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호란 9

인조의 ‘의리 외교’와 청으로 끌려간 여인들

인조의 ‘의리 외교’와 청으로 끌려간 여인들 기사입력 2014-07-16 03:00:00 기사수정 2014-07-16 10:11:48 기사보내기 기사보내기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싸이월드 네이버 구글 폰트 뉴스듣기 ‘양다리 외교’ 광해군 몰아내고 현실 무시한 인조의 親明反淸 국토 쑥대밭 만들다 외교 국방 ..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4·끝) 조선을 알았던 청, 청을 몰랐던 조선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8.12.31 03:43 50대 남성, 울산지역 인기기사 [서울신문]조선이 병자호란을 맞아 일방적으로 몰리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청군이 조선이 상대하기에는 너무 버거..

[병자호란 다시 읽기] (39) 정묘호란 이모저모

[병자호란 다시 읽기] (39) 정묘호란 이모저모 서울신문 | 기사입력 2007.10.03 04:01 [서울신문] '인조실록'과 장유(張維)의 '계곡만필(谿谷漫筆)'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정묘호란 당시 강화도의 분위기는 흉흉했다. 불과 100리 밖까지 적의 대병이 압박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 신료들은 대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