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도쿄 다이토구의 스이게쓰 호텔 내 일본 작가 모리 오가이의 고택 내부.
김범석 도쿄 특파원
“지진 등 자연재해에도 끄떡없이 버텨 왔는데….”14일 오전 일본 도쿄 다이토구의 스이게쓰(水月) 호텔. 7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의 대표 노포(老鋪) 중 한 곳이다. 이 호텔 안에는 134년 전 지어진 일본 작가 모리 오가이(森鷗外)의 고택도 있어 역사적인 곳으로 여겨져 왔다.
이 호텔은 31일 폐업할 예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3월부터 손님 예약이 급감했고 지난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까지 곤두박질쳤다. 관리비와 직원 월급 등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결국 80년의 역사를 뒤로하게 됐다.
이날 호텔이 문을 닫기 전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단골손님들이 방문했다. 이들은 호텔과 고택 곳곳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호텔 주인인 나카무라 미사코(中村みさ子) 씨는 “80년의 역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최대한 빨리 (폐업) 결정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들도 경영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잇달아 쓰러지고 있다. 일본의 장인 문화를 상징하는 노포들의 폐업은 ‘자영업자의 도산’, 그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정부는 개인사업자에게 최대 100만 엔(약 1150만 원)을 지급하는 보상책을 발표했지만 도쿄 아사쿠사의 튀김 전문집 ‘긴센(金泉)’ 관계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현실성 없는 보상책”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가게는 창업 117년 만인 10일 문을 닫았다.
일본 정부는 13일 그동안 의료 전문가들이 중심이 됐던 정부 자문위원회에 뒤늦게 경제 전문가 4명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민간신용조사기관인 도쿄 상공 리서치는 코로나19로 도산한 업체 수가 143곳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소규모 동네 업소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오늘도 노포의 불은 계속 꺼지고 있다.
김범석 도쿄 특파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