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향의 눈물
입력 : 2020-05-27 22:30:45 수정 : 2020-05-27 22: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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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만 하면 친일프레임 씌워 / 언로마저 막아선 여당 대표 / 위안부운동 정당성 훼손 안돼 / 삼류 정치가 국민 분열 조장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은 후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로마 역사학자 플리니우스의 저서 ‘박물지’에 나오는 ‘악어의 눈물’ 전설이다. 물론 사실과 다르다. 먹이를 먹으려고 입을 벌릴 때 턱뼈가 눈물샘을 자극해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다. 위선과 가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이 말은 셰익스피어가 햄릿 등 자신의 희곡에서 위선자·교활한 위정자의 거짓 눈물을 뜻하는 의미로 자주 인용했다. 위안부 인권단체인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전 정의연 이사장)을 둘러싼 회계부정 의혹에도 악어의 눈물이 등장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고 김복동 할머니를 언급하며 “(윤 당선인이) 한쪽 눈이 실명이었던 김 할머니를 미국으로 끌고 다니면서 이용해 먹고도 뻔뻔스럽게 묘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가짜 눈물이다”라고 비판했다.
김기동 논설위원
윤 당선인의 눈물이 또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이 할머니의 첫 폭로 후 그는 느닷없이 할머니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을 사죄한다는 거냐’는 질문에는 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잘못도 없이 사죄했다는 말인가. 위기만 모면하려는 꼼수임을 자인한 것이다. 92세 할머니의 분노는 ‘정의’가 사라진 데서 시작됐다. 이후 정의연의 회계 투명성, 안성쉼터의 수상한 매입·매각, 윤 당선인의 기부금 유용 의혹 등이 꼬리를 물었다.
지난 30년간 정의연과 전신인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이끌면서 위안부 피해자 인권운동을 해온 이가 윤 당선인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뀔 동안 국민 지지를 업고 일본을 상대로 가열차게 싸운 힘의 원천은 ‘도덕성’이다. 단체명에 담긴 ‘정의’가 이를 증명한다. 급기야 ‘사라진 정의’를 찾겠다고 검찰까지 나섰지만, 당사자는 일언반구도 없다. 휴대전화 뒤편에서 “숨소리까지 탈탈 털린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난다”며 ‘조국프레임’을 들고나온 게 고작이다.
삼류 정치가 작동한다. 지난해 3·1절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보자. 문 대통령은 “일제가 운동가를 탄압하면서 ‘빨갱이’라는 말이 생겼고, 해방 후 일제 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았다”면서 “경쟁세력을 비방하는 도구로 변형된 ‘빨갱이’ ‘색깔론’은 청산해야 할 친일 잔재”라고 했다. 그런데도 윤미향 사태를 놓고 집권세력은 싫은 소리를 입에 올리면 가차없이 ‘친일프레임’을 뒤집어씌운다. 이 할머니를 옹호하는 국민은 모두 친일파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여당 대표는 “개별 의견을 분출하지 말라”며 언로까지 막았다. 급기야 신상털기식 의혹 제기에 굴복하지 말자고 장벽을 쳤다. 민주사회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중국 당 태종은 “거울이 없으면 자신을 볼 수 없다”면서 비판 의견도 받아들였다. 무기력한 야당이 못 미더워 국민이 여당에 몰아준 ‘177석’이라는 덩치가 아깝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위안부 운동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제기된 의혹을 당사자가 나서
퇴보한 정의사회의 배후엔 어설픈 명쾌하게 해결하면 끝날 일이다. 굳이 정치권이 나서서 친일·반일 프레임까지 들고나와 국론을 분열시키는 건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며칠 전 서거 11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외쳤다. 지금 정의와 공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편가르기와 반칙이 난무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조국·윤미향 사태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며 일갈하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은 자신과 자기편에 너무나도 철저하고 엄격한 분이었다”고 강조했다.
‘눈물’은 인간에게 큰 무기다. 기쁨·슬픔 등 종류도 다양하지만, 진정성이 담겨야 마음을 움직인다. 국민들도 진짜 눈물과 거짓 눈물쯤은 구별할 줄 안다. 이 할머니를 겨냥해 ‘목돈이 필요한, 기억력이 떨어지는 노인의 치매’ 정도로 넘어가려는 정치권의 오만과 아집에 분노가 치민다. 공자가 말하는 정치의 다섯 덕목 중 하나는 백성의 신뢰를 의미하는 ‘민신(民信)’이다. 지금 정치는 국민에게 믿음을 주기는커녕 불신과 분열만 조장하고 있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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