 멈출 것이다.

한국당은 당장 사분오열된 야권 통합에 나서야 한다. 총선에 대비한 당 체제를 정비하는 일은 그다음 수순이다. 당 지도부는 당 밖 야권 세력과 합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확보해 놓은 기득권을 손해 보지 않을까라는 쩨쩨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굳이 야권이 뭉치지 않아도 정권 실정의 반사이익만으로 총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희망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 황교안 대표부터 대표라는 자리와 그 자리가 보 장해 주는 총선 공천 권한, 그리고 차기 대선 후보 경선에서의 유리한 입지부터 포기하고 실천해야 한다. 지금은 그런 얄팍한 정치 계산을 할 때가 아니다. 속 보이는 계산은 역풍을 부를 뿐이다. 지금은 여야의 일반적 선거 경쟁의 상황이 아니다. 정권이 야당에 언제든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권력을 바른길로 이끄는 브레이크다. 지금 그 브레이크가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1/20200101017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