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넉넉했으면”… 낙도 소녀 소원, 54년만에 이뤄졌다
‘지붕에서 비가 많이 샌다. 한편으론 비가 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밤중에 그 고생을 않고도 물을 길을 수가 있겠고, 보리 싹이 잘 나오겠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작은 섬 외병도가 생기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1968년 5월 5일 어린이날, 조선일보 사설에 전남 진도군 조도면 외병도에 사는 김예자(당시 13세)양의 일기가 실렸다. 마실 물도, 땔나무도, 식량도 부족한 낙도(落島)의 고달픈 삶이 담겨있었다. 당시 사설은 김양의 일기를 다루면서 “우리나라엔 4만이 넘는 거의 원시 같은 자연부락이 있다”며 “외진 섬과 외진 곳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의 고사리손들에다 무엇을 안겨주자. 아니 그 가슴에 무엇을 심어주고 부어주자”고 썼다. 그러나 이 섬은 최근까지도 1968년 그때와 달라진 게 없었다. 상수도가 없어 급수선에 의존해 물을 해결했고, 이마저도 모자라 집집이 물통을 두고 빗물을 받아썼다.
그로부터 54년이 흐른 10일 오전, ‘평균 나이 76세’ 외병도 주민 20명이 지하수를 끌어올려 수질 정화를 하는 시설 앞에 줄지어 섰다. 평생을 외병도에서 살아왔다는 이장 박형식(70)씨가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콸콸 쏟아졌다. 주민들은 눈물을 왈칵 쏟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박 이장은 “그동안 손주와 며느리가 와도 씻기 불편해서 차마 방문하라고 말도 못 꺼냈는데 이제 평생 시달려온 물 부족 고통에서 벗어나게 돼 기쁘다”고 했다.

외병도 주민들의 목마름이 수십년 만에 해갈된 배경엔 “1968년 ‘외병도 소녀의 일기’가 큰 역할을 했다”고 환경부는 전했다. 다도해상국립공원 내 섬마을 사람들의 기초 생활 여건 개선 사업을 추진하던 국립공원공단이 지난해 수요 조사 도중 한 주민으로부터 이 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었고, 현장 확인차 외병도에 간 직원이 물 부족 상황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공단 측은 “섬에 가보니 집집이 화장실에 빗물을 받아둔 물통이 있고, 식수도 모자라 뭍에서 준 생수를 아껴 마시고 있었다”고 했다.
그동안은 물이 부족한 섬 사정상 30t급 급수선이 20일마다 한 번씩 외병도에 들렀다. 하지만 외병도를 포함해 조도면 안에만 상수도가 없는 섬이 22곳에 달해 급수선이 이 섬들을 다 돌고 나면 외병도 물탱크엔 채워지는 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외병도에 있는 50t짜리 물탱크 2개는 장마 때가 아닌 한 가득 채워진 날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외병도는 주민 수가 점점 줄다 보니 지자체 차원의 기초생활시설 사업대상지에서도 번번이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섬은 더 낙후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과거 본지에 일기를 보냈던 김예자씨도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지금은 흑산도에 산다는 김씨는 “어린 마음에 속상함을 적어냈던 글이 54년 만에 이런 결과를 만들어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반세기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그 글 덕에 마을 분들께 도움을 드리게 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외병도를 시작으로 2026년까지 다도해상국립공원 내 낙도 마을 37곳 주민들의 생활 개선 사업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통수식에 참석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원 사각지대였던 마을 주민들이 더 이상 외면받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이 환경부의 책무”라며 “앞으로 낙도 주민들의 정주 여건 개선에 더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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