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 먼저다' 공화국의 쇠고기 파티
조선일보
- 양상훈 주필
입력 2020.07.09 03:20
벌어서 세금 낸 분들 덕에 재난지원금도 주는 것
양상훈 주필
'사람이 먼저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다. 그런데 지금 보니 '버는 사람 아닌 쓰는 사람이 먼저'라는 뜻이었다. 지난번 썼던 국가 부채 관련 칼럼의 한 부분인데 생각 밖으로 많은 분이 이에 공감을 표했다. 생각해보면 이 정부처럼 '버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때로는 탄압하면서 오로지 '쓰는 사람'들만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쓰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훨씬 많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역대 정부 모두가 이런 경향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사람이 전체의 40%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납세 의무를 면제시켜준 나라는 드물 것이다. 소득세 납부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80%를 낸다. 법인세 역시 상위 10%가 전체의 96%를 낸다. 부가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금이 이럴 것이다. 전체 국민 중 많아야 20~30%가 돈을 벌어 세금을 내고 나머지 70~80%는 그 세금을 쓰는 구조다. 어떤 정치인이든 국민 20~30%가 아니라 70~80%를 향해 구애할 수밖에 없다. '서민 정당' '복지 정당'이란 간판은 '세금 쓰는 사람들을 위한 당'이란 뜻이다. 그런데 어떤 정치인은 세금을 내는 20~30%를 향해 말로라도 감사를 표하지만, 또 어떤 정치인은 그 20~30%를 적폐인 양 비난해서 70~80%를 더 열광케 한다.
현재 국민 1200만명이 현금 형태로 나랏돈(누군가 낸 세금)을 지원받고 있다. 저소득층은 일해서 번 돈보다 나라에서 지원받는 돈이 더 많게 됐다. 전국 시·군·구까지 다 합쳐 현금 복지 종류가 2000종에 달한다. 건강보험, 실업급여, 기초생활보장, 기초노령연금, 무상 교육, 무상 급식, 세금 알바 등 수많은 복지제도와 긴급재난지원금까지 이 모두가 '버는 사람'들이 낸 세금과 보험료로 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쓰는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시장, 도지사가 주는 것으로 인식한다. 대통령은 돈을 주면서 단 한 번도 '이 돈은 많은 세금을 내신 분들이 주시는 겁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재난지원금도 "사상 최초로 정부가 국민에게 지원했다"고 한다. 그 돈의 출처는 말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들은 진심이든, 형식적이든 때만 되면 납세자들에게 헌사를 바치지만 우리 대통령은 헌사 대신 '재정(財政)'과 같은 어려운 말을 쓴다. 재정이라는 말에선 '돈 벌어서 세금 낸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라 대통령과 장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버는 사람이 아니라 쓰는 사람이 먼저인 정치인 눈에는 나라가 돈을 버는 일이 그리 절박하지 않다. 문 대통령 3년 동안 국가가 돈을 버는 문제가 진짜로 최우선인 적은 한순간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뉴딜이나 규제 샌드박스 등 멋진 말은 많이 했는데 그것을 반드시 관철하고 실천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전혀 없었다. 정책 의지가 아니라 무대(舞臺) 의지만 있었다. 한국이 돈을 버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인 후진적인 노동 구조와 규제의 개혁은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대신 돈 버는 기업을 옥죄는 분야에서는 세계 선두를 달린다. 기업이익공유제에 이어 기업 사내복지기금을 다른 사람들도 같이 쓰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버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탈하려 한다.
'쓰는 사람 먼저' 공화국에서는 나라 곳간에 돈이 남아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 정권 5년 동안 튼튼하던 건강보험기금이 급격히 소진돼 4년 뒤면 탕진된다. 이 정권 출범 전에 20조원이 넘던 기금이다. 10조원이 넘던 고용보험기금은 올해 완전히 탕진된다. 탕진도 모자라 전 국민 고용보험을 한다고 한다. 공기업들은 적자 내기 경쟁을 하고 있다. 적자를 냈는데도 보너스를 준다. 몇 조원 지역 사업을 하면서 최소한의 타당성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쓰는 데 광적인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면 된다고 한다. 채무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먼저인 사람들의 특징이다.
'쓰는 사람 먼저' 공화국에선 국민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 역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느냐'이다. 코로나 재난지원금은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두 배를 줘야 했다. 그런데 무차별로 전국민에게 준다. 이런 나라는 주요국 중 기축통화국인 미국, 일본 정도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게 14조원을 썼다. 문 대통령은 "한우와 삼겹살 매출이 급증했다"며 "가슴이 뭉클했다"고 했다. 중국은 더 적은 12조원으로 인공위성 50여기를 발사해 GPS 독립이라 는 역사적 성취를 이룩했다. 한국이 틀렸고 중국이 맞는다는 얘기가 아니다. 정부가 부(富)의 창출이 아니라 오로지 쓰고 나눠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어도 되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14조원 대다수는 정화조로 흘러갔고 중국의 12조원은 두고두고 중국 국민의 재산이 될 것이다. 굳이 순서를 매기자면 버는 사람이 먼저고 쓰는 사람이 다음이어야 한다. 벌어야 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7/08/202007080484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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