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1.03 17:30
검찰이 지난해 4월에 있었던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을 수사한 8개월 끝에 한국당 27명, 민주당 10명 등 여야 의원 및 보좌진 37명을 무더기로 기소했다. 황교안 대표, 나경원, 이종걸 의원 등이 포함됐다. 여기서 궁금하다. ‘윤석열 검찰’은 왜, 해가 바뀌고, 법무장관이 바뀌고, 선거가 불과 석 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더구나 검찰 인사가 코앞인데, 현직 국회의원들을 무더기로 기소했을까.
대통령은 일상적인 업무가 시작되기도 전인 어제 오전 7시에 전자결재로 추미애 법무장관을 임명했는데, 바로 어제 검찰은 추 장관이 울산 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본격 수사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한국당이 고발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에 배당했고, 추 장관이 민주당 대표였던 시절 비서실 부실장을 지낸 정모씨를 전격 소환해서 조사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송철호 울산시장의 선거캠프에 정무특보로 합류했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 합동 인사회에서 "새해에는 더욱 확실한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면서 "권력기관 개혁과 공정사회 개혁이 그 시작"이라고 했다. 여기서 특기할만한 점은 대통령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권한을 다 하겠다"고 말한 점이다. 현직 대통령이 헌법에 따른 ‘의무’가 아니라 ‘권한’을 언급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합동 인사회 자리에는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윤석열 검찰총장도 있었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추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검찰 사무의 최종 감독자"라고 했다. 윤 총장은 추 장관에게 복종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한 것으로 들린다.
대통령도 법무장관도 검찰 인사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검찰 고위 간부를 비롯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있을 것이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청와대는 최근 경찰에 지시해서 검찰의 검사장과 차장검사 승진 대상자, 즉 사법연수원 28기~30기에 해당하는 150명에 대해 세평 수집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이것을 "일상적인 업무"라고 했다지만 검찰은 "우리를 사찰하는 것 아니냐"고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경찰을 시켜 검찰 고위 간부들에 대해 세평 수집을 하고 있다면, 이 일을 지휘하는 사람은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일 수밖에 없다. 이게 문제다. 최 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장관의 아들이 하지도 않은 인턴활동을 했다며 거짓 확인서를 작성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이 이런 혐의로 잡고 수사 선상에 올렸다고 한다. 최 비서관은 검찰 출두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울산 선거 개입 의혹으로 수사 받고 있는 법무장관, 조국 사태에 관련된 혐의로 수사를 받아야 할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이 두 사람이 검사들의 세평을 수집하고 검찰 인사를 준비하고 있다면,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누가 봐도 ‘보복성 인사’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적 양식(良識)이 있는 정권이라면 법무장관과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혐의가 완전히 벗겨진 뒤에 검찰 인사를 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권한을 다해 권력기관을 개혁하겠다" "검찰 최종 감독자는 법무장관"이라면서 반대 방향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추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발언도 문제다. 추 장관은 "검찰총장과 인사를 협의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협의하는 게 아니라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대통령에게) 제청한다"고 대답했다. 국민들은 ‘의견을 듣는 것’과 ‘협의를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당장은 아리송했으나, 곧이어 추 장관의 속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원래의 입법 취지는 검찰 인사에 검찰총장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라는 것이었으나, 추 장관은 윤 총장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있다는 속마음을 내비쳤다고 볼 수 있다.
윤 총장은 작년 9월 국정감사에서 ‘검사로서 윤석열이 변한 게 없다고 자부하느냐’는 질문에 "자부까지는 아니라도 예나 지금이나 정무 감각이 없는 것은 똑같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정무 감각이 없다’는 것은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혀졌다. 다시 말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추 장관의 검찰 인사는 다음 주 초에 단행될 것 같다. 만약 ‘조국 사태, 울산 사태, 유재수 사태’ 같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했던 검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거나, 혹은 현직 검찰총장의 손발을 자르는 인사가 있게 된다면, 청와대와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 심각한 갈등을 빚게 될 것이 뻔하다. 청와대는 윤석열 총장을 제압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검찰 인사가 비리 의혹 수사를 잠재우는 쪽으로 드러날 경우 그 결과는 윤석열 총장을 누르는 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국민적 저항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점을 문재인 정권은 명심해야 한다. 어떤 정권이든 모든 것을 끝까지 제압하려고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마지막 순간 국민적 역풍에 직면했다는 것을 지난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