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4.18 03:00
국회 입성 성공… 태구민 13일의 기록

탈북민은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다음으로 차별받는 존재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18년 전국 19~69세 남녀 8000명을 대상으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포용도를 조사했다. 소수자 집단별로 물었을 때 '아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응답은 동성애자 49%, 북한 이탈 주민 12.6%, 외국인 이민·노동자 5.7%로 나타났다.
이번 총선은 탈북민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 1호를 배출했다. 주인공은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갑 당선인 태구민(56). 대중은 베스트셀러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쓴 탈북 외교관 태영호로 그를 기억한다. 강남갑은 신사동, 압구정동, 청담동, 논현 1·2동, 역삼 1·2동을 아우른다. 태 후보를 태운 핑크색 유세차에는 '기호 2번 태구민(태영호)'으로 이름이 어정쩡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6시 압구정역 앞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 현장. 그는 "한반도 분단 70년과 김정은 정권의 테러 위협 때문에 때로는 태구민, 때로는 태영호로 소개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튼, 주말'은 두 이름을 가진 이 남자의 공식 선거운동을 관찰했다. 4월 2일부터 14일까지 총 13일의 기록이다.
구원할 구(救), 백성 민(民)
태구민(太救民)은 주민등록증에만 있는 이름이었다.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 공사는 2016년 입국 후 북한의 추적을 피하려고 가짜 이름과 생년월일을 지어내야 했다. 가명엔 '북한 주민을 구원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갑작스럽게 출마를 결정하면서 58세 태영호로 개명하려 했지만 시일이 걸려 56세 태구민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역 연고도 없는 강남에서 탈북민 출신 정치 신인의 도전은 평탄하지 않았다. 지난달 초 "강남갑 태구민 후보는 '남한에 뿌리가 없어' 잘못된 공천"이라고 해 논란을 일으킨 사람은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되던 김종인씨였다. 태 후보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출마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내 등에 칼을 꽂았다"며 반발했다. 갈등이 봉합되기는 했지만 탈북민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드러났다.
4월 2일 이 정치 신인은 출정식을 갖고 본격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유세 차량에는 '살리자 강남 경제!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적었다. 3일부터는 유세 라이브 방송(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진행했다.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받는 상황에서 비대면(非對面)으로 현장을 생중계했다. 선거 유세는 태 후보의 연설, 주민들의 발언, Q&A 순으로 이어졌다. "당신 빨갱이 아니냐?" "이중간첩 아니냐?" 같은 질문도 다 받겠다고 했다.
4일 미래통합당은 그에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외교안보특별위원장을 맡겼다. 6일 청주 흥덕구 후보자 토론회에서 미래통합당 정우택 후보가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이 미사일을 서른여덟 번이나 쐈다"고 지적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후보가 "실제로는 우리가 더 많이 쏘고 있다"고 반박하자, 태구민 후보는 "집권 여당 후보의 북한 편들기 발언이 충격적"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네거티브 진흙탕을 피하다
이번 총선은 탈북민 출신 지역구 국회의원 1호를 배출했다. 주인공은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갑 당선인 태구민(56). 대중은 베스트셀러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쓴 탈북 외교관 태영호로 그를 기억한다. 강남갑은 신사동, 압구정동, 청담동, 논현 1·2동, 역삼 1·2동을 아우른다. 태 후보를 태운 핑크색 유세차에는 '기호 2번 태구민(태영호)'으로 이름이 어정쩡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 14일 오후 6시 압구정역 앞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 현장. 그는 "한반도 분단 70년과 김정은 정권의 테러 위협 때문에 때로는 태구민, 때로는 태영호로 소개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튼, 주말'은 두 이름을 가진 이 남자의 공식 선거운동을 관찰했다. 4월 2일부터 14일까지 총 13일의 기록이다.
구원할 구(救), 백성 민(民)
태구민(太救民)은 주민등록증에만 있는 이름이었다. 태영호 전 주영(駐英) 북한 공사는 2016년 입국 후 북한의 추적을 피하려고 가짜 이름과 생년월일을 지어내야 했다. 가명엔 '북한 주민을 구원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갑작스럽게 출마를 결정하면서 58세 태영호로 개명하려 했지만 시일이 걸려 56세 태구민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역 연고도 없는 강남에서 탈북민 출신 정치 신인의 도전은 평탄하지 않았다. 지난달 초 "강남갑 태구민 후보는 '남한에 뿌리가 없어' 잘못된 공천"이라고 해 논란을 일으킨 사람은 미래통합당 선대위원장으로 거론되던 김종인씨였다. 태 후보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출마해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내 등에 칼을 꽂았다"며 반발했다. 갈등이 봉합되기는 했지만 탈북민을 향한 차별적 시선이 드러났다.
4월 2일 이 정치 신인은 출정식을 갖고 본격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유세 차량에는 '살리자 강남 경제! 지키자 자유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적었다. 3일부터는 유세 라이브 방송(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진행했다.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요구받는 상황에서 비대면(非對面)으로 현장을 생중계했다. 선거 유세는 태 후보의 연설, 주민들의 발언, Q&A 순으로 이어졌다. "당신 빨갱이 아니냐?" "이중간첩 아니냐?" 같은 질문도 다 받겠다고 했다.
4일 미래통합당은 그에게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외교안보특별위원장을 맡겼다. 6일 청주 흥덕구 후보자 토론회에서 미래통합당 정우택 후보가 "문재인 정부 들어 북한이 미사일을 서른여덟 번이나 쐈다"고 지적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후보가 "실제로는 우리가 더 많이 쏘고 있다"고 반박하자, 태구민 후보는 "집권 여당 후보의 북한 편들기 발언이 충격적"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네거티브 진흙탕을 피하다


강남갑 선거구는 15대 총선 이후 줄곧 보수 정당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왔다. 여론조사에서는 시종일관 태 후보가 민주당 김성곤 후보에게 앞섰다. 30대를 제외하고 모든 연령층에서 지지세가 강했다.
선거 캠프는 젊은 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전략을 궁리했다. 태 후보는 4일 페이스북에 "비주얼과 실력을 겸비한 재간둥이들 덕분에 요즘 내 안의 흥과 끼, '새로운 태구민'을 발견하게 된다. 개봉 박두!"라며 뭔가 신선한 도전을 예고했다.
결과물은 7일 유튜브에 올라왔다. 제목은 '태구민이 랩을 한다 홍홍홍'. 영상을 재생하면 검은색 차 문이 열리고 핑크색 모자와 후드티 차림을 한 '래퍼 구민'이 내린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몸을 흔들며 랩 발사. "2번에는 2번이네/ 2번 찍어 2겨내세/ 2번만이 2기는 길/ 2왕이면 2번이네…." 8일 공개한 공식 로고송은 요즘 대세인 트로트 '찐이야'의 강남 버전이었다.
10일 일정은 이랬다. 오전 7시 유세차 탑승, 8시 뱅뱅사거리~한티역~신논현역 등 이동하며 홍보, 오후 2시 서울시의원 청년유세단 유세, 오후 4시 영동근린공원 연설 대담(라이브 방송), 오후 5시 영동시장 주변 인사…. 김병수 선거사무소장은 "오전에는 대로(大路), 오후에는 골목 중심이고 밤에는 섞어서 돈다"며 "후보가 하루를 1년처럼 쓰고 계신다"고 했다.
선거운동 기간이 중반에 접어들자 네거티브 공세가 시작됐다. 김성곤 후보가 "태영호 차남의 게임 아이디는 '북한 최고'"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태 후보는 "North Korea is Best Korea(NKBK)는 서구에서 북한을 조롱할 때 쓰는 반어법"이라며 "수준 낮은 네거티브에 외신 기자들이 웃고 있다"고 대응했다.
강남갑 후보자 토론회의 토막 영상이 '태구민 후보를 찍으면 안 되는 이유'라며 퍼지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민생당 후보가 "공약 중 주차장 건설을 위한 공공 용지가 어디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태 후보가 "제가 아직 구체적으로 학습하지 못했다"며 약점을 드러낸 장면을 우스꽝스러운 자막과 함께 편집한 것이다. 투표를 사흘 앞둔 12일에는 재산(18억6500만원) 형성 과정에 의혹이 제기됐다. 태 후보는 "재산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인세와 강연 수입이라 떳떳하다"며 "네거티브 진흙탕에 말려들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완주하겠다"고 했다.
'3무(無) 탈북민'의 국회 진출
11일 한강공원 신사 나들목 진입로. 마이크를 든 태 후보는 "아파트와 골목을 돌며 들은 주민들 이야기를 압축하면 '못살겠다 바꿔달라'였다"며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 경제 1번지가 강남입니다. 지금 상권 다 죽었습니다. 제가 부족하고 강남을 잘 모르지만 자유 시장경제의 가치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한 이유입니다. 이 한 몸 불살라 반(反)시장적인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아내겠습니다!" 군중은 "태구민!"을 연호했다.
태 후보는 "저를 미성년자 강간범으로 몰아간 게 김정은"이라며 "국회의원이 돼 싸우겠다고 하니 김정은은 지금 잠이 안 올 것이다. 국회에 들어가 굴종적인 대북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는 "경제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라면 안보는 국민이 죽고 사는 문제"라며 "보수를 대변할 우파가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저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1가구 1주택 장기 실거주자에 대해서는 종부세 면제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마지막 날인 14일 오후 4시 서울세관 앞. 사선을 넘을 때 아이들에게 '오늘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인 자유를 선물한다'고 말했다는 탈북민은 며칠 전부터 목이 쉬어 있었다. "지난 3년 행복했습니까? 불행했다면 기호 2번을 찍으십시오. 조국이 미래의 대통령감입니까? 희대의 파렴치범이라 생각한다면 기호 2번을 찍으십시오…."
70대 노인은 "경기도 성남에서 살다가 태 공사를 도우려고 언주로 여동생 집으로 주소를 옮겼다"고 말했다. 60대 여성은 "문재인 정부의 안하무인, 내로남불, 적반하장, 자화자찬에 질렸다"고 했다. 휴가를 내고 유세 현장에 왔다는 40대 회사원은 태 후보를 "이미 우리 곁에 다가온 통일"이라고 지칭했다.
한국 사회에 혈연·지연·학연이 없는 이 '3무(無) 탈북민'은 15일 밤 개표 방송을 보며 당선이 확실해지자 애국가를 불렀다. 눈물을 쏟았다.
선거 캠프는 젊은 층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전략을 궁리했다. 태 후보는 4일 페이스북에 "비주얼과 실력을 겸비한 재간둥이들 덕분에 요즘 내 안의 흥과 끼, '새로운 태구민'을 발견하게 된다. 개봉 박두!"라며 뭔가 신선한 도전을 예고했다.
결과물은 7일 유튜브에 올라왔다. 제목은 '태구민이 랩을 한다 홍홍홍'. 영상을 재생하면 검은색 차 문이 열리고 핑크색 모자와 후드티 차림을 한 '래퍼 구민'이 내린다.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몸을 흔들며 랩 발사. "2번에는 2번이네/ 2번 찍어 2겨내세/ 2번만이 2기는 길/ 2왕이면 2번이네…." 8일 공개한 공식 로고송은 요즘 대세인 트로트 '찐이야'의 강남 버전이었다.
10일 일정은 이랬다. 오전 7시 유세차 탑승, 8시 뱅뱅사거리~한티역~신논현역 등 이동하며 홍보, 오후 2시 서울시의원 청년유세단 유세, 오후 4시 영동근린공원 연설 대담(라이브 방송), 오후 5시 영동시장 주변 인사…. 김병수 선거사무소장은 "오전에는 대로(大路), 오후에는 골목 중심이고 밤에는 섞어서 돈다"며 "후보가 하루를 1년처럼 쓰고 계신다"고 했다.
선거운동 기간이 중반에 접어들자 네거티브 공세가 시작됐다. 김성곤 후보가 "태영호 차남의 게임 아이디는 '북한 최고'"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태 후보는 "North Korea is Best Korea(NKBK)는 서구에서 북한을 조롱할 때 쓰는 반어법"이라며 "수준 낮은 네거티브에 외신 기자들이 웃고 있다"고 대응했다.
강남갑 후보자 토론회의 토막 영상이 '태구민 후보를 찍으면 안 되는 이유'라며 퍼지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민생당 후보가 "공약 중 주차장 건설을 위한 공공 용지가 어디입니까?" 하고 물었을 때 태 후보가 "제가 아직 구체적으로 학습하지 못했다"며 약점을 드러낸 장면을 우스꽝스러운 자막과 함께 편집한 것이다. 투표를 사흘 앞둔 12일에는 재산(18억6500만원) 형성 과정에 의혹이 제기됐다. 태 후보는 "재산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인세와 강연 수입이라 떳떳하다"며 "네거티브 진흙탕에 말려들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완주하겠다"고 했다.
'3무(無) 탈북민'의 국회 진출
11일 한강공원 신사 나들목 진입로. 마이크를 든 태 후보는 "아파트와 골목을 돌며 들은 주민들 이야기를 압축하면 '못살겠다 바꿔달라'였다"며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 경제 1번지가 강남입니다. 지금 상권 다 죽었습니다. 제가 부족하고 강남을 잘 모르지만 자유 시장경제의 가치는 누구보다 잘 압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한 이유입니다. 이 한 몸 불살라 반(反)시장적인 문재인 정부의 폭주를 막아내겠습니다!" 군중은 "태구민!"을 연호했다.
태 후보는 "저를 미성년자 강간범으로 몰아간 게 김정은"이라며 "국회의원이 돼 싸우겠다고 하니 김정은은 지금 잠이 안 올 것이다. 국회에 들어가 굴종적인 대북 정책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는 "경제가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라면 안보는 국민이 죽고 사는 문제"라며 "보수를 대변할 우파가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저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1가구 1주택 장기 실거주자에 대해서는 종부세 면제를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마지막 날인 14일 오후 4시 서울세관 앞. 사선을 넘을 때 아이들에게 '오늘 너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인 자유를 선물한다'고 말했다는 탈북민은 며칠 전부터 목이 쉬어 있었다. "지난 3년 행복했습니까? 불행했다면 기호 2번을 찍으십시오. 조국이 미래의 대통령감입니까? 희대의 파렴치범이라 생각한다면 기호 2번을 찍으십시오…."
70대 노인은 "경기도 성남에서 살다가 태 공사를 도우려고 언주로 여동생 집으로 주소를
한국 사회에 혈연·지연·학연이 없는 이 '3무(無) 탈북민'은 15일 밤 개표 방송을 보며 당선이 확실해지자 애국가를 불렀다. 눈물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