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문화

재택근무의 생산성

화이트보스 2020. 5. 25. 08:13

재택근무의 생산성

조선일보

 

 

 

 

 

 

입력 2020.05.25 03:18

파리 특파원 시절 재택근무를 했다. 잠자는 방에서 사무실 공간으로 쓰는 거실까지 출퇴근 시간이 도합 30초도 안 됐다. 출근 준비 안 해도 되고 교통 체증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하루 24시간이 28시간으로 늘어난 것 같았다. 하지만 재택근무가 길어지니 피로가 누적돼 출퇴근이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집이 더 이상 쉬는 공간이 아니었다. 성실하게 출근하는 근태는 하나도 반영 안 되고 오로지 '성과'만으로 평가받는 것도 만만찮은 부담이었다.

▶롯데지주가 주 5일 가운데 하루를 의무적으로 재택근무하기로 했다. '3일 출근, 2일 재택근무'를 채택한 게임 회사도 있다. 굳이 회사 나오지 않아도 '줌' 같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회의가 가능하다. 재택근무의 생산성이 사무실 근무보다 평균 1%밖에 하락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손정의 동생 손태장 미슬토 회장은 2년 전 방한 강연에서 출근길 인파로 꽉 찬 도쿄의 지하철 사진을 보여줬다. "20세기 사고방식으로 교통지옥을 해결하려 든다면 전철을 복층으로 만들거나 기차 칸 수를 늘려 손님을 더 태우는 해법밖에 없다.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 해법은 사무실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가 그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트위터 CEO는 직원들한테 "코로나 이후에도 무기한 재택근무해도 좋다"고 했다. 페이스북은 5~10년 내 전 직원 4만5000명 가운데 절반이 근무지에 상관없이 어디서든 일하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한다.

▶재택근무로 생산성은 별로 안 떨어졌다고 하나 얼굴 맞대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는 와중에 툭 튀어나오는 의외의 아이디어나 창의성은 기대하기 힘들 수도 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미국 프린스턴대 고등과학연구소 시절 자신이 연구실에 나오는 이유가 27세 연하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과 함께 걷는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주의 본질, 시간의 본질에 천착한 천재들끼리의 '산책 대화'까지는 아니어도 대면(對面) 근무의 장점은 분명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여럿이 모여 의견을 나눠야 창의적 발상이 떠오른다고 믿었다.

▶재택근무 확산으로 사무실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만큼의 성과를 냈느냐로 평가하는 성과주의가 확산될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다양한 근무 방식을 받아들일 만큼 기업 문화가 유연한가이다. 좀처럼 바꾸기 힘들었던 경직된 국내 직장 문화가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건 코로나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임에는 분명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24/20200524022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