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 치하 서울의 석 달, 그 냉엄한 기록 인민군 치하 서울의 석 달, 그 냉엄한 기록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음성으로 읽기기사 스크랩 이메일로 기사공유 기사 인쇄 글꼴 설정100자평58좋아요406페이스북 공유47트위터 공유카카오스토리 공유네이버블로그 공유기사 URL공유입력 2019.06.27 03:17남침 사흘만에 서울 거리엔 붉은 기 흔들.. 아픈역사에서 배운다/다시보는 6.25 2019.06.27
<47>6·25와 국군 지휘관들 <47>6·25와 국군 지휘관들 국군 증편 따라 장군도 대폭 늘어 ▲전쟁 이전 지휘관 6·25 발발시 군 장성은 총 13명에 불과했다. 육군이 10명, 해군 1명, 공군이 2명이었다. 당시 최고 계급은 소장(少將)으로 4명이었고 나머지는 준장이었다. 소장은 육군 장군인 총참모장 채병덕 장군을 비롯해 김홍일 육.. 아픈역사에서 배운다/다시보는 6.25 2009.01.29
<49>6·25와 한미동맹 <49>6·25와 한미동맹 주한미군 주둔 법적근거 마련 ▲6·25와 주한미군 6·25 때 미국은 1개 야전군, 3개 군단, 8개 보병사단, 1개 해병사단, 28개 보병연대, 54개 포병대대, 8개 기갑대대를 투입해 전쟁을 치렀다. 한반도에 전개된 미군은 일본과 하와이·오키나와·본토에서 동원돼 한국에 투입됐다. .. 아픈역사에서 배운다/다시보는 6.25 2009.01.29
<56>6·25와 군인 박정희 <56>6·25와 군인 박정희 현역으로 복직…‘숙명적 운명’ 속으로 ▲광복이전 경력 6·25는 한국 현대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한 인물을 구했다. 그는 박정희로 1917년 11월 14일(음력 9월 30일)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구미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그 학교 창설 이래 최초로 대구.. 아픈역사에서 배운다/다시보는 6.25 2009.01.29
<62>6·25와 한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62>6·25와 한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父子장교 등 군 명문家 조국수호에 목숨 바쳐 6·25 때 국군은 약 130만 명이 참전해 62만1479명의 손실을 입었다. 이는 전사·사망 13만7899명, 부상 45만742명, 실종·포로 3만2838명이다. 또 학도병을 비롯해 많은 무명용사가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했는가 하면 .. 아픈역사에서 배운다/다시보는 6.25 2009.01.29
미네르바 “난 조국에 비수 꽂은 악마의 앞잡이 미네르바 “난 조국에 비수 꽂은 악마의 앞잡이” 인터넷 경제논객 미네르바는 5일 “외국자본에 유린당하는 조국의 현실을 방관하고 조국에 비수를 꼽은 외국 자본의 한 가운데 섞여 있었던 난 악마의 앞잡이였다”며 한국에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새벽 다음 아고라에 올린 `마지막에 기댈 .. 경제,사회문화/사회 , 경제 2009.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