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중(中)의 새로운 미래
강철환·정치부기자 nkch@chosun.com
냉전시대에 북한과 중국은 순치(脣齒)관계였다. 한·미동맹을 혈맹이라 부르듯 북한과 중국은 6·25 때 함께 피 흘려 싸웠다. 하지만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의 개혁·개방 이후 두 국가는 서로 다른 사회주의 길을 걸어왔다. 중국은 무늬만 사회주의인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북한은 사이비적 사회주의인 봉건왕조로 후퇴했다. 1992년 북한 최고 지도부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중 수교를 결심한 중국은 이미 북한 내부에 깊숙이 퍼진 우상 숭배라는 구제 불능의 상태를 직감하고 있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사상적 동맹관계 시절은 지나갔다. 중국은 북한의 남침을 저지할 것이고 또 남한의 북침 또한 저지할 것이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고 말했다. 북한이 중요시하는 이념 따위보다 국민이 먹고 사는 실리를 중시하겠다는 중국의 입장은 명백한 것이었다.
올림픽 폐막식 직후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남한 보수 정권의 환대를 받으며 서울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후 주석이 대한민국을 방문하고 있는 때에 북한이 "핵 불능화 조치를 거부하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반발을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前) 정권과 다른 대북정책을 취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누구보다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무엇보다 민감하게 생각하는 탈북자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양국 정상이 이 문제를 공식 논의했다는 것은 이미 중국 지도부도 탈북자 문제의 전향적 해결을 고민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국민을 굶겨 죽이고 수많은 탈북자를 만들어내는 북한 당국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환멸이 깊어지고 있음을 뜻하는 대목이다.
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후 주석에게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협조를 구했다. 이는 향후 한반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헌법상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하면서도 중국 내에서 강제 북송되는 탈북자들의 참상은 외면해왔다.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통일은 영토뿐이 아닌 사람의 통일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함께 살아야 할 대상은 김정일 정권이 아닌 북한 인민들이다. 본격 탈북이 이뤄진 지난 10년간 수만 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게 만든 것은 어찌 보면 중국보다 대한민국의 책임이 더 크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껏 단 한 번도 탈북자의 강제 북송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에 뭔가를 요구하거나 건의한 적이 없었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이 같은 대한민국 정부의 인식에 일대 전환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양국 정상이 탈북자 문제를 공식 논의한 것은 이제 북한의 야만적인 행동에 대한 한·중 공동 대응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앞으로 두 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는 '동반자관계'로 진전할 것을 선언했으며, 국민을 잘살게 하고 국가를 발전시키는 공통의 목적을 가졌음을 확인했다. 국민의 삶과 인권을 짓밟는 북한의 폭정(暴政)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은 인류애 측면에서 세계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명제다. 핵문제보다 더 중요한 북한의 반인륜적 폭압을 공동으로 해결하는 데에 한·중관계의 새로운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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