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前 경부고속도로, 화장실도 돈내고 갔다
조선일보
입력 2020.07.08 03:00
[오늘의 세상] 고속도로 개통 반세기, 달라진 삶
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 50주년을 맞았다. 건설 당시 서울대 상대 교수 전원이 성명서를 내고 "소수의 부자들이 젊은 처첩들을 옆자리에 태우고 전국을 놀러다니는 유람로가 될 것"이라고 비난했던 도로는 대한민국의 대동맥이 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서울 서초구 한 호텔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50년 전 경부고속도로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며 "미래를 내다보고 시작한 경부고속도로가 서울과 부산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고,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얼어붙은 땅 불로 녹이며 공사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구상을 밝힌 것은 1967년 4월 29일이다. 그는 이날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 전 대통령은 3년 전인 1964년 독일을 방문했다. 당시 '아우토반'에서 시속 160㎞로 달려본 다음 충격을 받고 고속도로 건설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의 관문인 ‘서울 톨게이트’는 개통 초기만 해도 주변에 논밭밖에 없었다(위 사진·이후 시계방향).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12월 21일 경부고속도로의 1단계 구간인 서울~수원 구간 개통식에서 도로에 샴페인을 뿌렸다. 고속도로가 처음 개통됐을 때는 종이 통행권을 썼고, 서울~신갈 요금은 150원이었다. 휴게소 화장실에 가기 위해선 10원의 입장료를 내야 했다. /한국도로공사·국가기록원
본격적인 공사는 1968년 2월 1일 시작됐다. 현대건설을 포함한 16개 건설업체가 시공에 참여했고, 1201건설공병단 등 3개의 군 공병대도 투입됐다. 정확히 2년 5개월 7일 만인 1970년 7월 7일 서울∼부산 전 구간이 개통됐다. 지금까지 건설된 고속도로 중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가장 짧은 공사 기간에, 가장 적은 공사비를 투입해 완성한 고속도로였다. 인부들이 하루 3교대로 잠잘 시간도 없이, 겨울엔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언 땅을 녹여가며 공사해 가능했던 일이다.
◇수학여행, 고속버스도 등장
/조선일보
경부고속도로 완공 이전엔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로 15시간이 걸렸다. 완공 뒤 4시간 30분으로 줄었다. 이로 인해 전국 일일생활권 시대가 열렸다. 경공업 중심이던 산업구조는 중화학 공업과 수출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경부 축을 중심으로 산업단지가 늘어나고 생산활동인구가 유입되며 대도시가 성장했다.
수학여행이란 문화도 생겼다. 이전엔 서울에서 경주까지 10시간은 가야 해 학생들의 단체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동 시간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여행·관광 목적으로 마이카 시대가 열렸고, 국민 삶의 질도 높아졌다. 고속버스도 처음 등장했다. 고속버스 기사와 안내양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직업이 되기도 했다.
1970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려면 1300원(일반 승용차 기준·편도)을 내야 했다. 지금은 14배 정도인 1만8600원을 내야 한다. 요금만 올라간 것이 아니다. 1970년 1만대에 불과하던 경부고속도로 통행량은 2019년 77만대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자동차 등록 대수는 13만대에서 2368만대가 돼 182배로 폭증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쌓인 토목기술 노하우는 국내 건설사가 중동 등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하는 데 밑거름 역할을 했다.
◇YS·DJ도 처음엔 반대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낸 주역이지만 처음엔 반대가 많았다. 경부고속도로에 들어간 건설비 429억7300만원은 건설 구상이 처음 나온 1967년 국가 예산의 23.6%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춘궁기엔 굶어 죽는 사람이 나올 때였다. 야당을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컸다. 신민당 유진오 당수는 1968년 언론 인터뷰에서 "그 취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나 현 경제 실정에 비춰 사업의 우선순위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했다. 당시 야당 의원이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 통령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는 완공 15년쯤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기존 4차선 고속도로의 한계를 절감하고 단계적으로 확장공사를 시작해야 했다. 개통 당시 서울시 원지동에 있던 경부고속도로의 대표 관문인 서울 톨게이트도 1987년 성남시 궁내동의 지금 자리로 확장·이전했다. 본래 톨게이트가 있던 자리에는 만남의 광장 휴게소가 생겼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8/202007080011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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