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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의 발복지

화이트보스 2020. 6. 1. 19:28

정홍원 국무총리의 발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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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의 발복지

 

정홍원 (鄭烘原) 1944. 10. 09일(양) 본관 晋陽鄭氏 은열공파

출생지 경남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226(금남면 동서길35)

- 1963 진주사범학교 - 1971 성균관대학교 법학 학사

- 2004 서울대학교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수료

경력 년도 기관경력

1972 - [前] 제14회 사법시험 합격 -1974 [前] 사법연수원 제4기 수료

1999.02 - 1999.06 [前] 광주고등검찰청 차장검사(검사장)

1999.06 - 2000.07 [前] 대검찰청 감찰부장

2000.07 - 2002.02 [前]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2002.02 - 2003.03 [前]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2003.03 - 2004.05 [前] 법무연수원 원장(고등검사장)

2004.05 - [前] 변호사 개업(서울)

2004.07 - 2004.09 [前] 법무법인로고스 대표변호사

2004.09 - 2006.09 [前]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장관급)

2006.10 - [現] 법무법인유한로고스 상임고문

2008.06 - 2011.06 [前] 제9대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2013.02 - [現] 제42대 국무총리실 국무총리

 

주민의 말씀에 의하면 정홍원의 조부는 금오산(남해대교를 넘기전 북쪽 통신대 보이는 산) 둘래 100리, 3개면에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녔고, 자식이 12명이며, 정홍원의 부친은 일찍 별세하여 큰 형(면장 농협장을 했음)이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정홍원의 부친은 아들6, 딸6을 낳았는데 정홍원은 12남매중 9번째고, 아들로는 5번째다. 그 많던 재산이 지금은 생가(마을 중앙)와 마을 주변 선산만 남았다고 한다. 대단한 집안이다.

 

마을 주변에 5대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산소가 있다. 고조부모만 찾지 못했다. 조부모와 증조부모는 각각 마을 주변에 있다가 2007년 2월 현 장소에 쌍분으로 모셨다. 그러면 정홍원총리의 발복지와 조부의 발복지는 어디인가?

 

나의 지기풍수로 풀어본다.

 

위치 : 경남 하동군 금남면 대송리

 

 

 

1 증조부모, 2 조부모, 3 5대조, 4 생가, 5 부모






 

■조부가 부자된 이유?

조부는 금오산(남해대교를 넘기전 북쪽 통신대 보이는 산) 둘래 100리, 3개면에 남의 땅을 밟지 않고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로는 수 천석의 부자다. 요즘으로는 수 천억대 부자다. 5대조, 증조의 묘는 부가 없다. 고조부묘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집터의 기가 매우 강하며 그 중심에 있다. 부B등급이다. 족보를 구하여 분석하면 운의 등급을 알 수 있다.

 

 

■정홍원이 사법고시가 된 이유?

조부의 구묘자리다. 증조부모 아래 子좌다. 귀C, 부E 등급이다.

조부는 정홍원이 고시합격 전에 별세했다고 한다. 정홍원이 1974년 고시될 당시는 귀C-2등급이다. 성균관대 출신이지만 고시합격 충분하다. 귀C-3등급을 거쳐 귀C-2등급에 다시 진입했는데, 2007년 귀B-6등급으로 이장했다.

 

 

사진상에 보이는 축대가 증조부모 묘지

 

 

 

사진 중앙 돌이 보이는 곳이 파묘자리

 

 

 

■정홍원이 총리가 된 이유?

2007년 귀C등급에서 귀B-6등급으로 이장했다. 귀B등급이면 총리 국회의장 대번원장 헌법재판소장 및 장관이다. 총리하려고 이장한 것이 아니라,

이장하다보니 총리가 된 것으로 본다.

 

 

 

그러면 다른 사이트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사주명리와 풍수지리(네이버 2012.2.22)는

●조모가 중급명당으로 많은 자손을 둔다고 했다.

이장한지 7년밖에 되지 않았다. 이분은 이장한 사실을 모르고 하는 것 같다.

 

●또 부모의 묘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에 대하여 석계풍수지리(네이버 2013.3.5)에서는 혈이 아니다라고 한다.

 

 

■수암풍수지리연구소(네이버 2013.3.14 829번 글)에서는

●수암은 증조부모 자리가 혈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자리가 혈이면 그 아래 있는

묘지들은 왜 발복받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수암은 그의 까페에서 증조부모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 밑에는 도로가 나 있고, 또 그 밑을 보면 용맥이 밀려 내려간 모습이 감색의 선과 같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곳의 정혈처는 어디 일까요? 형기를 아시는 분이라면 대략 짐작 하실 겁니다." 라고 되어 있으며 지도위에 상세히 그려 놓았습니다.

 

이 정도면 초등생도 좋다는 표현을 했다고 받아드릴 것이다.

 

그래서 내가 “수암은 이 증조부모 묘소를 혈이라고 한다”고 했더니

덧글에서 반박하기를 “제가 정홍원 총리 증조부의 묘가 정혈이라고 한적이 없고 다만 형기를 아시는 분이라면 혈자리를 짐작하실거란 말만 한것으로 압니다, 글을 제대로 읽어서 이해도 못하신 분이 함부로 말씀을 하시면 안됩니다.“라고 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만일 증조부모 자리가 혈이 아니라면

"증보부모자리는 혈이 아니다. 형기로 보면 이러이러하니 저곳이 혈이다"라고 설명함이 마땅하다고 본다.

 

독자 여러분도 수암의 설명이 “혈이라는 뜻인지?” "혈이 아니라는 뜻인지?“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수암은 부친 자리는 매우 좋은 자리라고 한다.

그런데 수 십년 공부한 형기 풍수 20여명이 이 부친 묘소를 보고 아무도 자리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수암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인가? 나의 지기풍수로 분석해 보면 지기가 없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정홍원 조부는 수천석 부자였다. 부친은 일찍 별세하시어 큰 형이 부모 노릇을 했다. 큰 형은 면장과 농협장을 했다. 할아버지 대에 수 천석 부자가 아버지와 손자 대에서 다 팔아 먹고 지금 남은 것이 집터와 묘지가 있는 산 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홍원의 증조부모 자리는 지기가 없다. 조부 구묘는 귀C부E 등급이다. 부가 약하다. 조모도 지기가 없다. 부모도 지기가 없다. 따라서 할아버지가 수 천석의 부자였다하더라도 아들6, 딸6명이 나누어 가지고, 정홍원 부친도 아들6, 딸6명이니 부모유산을 받았더 할지라도 12명이 나누면 남을 것이 없다.

 

따라서 이 집안은 부는 멀리갔고, 할아버지 묘소덕에 총리된것 뿐이다.

부친 일찍 별세하셨는데, 그 자리가 명당이었다면 가세가 이렇게 기울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 묘소 : 경사가 심한 비탈이다.

만일 축대가 없다면 사람이 붙어 서기도 힘들 정도다

 

부모님 묘소 축대에서 본 금오산 정상(사진상 멀리 보이는 곳)

*수암풍수지리에서 가져온 사진은 수암의 요구에 의하여 모두 삭제했다.

사진을 보시고 싶은분은 네이버에서 "수암풍수지리연구소"를 검색하시어

전체글보기에 2013.3.14 829번 "정홍원 제42대 국무총리와 풍수" 보시면

된다.

 

*대부분의 풍수 까페나 블로그를 보면 묘지의 위치를 밝히지 않는다.

알려 달라고 요구해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의 주장도 밝히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자기의 학설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암은 남이 찾아갈 수 있도록 위성지도에 용맥까지 아주 상세하게 그려놓고, 자기의 주장을 잘 설명하고 있다. 모두가 본 받아야 한다.

 

 

泰元地氣風水硏究院 baksj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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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3879-4643

 

 

 

 

[출처] 정홍원 국무총리의 발복지|작성자 천인지 박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