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통일이 미래다

북한군 제6군단

화이트보스 2020. 3. 1. 18:26



제6군단

**앱 다운로드가 아니라 pdf 파일 다운로드입니다. ?

뭐 심심한데 재밌는 만화나 봅시다! 무료 만화 위에서 내려 받으시고 재미가 있던 없던 여러분 의견이 미치도록 듣고 싶습니다. 좀 귀찮으시더라도 솔직한 후기 밑에 남겨 주세요~ 꾸벅..

여러분은 조선 인민군 제6군단의 비화를 들어보셨어요? 모든 조선 인민군24군단들 중에서도 제6군단만이 유일하게 지금까지도 존재하지않는 이유를 아세요? 한동안 최고였던 제6군단, 그러나 지금은 이름도 지워진 북한군 제6군단에서 리용수 군단장은 모든 군단원의 존경과 칭송을 받던 군인이었읍니다. 충성을 맹세하고 모든 인민들을 위해 군단원들과 한몸같이 살아왔던 리용수 군단장, 그리고 그와 군단원들은 북한의 더나은 미래를 위해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공화국 수뇌부들은 조선인민군 제6군단원들의 희생을 말살하고 또 부정했지만 제6군 모든 단원들의 인민을 위한 희생정신과 명예는 영원히 기억될것입니다. 짝짝짝~

38 thoughts on “제6군단”

  • 북한 6군단의 쿠테타시도사건 북한*뉴포커스  

    2013. 5. 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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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테타를 시도한

           북 한  6 군 단 

                                                         이렇게 사라졌다

     

                                1994년 1월 2일, 북한 주민들이 설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이날 함경북도에 주둔하고 있는 북한 

                                군 6군단 군단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했다. 이날 함북 청진 시 라남구역에 위치한 6군단 사령부

                                상공에서 헬리콥터들이 굉음을 울렸다. 사람들은 영문 모르고 불안에 떨었다. 약 1년 뒤 6군단

                                정치위원을 비롯한 장성 및 고위 군관들이 무리로 처형되고 군단 산하 사단들이 강원도와 함경

                                남도 주둔군과 교체됐다. 3대 명물을 꼽으라면 돌, 군대, 바람을 꼽는 강원도에서, 돌 10개 던지

                                면 8개가 군대 머리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는 강원도. ‘돌강원도’라고 불리는 그 척박지에서 6군

                                단으로 새로 배치돼 함북에 들어오는 군인들은 차에서 쾌재를 울렸다. “와~여기는 아직 산에

                                염소가 돌아다니네…” 물론 군인정신이 아니라 ‘도둑 정신’에 투철한 강원도 군인들이 들어온

                                뒤 함북 야산들에서 염소와 양들이 사라지고 개인집들에서 가축들이 사정없이 사라졌다. 함북

                                사람들은 신음했다. “예전에도 고생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네…이번엔 마적단이 들어왔

                                네.” 이때쯤 북한에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6군단 장성들이 쿠데타를 기도했다는 것이다. 소

                                문은 이러했다. 6군단 정치위원(중장)이 쿠데타를 꿈꾸고 동지를 규합했다고 한다. 군단 보위

                                부장도 정치위원과 의기투합했다. 이제 군단장만 남았다. 북한 군단을 움직이려면 무력 통솔권

                                을 장악한 군단장, 정치책임자인 2인자 정치위원, 군단 감시를 담당한 보위부장 이렇게 3명이

                                뜻을 모아야 한다. 3권 분립이 철저하게 돼 있어 다른 나라들 처럼 군 사령관의 독립 결심에 의

                                해 군이 움직일 수 없는 구조다. 이때문에 북한에선 쿠데타 가능성이 그만큼 낮은 것이다. 이들

                                은 군단장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회로 1994년 설날을 잡았다. 상관을 찾아가 세배를 할 수 있는

                                설날은 장성들이 자연스럽게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들은 군단장의 의사를

                                타진하고 거절할 경우 암살한다는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군단장은 거절했다. 그리고 계획대로

                                수하들에게 암살됐다. 한 고위급 인사의 증언에 따르면 독술을 마셨다고 한다. 참고로 당시 6군

                                단장은 빨치산 출신은 아니었지만, 6.25전쟁에서 큰 활약을 펼쳤던 사람이었다. 군단장 정도가

                                사망하면 노동신문 2면 정도에 부고가 뜬다. 당시 노동신문도 2면에 6군단장이 오랜 지병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쿠데타 주모자들이 모두 처형돼 이들이 계획했던 쿠데타 내용은 전해지

                                지 않고 있다. 평양 공격 계획을 세웠다는 이야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유인해 암살하려 했다

                                는 이야기, 한국군과 손잡고 함북을 내주려했다는 이야기 등이 떠돌았을 뿐이다. 참고로 1994

                                년을 전후한 시기는 북핵 문제로 북미, 남북 간의 대결이 최고조로 이를 때였다. 1993년 3월 북

                                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했고, 미국은 영변 핵 폭격을 시도할 때였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군 보

                                위사령부 수사기록이 드러나 역사를 세우려고 했던 이들의 당당했던 뜻이 밝혀지게 되리라고

                                본다. 1994년 초 6군단에서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을 때 김정일 국방위 사람이 바로 당시 군수

                                총국장이었던 김영춘 대장이었다. 김영춘은 파견되자마자 원응희 당시 총참모부 보위국장과

                                손을 잡고 바닥까지 철저하게 내사했다. 가장 먼저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정치위원 등 주도자

                                들은 회의를 한다는 구실로 함남 리원 비행장에 유인한 뒤 그 자리에서 체포했다. 정치위원은

                                의심을 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리원에 갔다가 포박돼 평양에 끌려올라갔다. 수십 명의 군인들

                                이 차에서 내리는 그를 덮쳤을 때 그는 체포될 것을 각오하고 있었던 표정이라고 한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사람은 훗날 정치위원이 “이놈들아~”하면서 고함을 치다가 복부에 주먹을 맞고

                                질질 끌려갔다고 말했다. 이후 약 10개월 동안 군단에선 철저한 내사가 진행됐고 수많은 가담

                                자들이 추가로 체포 및 처형됐다. 6군단 뿐 아니라 함경북도당 조직비서 등 군 장성들과 결탁했

                                던 당, 행정 간부들도 체포됐다. 이들은 가혹하게 처단됐고 가족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졌다.

                                혐의가 있는 수백 명의 군관들이 체포 및 처형된 것 외에도 쿠데타 시도를 전혀 몰랐던 초급군

                                관들도 군복을 벗고 제대됐다. 제대 기간이 좀 남은 고참 병사들도 제대돼 탄광 등 오지에 배치

                                됐다. 완전히 반역의 씨를 제거하고 다른 부대에 소문이 퍼지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겠다는 의도

                                였다. 영문도 모르고 제대돼 아오지 등 오지에 보내진 이들은 단지 6군단 소속이었다는 이유로

                                삶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다음해 1월부터 군단 산하 3개 현역 사단이 근무조건이 척박한 강원도

                                로 밤마다 열차에 실려 이동했고, 그만한 수의 무력이 전연에서 후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반역

                                의 대명사로 된 6군단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6군단은 9군단으로 새로 개편된 것이다. 쿠데타

                                숙청과 6군단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김영춘은 크게 승진했다. 1995년 9월 김영춘은 쟁쟁

                                한 선배들을 제치고 차수 직함과 함께 총참모장(한국 참모총장)에 오른다. 2000년에는 북한 공화

                                국 영웅 칭호까지 받았다. 원응희는 총참모부 보안국장에서 인민무력부 보위사령관으로 승진한

                                뒤 김일성 사망 이후 1990년대 말에 이루어진 각종 대숙청을 주도했다. 보위사령부의 권세는 하

                                늘을 찔렀다. 전두환 시절의 보안사 위세를 능가했을 것이다. 심지어 중앙당 간부들도 보위사가

                                내사했고 수많은 간부들의 목이 달아났다. 위세를 떨치던 보위사령부는 2002년부터 갑자기 위축

                                됐다. 아마 보위사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자 김 위원장이 견제한 것이다. 그보다는 이제는 기본적

                                으로 쳐버릴 것은 다 쳐버려서 안정적인 권력 이양을 이루었다고 생각한 김 위원장이 보위사를

                                더는 방치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북한이라고 적응되지

                                말란 법이 없다. 평양 인근 중화군에 주둔한 공군사령부의 정치위원(소장) 시절 6개월 넘게 끈질

                                기게 공군사령관을 도청하고 감시해 끝내 그를 반혁명분자로 숙청시킨 공로로 김정일의 눈에 띄

                                워 벼락출세했던 원응희. 그는 2004년 5월 6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었다.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그의 수하들도 현재 죽거나 사라진 사람이 많아 지금 보위사 수뇌진의 인적 구

                                성은 1990년대 말과 전혀 다르다는 말도 전해진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지난해 9월 6

                                군단 사건 수습에 나간 김영춘을 장성택이 조종했다고 밝혔다. 1994년 당시 장성택의 형제인 장

                                성우와 장성길은 각각 북한군 대장과 중장으로 군단장으로 보내도 되는 직위였지만, 그들을 제

                                치고 김영춘이 내려간 것이다. 김영춘에 대한 김 위원장, 또는 장성택의 신임이 대단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상 위에 서술한 6군단 사건 중 많은 세부적 서술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

                                들이다. 필자는 이 내용은 당시 북한군 보위사령부 최고위 장성 중 한명의 자식에게서 들었다.

                                그랬던 김영춘이 어제 인민무력부장에 올랐다. 한국의 국방장관인 셈이다. 총참모장에 오른 리

                                영호는 평양방어사령부(군단급) 사령관 출신이다. 한국으로 치면 수도방어사령부 사령관인 셈.

                                평양방어사령부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임무는 유사시 즉 쿠데타가 발생하면 김정일 정권을 지

                                켜내는 것이다. 반면 평양방어사령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치명적이다. 방어병력을 동원할 사이

                                도 없이 평양이 점령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양방어사령부 사령관은 충신 중의 충신이 돼야 한다.

                                리영호는 친위대인 호위국 출신이라는 증언도 있다. 결국 북한은 군 수뇌부에 최고의 ‘쿠데타 진

                                압 전문가’들은 임명한 셈이다. 한국의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실전에 능한 군인’이라고 하지만

                                내막을 뜯어보면 실전보다는 사실상 쿠데타를 막기에 가장 적임자들인 충성파들을 임명한 셈이

                                다. 이들을 제외해도 북한엔 군사 작전통들은 많다. 1~4군단 같은 남침 임무를 수행해야 할 전연

                                군단 군단장들이 진짜 작전통이다. 북한이 진짜 작전통을 임명하자고 했자면 김영춘이나 평양방

                                어사령관을 쓰진 않았을 것이다. 김영춘이 6군단장 경력을 놓고 "야전군 사령관을 겸비한 작전통"

                                이라고 했는데 김영춘은 6군단에 야전군 사령관을 하려 간 것이 아니라 쿠데타 진압을 하려 갔을

                                뿐이고 진압이 끝난 뒤 승진했다. 그리고 6군단은 북한에서 가장 후방에 주둔한 군단이고 대다수

                                가 예비역으로 구성된 현역이 가장 작은 군단이다. 2년도 채 안되게 이곳 사령관을 한 경력은 야

                                전군 사령관 경력에 끼지도 못한다. 왜 김정일은 쿠데타 진압에 능한 수하들을 군 수뇌에 배치했

                                을까. 그가 직접 병상에 누워보니, 혹은 그때, 권력 유지에 대한 불안감에 불을 지펴준 어떤 계기

                                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 우리가 모른다고 그런 시도가 전혀 없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

                                러나 현재는 정말 이를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더 논할 수도 없다. 또하나 가능성, 북

                                한은 올해 1월에는 내각의 3분의 1을 교체했다. 특히 인민경제 4대 선행부분이라는 전기, 석탄,

                                금속, 철도 중에 교체된 지 얼마 안 되는 석탄상만 제외하고 다 교체했다. 신진 관료들은 경제실

                                무 일꾼들 위주로 채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동시에 1월 말에 김정남이 베이징에 나타나 생전 처음

                                으로 후계자 문제에 대해 입 열었다. 그리고 어제 김정일 요리사를 지낸 후지모토 씨가 김정일 3

                                남 김정운의 사진을 공개했다. 그가 북한을 나온 지 이제는 8년이 돼 가는데 이제야 김정운의 사

                                진을 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북한에서는 무엇인가 움직임이 있다. 13일은 김정일 국방위

                                원장이 후계자로 지명된 지 35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32세 생일을 3일 앞둔 1974년 2월 13일

                                당 전원회의에서 후계자 지명을 받았다. 이제는 김 위원장도 67세다. 3월에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진행되며 김정일 3기 통치가 시작된다. 김 위원장

                                이 지금 후계자를 지명할 때라고 생각한다면 경제 실무일꾼들로 내각을 채운 뒤 혹시 급변기에

                                일어날 수 있는 반역을 대비해 군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인사는 그런 조짐을 알리

                                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 물론 김정일의 속셈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13일 오늘자 신

                                문의 김영춘 관련 기사와 일부 중복된 내용도 있지만 지면 제약으로 쓸 수 없었던 이야기를 여기

                                에 펼쳐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