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17

왕은 무릎을 꿇고… 무능한 정권의 '굴욕'이 서린 곳

왕은 무릎을 꿇고… 무능한 정권의 '굴욕'이 서린 곳조선 시대, 산성에 피신해 있던 왕이 적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에 머리를 찧은 굴욕의 역사가 있었다. 비록 그 시대 정권은 무능했다 비난받았지만, 지금까지 우뚝 서 있는 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 영광을 누리고 ..

국란을 겪은 임금들 인조③ 外患 부른 쿠데타이덕일 | 제103호 | 20090228

국란을 겪은 임금들 인조③ 外患 부른 쿠데타 이덕일 | 제103호 | 20090228 입력 인조와 서인이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몰라서 친명반청(親明反淸) 정책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친명 사대는 정권 획득과 유지의 명분이었다. 군사는 없지만 전쟁불사론이 횡행했고 현실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입을 열지 ..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31 03:43 50대 남성, 울산지역 인기기사 [서울신문]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아 일방적으로 몰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군이 조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

(84)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84)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Ⅱ)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08.13 03:09 [서울신문]1637년 1월3일, 도성으로부터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12월 그믐과 정월 초하루, 몽골병들이 도성으로 몰려들어 사람들을 붙잡아가고 약탈을 자행했다는 내용이었다. 병자호란을 일으키기 전, 홍타이지..

(83)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83) 다시 화친을 시도하다(Ⅰ)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08.06 04:18 [서울신문] 남한산성에서 고단한 나날을 보낸 것이 어느덧 17일, 병자년(丙子年)이 저물고 정축년(丁丑年)이 밝아 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청 태종 홍타이지는 탄천(炭川)에 진..

(82) 남한산성의 스산한 연말

[병자호란 다시 읽기] (82) 남한산성의 스산한 연말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07.30 02:38 [서울신문] 포위된 이후 남한산성 사람들은 바깥 소식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했다. 근왕병이 근처까지 와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패하여 물러갔다는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 산성의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