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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토중래 꿈' 포기 못 하는 정치인들

화이트보스 2020. 6. 7. 10:02

김부겸 당권 도전, 김무성 공동사랑방 개설, 박지원 방송 활동 왕성

이번 총선에서 낙선했거나 불출마한 여·야 유력주자들. 당장은 연락이나 공부를 이유로 사무실을 열지만, 그 공간은 차기 도전을 위한 발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왼쪽부터 김부겸·김무성·박지원 전 의원 / 김창길 기자

“(…)정치를 시작할 때 저의 초심,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는 마음은 변치 않겠습니다. 정치를 바꾸어 대한민국의 근본 틀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는 우리의 꿈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또한 ‘생활정치연구소’라는 소박한 처소에서 국민의 삶을 현장에서 실제 피부로 와닿을 수 있는 정책의 연구·개발에 정성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지난 4월 총선 후 김부겸 전 장관이 후원자들에게 쓴 자필 편지의 한 대목이다. 김 전 장관은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면 선거법에 의한 국회의원 후원회도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고 활동을 그만둘 수는 없다. “비록 이번 총선에서는 실패하고 물러서게 되지만,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의 정치’를 향한 저의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앞의 편지에서 내비친 다짐이다. 좀 더 큰 정치, 구체적으로 대선을 보고 뛰겠다는 것이다.

낙선·불출마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

당장 주변에서 거론하는 것이 당권 도전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내 지지자들을 모아야 하고,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비전을 밝혀야 한다. 당 운영의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 정책도 만들어야 한다. 혼자 할 수 없다. ‘팀’이 필요하다. 결정적인 문제는 지난 20대 때 그의 의원실, 국회 의원회관 814호는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공간만이 아니다. 보좌진도 뿔뿔이 흩어졌다.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 보좌진을 포함해 ‘김부겸의 사람들’ 중 의원회관에 남은 사람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김 전 장관 친필편지를 보면 ‘생활정치연구소’라는 조직을 언급하고 있다. 연구소 블로그나 소셜미디어(SNS)에 나와 있는 주소는 여의도 국회 앞 정우빌딩이다. 6월 3일 오후 사무실을 방문했다. 입구에 ‘생활정치연구소’ 간판은 걸려 있지 않았다. 사단법인 ‘새희망포럼’과 ‘새희망청춘포럼’이라는 간판만 있다. “김부겸 전 장관은 이쪽으로 오시지 않습니다. 물론 장관님과 관계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실무자의 말이다. 생활정치연구소는 이번에 처음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2009년 원혜영 전 의원 주도로 만들어졌다. 더 오래된 것이 ‘새희망포럼’이다. 김 전 장관 측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의 20년 가까이 된 지지자 모임”이라고 밝혔다. 지지자 모임이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은 운영에 간여하지 않는다. 지지자들이 주요 연사들을 초청해 세미나나 강연회를 열면 토론 자리에 김 전 장관도 참여하는 형식이다.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한 연구모임 자리엔 행정안전부 장관 시절에도 꾸준히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를 검색해보면 2018년 민주당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김부겸 선거조직’ 논란이 있었다. 임대료 부담에 생활정치연구소의 주소지를 새희망포럼 쪽으로 이전하는 과정에 ‘선거사무실 개소’라는 오해를 빚은 것이라고 당시 김 전 장관 측은 해명했다.

마포대교 건너 불교방송 맞은편 마포현대빌딩. 여기엔 이번 총선에 불출마한 김무성 전 의원이 연 사무실이 있다. 김 전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개인사무실이 아니라 20대 때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공동사랑방”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선거에서 불출마하거나 낙선한 3선 강석호·김성태·김학용 전 의원 등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김 전 의원의 설명이다. 40여 명이 돈을 갹출해 마련한 사무실로 알려졌다.

“원래 김 의원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지난 박근혜 정부 때처럼 뉴라이트 학자들을 데려다 공부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안다. 김 의원 스스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의원내각제와 같은 정치제도 개혁이 주된 테마가 될 것이다.” 기자와 통화한 과거 김무성 대표 시절 최측근의 언급이다. 6월 3일 기자가 방문한 사무실에는 아직 아무런 이름도 붙어 있지 않았다. 사무실 집기도 아직 다 마련되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최측근 인사는 “모임의 이름이나 향후 계획 같은 것은 일단 사무실 정비가 끝나면 정식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총선에서 낙마한 인사 중 제일 바쁜 이는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77)이다. 이번 21대 총선에서 목포에서 낙선한 박 전 의원은 20대 의원 임기의 마지막 주 월요일이었던 지난 5월 25일, 금귀월래(金歸月來)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매주 금요일 지역구에 내려가 지역민들을 만나고 월요일 돌아오는 일정을 지난 12년 동안 꼬박 되풀이해왔다. “향후 출마계획은 없다”며 정치활동은 접겠다고 선언했지만, 방송인으로 제2의 전성기를 화려하게 누리고 있다. 여기에 6월 3일부터는 그의 모교인 단국대에서 석좌교수를 맡아 남북관계나 대한민국 정치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박 전 의원 사무실 역시 국회 앞 진미파라곤 빌딩에 마련되어 있다. 사무실 명의는 ‘그라운드제로연구소’로 되어 있으나 이 연구소의 활동은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은 접지만… ‘향후’는 알 수 없어

박 전 의원은 6월 3일 전화통화에서 “원래 후배가 갖고 있는 사무실에 잠시 더부살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정치 활동계획은 없냐는 물음에는 “주 12회 방송 고정출연 스케줄도 있고, 대학 강의도 나가다보면 앞으로 더 좋은 일도 있지 않겠느냐”며 “현재로서는 4년 후 총선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김무성 전 의원 역시 공개적으로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 야권의 관측이다. 미래통합당 한 인사는 “정치의 시간으로 2년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긴 시간”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누가 될지 모르는 게임이다. 여차하면 나서겠다는 건 김무성뿐만 아니다. 나이가 많아 (대권 도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김종인 비대위원장조차 대권 욕심이 있다고 나는 본다. 지난 총선 때 김종인이 왜 전국을 열심히 돌아다녔겠는가. ‘이 정도 돌아다닐 체력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거 아닌가.” 과연 그럴까.

차기를 내다보는 중량급 인사뿐 아니다. 잠시라도 정치에 발을 담근 사람이라면 상당수가 ‘여의도 국회 앞’을 떠나지 못한다. 왜일까. 사실 주요 정당, 정치권 개인사무실이 몰려 있는 국회 앞 여의도동 일대는 주차도 힘들고 접근성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박신용철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원은 “국회와 가까운 거리와 같은 편의성이라기보다 상징성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풀이한다. “대부분 단기임대를 중심으로 ‘선거철 반짝 장사’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여의도 국회 앞 빌딩들의 공실률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과거에는 국정원이나 경찰청·기업 대관팀 등이 국회 로비를 위해 사무실을 임대하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활동이나 정책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지금은 굳이 상주할 필요성까지는 없다. 최근 여의도 빌딩 빈방은 더 많아진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대선과 같은 큰 판이 열릴 땐 어쩔 수 없이 장이 선다. 나중에 유력주자의 핵심그룹으로 편입될 사무실엔 사람이 북적인다. 외곽조직으로 성장할 곳도 비슷하다. 반면 간택 받지 못한, 소위 ‘끈 떨어진’ 곳은 머잖아 결국 소리소문없이 문을 닫는다. 이 역시 정치의 공식 무대에서는 거의 조명을 받지 않는 여의도 풍경의 뒤안길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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