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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중동천일야화] 트럼프 중동 평화 구상案

화이트보스 2020. 2. 17. 19:06



新중동천일야화] 트럼프 중동 평화 구상案… '세기의 협상' 아니면 '세기의 사기'

조선일보
  •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입력 2020.02.17 03:14

이스라엘 정착촌·예루살렘 영유권 등 이스라엘 일방적 편들어
팔레스타인 등엔 500억달러 지원… '평화와 돈의 맞교환' 제시
反美지만 자국 지도자에 실망한 팔레스타인 민심 이반 노려

                  
지난달 말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 평화 구상을 발표했다. 이른바 '세기의 협상'이라 불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 방안이다.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보좌관인 재러드 쿠슈너가 지난 3년간 공들여 만든 작품이기에 관심을 끌었다. 과연 트럼프 호언대로 평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어려워 보인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발표 직후 팔레스타인은 '세기의 사기'라며 수용을 거부했다. 이 제안대로라면 팔레스타인이 주권국가가 되는 핵심 요소인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 모두 흠투성이가 된다.

트럼프案, 팔레스타인 수용 거의 불가능

먼저 '영토'다.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정착촌을 팔레스타인 영토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팔레스타인 땅 안에 이스라엘 마을이 퍼져 있는 셈이다.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의 표현에 의하면 '구멍 숭숭 난 치즈 덩어리' 모양이다. 일제에서 해방된 대한민국 땅 곳곳에 적지 않은 일본 영토가 자위대와 함께 남아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뿐만 아니다. 가장 첨예한 예루살렘 영유권 문제도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통합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했다. 팔레스타인에는 아부디스(Abu Dis) 등 동예루살렘 일부 지역을 수도로 하면 된다고 했다. 일부나마 동예루살렘을 영토로 확정하게 되니 문제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인 올드시티 관할권은 이스라엘에 있다.

둘째 '국민' 요소 역시 불확실하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엄격히 통제한다는 방침이 담겼다. 심사 후 일정 숫자만 받아들인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다. 흩어져 살던 난민들이 독립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제3국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것은 부당해 보인다. 이스라엘 국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동예루살렘 거류민들의 국적 선택 문제도 논란거리다. 기본적으로는 이들이 자신의 국적을 선택하게 한다는 방향성을 제안했지만 이는 향후 팔레스타인 국가 내부의 균열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인이다.

트럼프의 중동 평화 구상
셋째 '주권'도 완전하지 않다. 정규군 편성도 제한되고, 영공 통제권도 사실상 이스라엘이 갖는다. 정상적 주권국가라 할 수 없다. 요르단 계곡도 이스라엘 영토로 확정된다. 팔레스타인은 이 경우 이웃 요르단 국경 접근도 어렵다. 이스라엘 안에 갇힌 섬나라, 그것도 중간중간 구멍 뚫린 괴이한 모양의 나라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나라 팔레스타인을 상정하지 않은 트럼프의 구상은 편파적이다. 기존 유엔 결의나 국제사회 합의, 미국 정부의 이전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편들었다. 트럼프는 왜 이 시점에서 이 구상을 내놓은 것일까? 두 가지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국내 정치, 특히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둔 제안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통념을 깨고 판을 흔들어 이·팔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먼저 국내 정치. 이스라엘 편들기는 트럼프 지지 세력을 결집시킨다. 선거 국면에서 시오니스트 유대 자본가들의 정치 자금 후원이 쉬워진다. 이스라엘과 연대를 강조하는 복음주의 진영의 표심도 모을 수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해서는 선을 확실히 그었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이스라엘 편을 들고, 팔레스타인에는 경제적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그림이다. 총 181쪽의 이 구상 보고서의 약 3분의 2 이상이 경제와 복지, 인적 개발 계획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팔레스타인과 주변 아랍국에 대한 500억달러 지원 계획을 밝혔다. 59조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조달 방법을 밝히지 않았지만 어떻게 쓸 것인지는 시간 계획까지 표에 담아 제시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내놓았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 중재안과는 사뭇 다르다. 경제 건설 부문은 고심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미국 요구 받으면 잘살게 해준다는 조건

트럼프는 팔레스타인 일반 대중을 설득하고 싶은 듯하다. 팔레스타인 사람은 늘 이스라엘의 만행에 분노해왔다. 하지만 노회한 자국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회의와 무기력감도 함께 갖고 있다. 물론 이번 구상을 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분노했다. 일부 물리적 저항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게 되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지금까지 제대로 된 팔레스타인 주권국가를 세우지 못했다. 잘해주었던 오바마 대통령도 못했다. 앞으로도 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반쪽 주권이나마 확실한 자금과 함께 일단 시작하고 점차 힘을 기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을 법하다. 트럼프는 이 지점에 주목하는 것 같다. 집권 세력과 대중 사이의 간격을 벌려 협상 동력을 아래로부터 살려 보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란 제재 복원 맥락과도 유사하다. 아랍 국가들의 팔레스타인 대의도 약해졌다. 아랍은 더 이상 이·팔 분쟁에 엮이기 싫어하는 표정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는 회생 불능으로 보이는 이·팔 평화 협상을 다시 살려내고 업적으로 과시하고 싶을 것이다. 이전 정부들의 협상 중재안은 모호하게 양쪽 편을 들다 보니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믿는 것 같다. 이와 달리 자신은 선명한 선택의 거래 조건을 던졌다. 이스라엘 라빈 전 총리가 '평화와 영토의 맞교환'을 내세우며 오슬로 협정을 이끌었다면, 트럼프는 '평화와 돈의 맞교환'을 제시한 셈이다. 이 제안이 시간이 가며 극적 돌파구가 될지, 아니면 편파성으로 인해 중재자 미국의 신뢰를 더 추락시킬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2/16/20200216016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